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정부조직법 표류의 핵심 'SO' 논란 어디로?

Politics 2013.03.12 18:49 Posted by 수레바퀴


MB정부 때 공영방송은 심각한 파행사태를 겪었다. 박근혜 정부가 주목하는 미래 방송 서비스의 확산 흐름은 방송의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거듭 요청되는 대목이다. SO를 둘러싼 논란 속에서 결코 간과해선 안 되는 부분이다.


박근혜 정부의 표류가 장기화되고 있다. 여야 대치정국은 더욱 강경해지고 이를 우려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는 높다.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은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야당인 민주통합당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 중심에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System Operator)의 인·허가권과 법령 재·개정권이 있다.

 

국민은 혼란스럽다. 도대체 SO의 인·허가권과 법령 재·개정권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여야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여기에는 ‘방송’의 거대한 영향력을 조금이라도 더 점유하려는 여야의 복잡한 계산이 깔려 있다.

 

SO는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프로그램 공급업자(PP)와 계약을 맺고 이를 각 가정에 중계하는 방송 플랫폼 사업자다. 이를 위해 가정에서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도록 케이블망을 설치하고 전송망을 관리한다. 가입자를 모집해 시청료를 징수하는 대표적인 지역 케이블 방송사업자로는 티브로도, CJ헬로비전, 씨앤앰 등이 꼽힌다.

 

이들 SO는 국내 유료방송시장에서 아직까지는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2012년 말 기준 국내 케이블방송 가입자는 약 1,500만 가구로 IPTV 652만 가구,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 380만 가구에 비해 많은 편이다. 더구나 전체 가구수(1,800만)의 80% 이상은 케이블TV를 통하지 않으면 KBS, MBC, SBS 등 지상파방송을 볼 수 없다.

 

이렇게 많은 가입자를 보유한 SO는 시청률과 직결되는 채널 배정권을 갖고 있다. 채널 순번은 시청률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꼽힌다.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사용사업자(이하 종편) 등 의무전송 채널을 제외한 다른 채널 사업자는 SO와 협의 절차를 거쳐 번호를 변경한다. 당연히 이 협상 테이블의 ‘갑’은 SO다.

 

야당은, 장관이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되는 독임제 정부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가 이 SO를 관할하게 되면 정부·여당의 입김이 그대로 반영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즉, 여권 성향의 방송은 상대적으로 시청률이 잘 나오는 1~30번에 배치되고 야권 성향의 방송은 채널 배정이나 신규 인·허가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정부는 “채널 배정은 방송법 제77조에 따라 SO와 PP간의 자율적인 협상이지 정부가 개입할 근거가 없다”고 반박한다. 실제로 채널 연번제를 포함 SO에 대한 이른바 ‘채널 가이드’를 정부 부처가 주는 것은 위헌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 체제에서 SO가 종편 채널의 번호를 좋은 순번대에 배정하면서 논란이 커진 적이 있다. 당시 야권과 시민단체들은 방통위가 SO를 흔든 결과라며 반발했다.

 

채널 배정 문제보다 심각한 부분은 지상파방송에 대한 지배력이다. SO가 시장에서 지상파방송보다 우위에 있는 플랫폼사업자인 만큼 지상파방송과 SO를 분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민주통합당은 정치적 압력을 배제하기 위해서는 SO를 야당의 견제가 가능한 합의제 기구에 둬야 안심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반면 SO를 미래부 소관으로 두고 지상파방송을 우회적으로 묶어 두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방송을 장악할 수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은 박기춘 원내대표가 공영방송 사장 임명 문제를 제기하는 등 ‘자중지란’을 겪었다.

 

선거 기간 중 후보자 토론회나 기자회견 등 선거방송은 물론 지역뉴스를 자체 제작·방송할 수 있는 SO에 대한 공방은 상대적으로 지엽적인 사안이다. 야당은 편향적인 지역뉴스의 가능성을 우려한다지만 대기업을 모기업으로 두는 SO에서 보도 후폭풍을 감수할 만큼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SO 산업은 포화상태인 유료방송시장을 어떻게 풀어갈지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KT 계열의 IPTV와 위성방송은 가입자 증가세가 이어지는 반면 SO는 주춤하고 있다. 아날로그 가입자의 디지털 전환이나 규모를 키우는 비용 부분까지 떠 안은 상황이다. SO에 적용되고 있는 규제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금까지 SO는 방송법, IPTV는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IPTV법)에 속해 있다. 이 과정에서 야당은 ‘꼬마 방송위’에서 SO만은 다루겠다는 것이고 여당은 ‘슈퍼 미래부’에서 SO는 물론 IPTV, 위성방송 등 유료방송 전체를 아우르겠다는 태도가 맞서고 있는 것이다.

 

SO와 인터넷(IP) 기반의 방송 서비스를 담당하는 부처가 분리될 경우 미래 방송 서비스가 복잡한 운명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몇 년이 지나면 인터넷 기반의 방송이 SO나 지상파보다 더 큰 힘을 갖게 될 수 있어서다. 민주당은 법령 재개정권을 방송위에 남기려고 하는 이유를 IPTV가 직접사용채널(직사) TV로 가서 보도가 시작되고 제2의 종편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일 “(ITC 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해) 미래부로 이관하는 문제에 대해 결코 물러설 수 없다”며 강경한 태도를 드러냈다. 방송·통신 플랫폼 정책 업무 전반을 독임제 부처가 갖게 되면 절차적 장애물을 걷어내 창조경제 활성화, 고용창출이란 국정목표를 차질없이 수행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모바일이나 스마트TV 등 융·복합 기기 제조사 등이 신규 방송 플랫폼 사업자의 지위를 획득해 통신과 결합된 새로운 방송 서비스가 미디어 생태계를 재편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모바일이나 인터넷 등 다른 방식으로 방송 서비스를 경험하는 이용자가 늘어나고 전통적인 ‘실시간 시청’ 보다는 라이프 스타일에 맞춘 개인화된 시청 패턴이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이때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망 중립성’ 혹은 ‘플랫폼 중립성’ 영역에서는 SO나 통신사업자 등 특정 사업군이 주도권을 쥘 수 있다. 당장에 지상파방송의 ‘POOK’ 같은 N-스크린 서비스가 영향권에 들어온다. 사업자간 네트워크의 효율적인 분배나 접근, 비용산정 등이 첨예한 이슈가 될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 과정에서 ‘망 중립성’의 보장이 아니라 산업 활성화에 방점이 맞춰진다면 수용자 복지는 훼손될 수 있다. 또한 인터넷(포털)과 소셜미디어처럼 표현의 자유 문제도 지속적으로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현재 민주당의 'SO 잡기‘는 시장 현실을 잘 보지 못한 근시안적인 접근이다. 또 새누리당의 ’미래부 올인‘은 방송의 공공성을 늪으로 빠지게 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한 MSO의 관계자는 “유료방송시장의 정책 환경은 전체 방송·통신 플랫폼으로 연결되는 구조인데 정치권이 안이한 수준으로 논의한다“며 아쉬워 했다.

 

덧글. <시사저널> 1221호에 게재됐습니다. 편집자에 의해 다소 수정된 리드문을 이 포스트에 그대로 게재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미디어 정책의 '공공성', '다양성' 확보는 수용자의 삶의 진로와 직결될 만큼 중요한 사안이다. 미디어 정책을 입안하는 모든 논의들이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다뤄지는 게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의 정책 키워드는 여러 학문과 분야의 융합을 의미한다는 ‘통섭(統攝)’이다. 이 통섭이 반영된 사례는 미래창조과학부가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정책기능을 맡은 부분이다. 과학기술을 통합해서 시너지를 내기 위해 이른바 ‘공룡 부처’ 탄생을 감수한 모양새다.


정보통신부를 해체한 이명박 정부는 방송통신융합시대를 표방하며 방송통신위원회를 총괄 기구로 띄웠다. 하지만 그 결과는 혼란함 그 자체였다. ‘융합 IT' 정책은 속도는 느리고 방향도 잃었다. 방송의 공공성 확보와 공정경쟁 보장의 이슈도 사회적 논란만 끊임없이 일으켰다.


이러한 방통위의 부작용을 극복해야 할 미래창조과학부는 방송, 통신 등 다양한 미디어 영역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진단하고 선제적인 정책 입안의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콘텐츠, 플랫폼, 네트워크, 기기 등 ICT 생태계를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는 만큼 기대치가 높은 상황이다.


하지만 방송 관련 업무를 두 기관이 나눠 가지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조직 개편안에 따라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 위성방송 등의 방송 인·허가권은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되고 종편, 보도채널 인·허가권과 공영방송 임원 선임권은 방통위가 갖게 된다.


방송과 언론 관련 모든 법·제도가 독임제 행정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가 사실상 독점하는 구조다. 대통령 소속 ‘중앙행정기관’에서 ‘행정위원회’로 위상이 낮춰진 방통위는 법률 제·개정권과 예산 편성권도 없고 규제와 진흥을 아우르는 미래창조과학부 아래에 속하게 된 것이다.


방송법상 공·민영 책무를 규정함에 있어 정치적 입김을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독임제 장관 한 사람에게 쏠린 미디어 정책은 또 ‘MB 정부의 방통위’를 떠 올리게 한다. 과거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 시절만 못하다는 평가 절하도 있다.


새 정부의 공약 중 하나인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편이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비판은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다. 우리 사회의 다원성을 균형 있게 반영하고 국민이 납득할 수준의 투명한 공영방송 사장 선출은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지 새 정부의 구체적인 출구가 보이지 않아서다.


미래 성장산업으로서의 방송의 위상 제고와 육성 정책 수립도 마찬가지다. 산업 진흥에만 초점이 맞춰지거나 통신 관점에서 다뤄질 경우 공공성 통제는 불가능해지고 거대 기업이나 특정 언론사만 배불릴 수 있다.


물론 미디어 산업을 키우기 위해선 첫째, 케이블, 위성, IPTV 등 네트워크 별로 분산된 유료방송 법체계 정비 둘째, 인터넷, 모바일과 방송 융합 등 스마트 미디어 생태계 활성화 셋째, 미디어 융합을 촉진하는 진입 및 영업규제 완화 등의 산적한 정책 이슈를 신속히 풀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새 정부는 무분별하게 허가된 종편 사업자의 특권적 지위가 시장을 어떻게 훼손했는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사회적 갈등을 줄이고 산업적 효용을 배가하기 위해선 미디어 다양성과 공공성의 탄탄한 반석 위에서 추진돼야 할 것이다.


특히 현재 위기에 처한 신문산업에 대한 정책 당국의 지원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해외에서는 이미 적극적인 정책개발을 서두르는 양상이다. 한국신문협회도 국회에 계류 중인 신문산업진흥 특별법의 연내 처리를 건의한 바 있다.


다만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신문법이나 저작권법 관련 개정을 통해서라도 주요 신문 진흥책을 충분히 다룰 필요가 있다. 또한 신문 진흥과 관련된 기금의 확보와 집행은 시장의 현실을 반영하고 해당 기관의 중립성과 전문성을 담보해야 할 것이다.


국회에서 정부조직 개편안 논의가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서 미디어 기관의 위상 논의는 뜨거운 감자가 된지 오래다. 새 정부가 미디어 관련 공약만 잘 지켜도 ‘대성공’이란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다. 신문, 방송은 물론 융합 미디어 환경이 첨예하고 복잡함을 반증한다.


미디어 시장의 공공성과 산업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해서는 그만큼 일관된 정책 원칙과 철학이 요구된다. 다시 실패하지 않으려면 다양성과 공공성이란 언론의 보편적 책무를 복원하는 것이 그 중심이 돼야 할 것이다.   


덧글. 이 포스트는 관훈클럽이 발간하는 <관훈저널>에 게재됐습니다. <관훈저널>은 3월 중하순께 배포될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원고작성 시점은 2월 초입니다. 현재의 시점과 다소 다른 양상은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새 정부에 '바라는' 바를 개괄적으로 적는 것이니만큼 구체성은 부족합니다. 이점 감안하세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집권여당이 실패한 것. 이 시대 유권자들은 훼방 없는 자유로운 광장을 원한다. 삶의 질을 위협하는 독주가 콘텐츠는 아니지 않는가.


지난 밤 6.2 지방선거 결과는 정치공학적으로 여야 모두의 셈법을 복잡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서울, 경기 광역단체장을 건졌기 때문에 실리는 챙겼지만 상처가 깊다. 민주당은 다른 야당과 공조로 충청권과 수도권, 강원권에서 이겼지만 서울, 경기 광역단체장은 끝내 오르지 못했다.

얽히고 섥힌 대권구도와 개헌 이슈, 4대강 사업과 세종시 문제는 경우에 따라선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으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비쳐진다. 수도권 밑바닥이 요동쳤기 때문이다. 중요한 반전의 기회를 마련하지 못하면 필패의 서울 강남을 가졌다고 해도 불안해 보인다. 특히 한나라당이 내건 콘텐츠들로 계속 게임을 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할 가능성도 있다.

한나라당은 지방선거를 '북풍'이라는 콘텐츠에 집착했다. 경기 침체와 취업난을 호소하고 있는 민심과는 동떨어진 재료였다. 지역주의에 기댔고 개발욕망을 부풀렸고 저급한 비방에 골몰했다. 소통보다는 일방전달 뿐이었다. 서울광장은 봉쇄됐다. 주요 후보자들은 비겁하고 협애한 처신을 했다. 낡고 진부한 콘텐츠 뿐이었다.

민주당을 위시한 야당도 콘텐츠가 황량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새로운 콘텐츠는 없었고 집권당과 대통령을 비난하기에 바빴다. 여론을 리드하지 못하고 수동적이었다. 전례없는 북풍의 파고를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했다. 서울, 경기의 두 후보자가 내세운 콘텐츠도 매력이 없었다. 추억의 노풍을 기대했고 유권자 역시 딱 거기까지였다.

이번 선거결과는 그래서 누구의 승리도 아니고 누구의 패배도 아니다. 선거과정에서 드러났던 정치의 콘텐츠는 조금도 미래적이지 않았으며 창의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래를 가늠할 독창성이란 좀체 찾기 어려웠다. 민주당 한명숙 후보,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의 석패는 데이터 상으로는 사실이지만 콘텐츠의 부재에 시달려야 했다. 강남 3구때문에, 진보신당 때문에 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진 것이다.

여야 모두 한 마디로 콘텐츠의 경쟁 없는 무모한 선거였다. 전통매체도 20세기 프레임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유권자는 변화하고 있었다. 턱 밑에서 고배를 마시긴 했지만 여성 서울시장은 시간 문제로 인식하게끔 만들었다. 진보정당은 서울과 전국 곳곳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행할 수 있는 근거를 갖게 됐다.

다음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전히 '도전'하는 야당이나 '방어'하는 여당 모두 이렇게 변화하는 현실정치를 고찰하며 정치의 콘텐츠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가령 강남 3구를 설득해야 하고 강북을 움직일 콘텐츠가 제각각 나와야 한다. 영남과 호남을, 그리고 충청과 강원에게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맞춤의 콘텐츠가 개발돼야 하는 것이다.

지금의 이념 과잉과 지역기반 콘텐츠는 사회를 획일적으로 설계하는 것으로 21세기의 시대상황과 맞지 않다. 한국정치를 퇴행시키는 후진적 콘텐츠다. 미래를 위한 콘텐츠를 만들어가야 한다. 예를 들면 이명박 대통령은 청계천 콘텐츠로 대통령을 했고 디자인 서울은 오세훈 시장을 조각했다.

모든 정치인들이 자신을 위해, 그리고 세상을 위해 콘텐츠를 쏟아내고 있다. 그것이 사회를 리뉴얼하리라는 확신은 하기 어렵지만 그렇게 콘텐츠를 제시하는 식이다. 모든 정치인이 뉴타운이니 역세권 개발이니 하는 욕망을 부추기라는 것은 아니다. 아이디어가 필요하고 유권자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이야기다.

더 이상 20세기의 콘텐츠는 유권자들을 감동시키기 어렵다.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불러내기 어렵다. 감동의 콘텐츠를 내놔야 한다. 지금 유권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유권자들이 앞으로 5년, 10년을 위해 무엇을 생각하는지 그것에 대해 알아보고 따뜻이 껴안아야 한다.

이를 위해 콘텐츠를 정당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와 협력해서 구현해내야 한다. 마치 전통매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공동 파트너가 되는 식이다.

정치의 콘텐츠는 첫째,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에 집중해야 한다. 한 가지만 예를 들면 이제는 '삶의 질'이다. 미국과 유럽사회의 복지는 오늘날 재정난에 직면하고 있지만 혹독한 노동보다 여유와 느림의 선호는 이어지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숨가쁜 일상을 견디는 한국 유권자들에게 삶의 질은 가장 알.맞.은. 콘텐츠다.

민주당 혹은 야당이 실패한 것. 유권자들은 빠르게 변한다. 그리고 더 다양한 것으로 유대한다. 이들에게 내놓을 감동의 관계와 콘텐츠가 전무했다.

삶의 질을 노래하라. 삶의 질을 상정하라.

녹색 서비스, 교육 서비스, 문화 서비스, 의료 서비스 이 네 가지 정치 콘텐츠가 풍부히 담아야 할 의제들은 각각 생태, 후속세대, 자유, 미래의 '나'와 연결된다. 한나라당이 이번 선거에서 체면을 유지한 서울과 경기는 아주 많은 자본을 기반으로 공간과 의식을 만들어갈 수 있는 보고다. 그래서 이 덕분에 한나라당은 실패하지 않고 살아 남았다.

반면, 야당은 그러한 기회와 여건이 상대적으로 빈곤하다. 콘텐츠 경쟁에서 한발 뒤진 셈이다. 인물난도 마찬가지다. 여당이나 야당 비슷한 처지이지만 유권자들의 다양한 기호를 수렴하고 역동적으로 움직일 정치인이 전무하다.

야당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사실상 노풍으로 승리한 후보자들의 미래를 낙관하기 이르다.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조바심이 입지에 균열을 가져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건 여당도 마찬가지다. 이 시대에 생태계를 교란할 가능성이 있는 4대강과 중앙집중적 행정 비전으로는 전국 유권자들의 손을 잡기가 어렵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함께 만들라, 유권자와 춤을 춰라

좋은 콘텐츠를 스토리텔링하는 정치인이 부족하다. 앞으로의 한국 정치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의 예에서 보듯 소수파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업무의 합리성, 철저성은 물론이고 변화무쌍한 유권자와의 소통과 어울림으로 눈부신 성공을 거두는 정치인도 적지 않다.

유권자들의 인터페이스에 맞춰야 한다. 그것만이 벽을 넘는다. 정치의 콘텐츠도 기획하고 스토리텔링해야 한다. 그것이 오래도록 웃음짓게 하는 비결이 될 것이다. 과거의 관행과 기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콘텐츠적 관점에서 현실 정치를 그려내야 유권자는 바짝 다가온다. 이를 위해 즐거운 열린 실험과 다양한 기술을 껴안아야 한다.

여당과 야당 모두에게 이런 심오한 과제를 제기한 것이 6.2 지방선거의 메시지라고 한다면 정녕 지나친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표현의 자유와 소셜미디어 규제 논의

Politics 2010.05.25 10:36 Posted by 수레바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에 대해 일부 언론사는 지금까지도 국민-시민의 것이 아닌 언론사를 위한 표현의 자유로 그 의미를 축약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론사는 미디어 수용자를 발행부수나 시청률처럼 계량화하는 수치로만 표시되길 원하지 그들이 표현의 자유라는 참여 행위의 주인공으로서 일상적-정기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아서이다.

가령 공익에 대한 논의 - 선거이슈에 대해 언론사는 더 많이 그리고 독점적으로 영향력을 유지하길 원한다. 하지만 선거를 포함해 공익에 대한 논의를 시민이 주도할수록 언론은 자신들의 영향력이 급감할 수 있음을 경계하게 된다.  

그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상황은 미묘해진다. 웹2.0과 같은 미디어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언론은 미디어 수용자인 시민을 더 껴안아야 하지만 독점해온 공익에 대한 논의의 광장에 시민이 물밀듯이 들어오는 것은 말리고 사양해야 하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됐다고 할 수 있어서다.

테크놀러지는 공익 논의의 장을 확대한 동력

하지만 공익은 언론사만 대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상황이 되고 있다. 공익을 다룬다는 것은 다수가 참여할 수 있는 논의의 광장 즉, 신문과 TV 같은 플랫폼이 필요했다.

과거에는 언론사가 폐쇄적인 뉴스룸 안에서 게이트 키핑으로 독자와 시청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언론사 임의의 방식으로 표출했고 그러한 콘텐츠를 제작, 배포했다.

그러나 오늘날 미디어 수용자는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자로서 인터넷과 같은 열린 플랫폼에서 발언하고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특히 그들은 언론사 콘텐츠에 비해 손색없는 제작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들이 지식대중, 집단지성으로 공익의 논의에 주력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이다. 이미 블로그,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는 신천지가 되고 있다. 전통 매체가 그들의 발언을 제지할 명분도, 위상도 사라지는 것이다.

공익논의의 주 무대가 전통 매체를 확실히 벗어난 것은 산업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광고주들이 (공익이나 사익의 주제에 대해)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는' 신문을 떠나면서 수익구조는 점점 취약해지고 있다.

미국의 대형 신문기업 25개 중 24개의 신문은 기록적인 적자로 돌아섰다. 국내의 주요 신문사는 특별한 변수의 동원없이는 만성적이고 회복 불가능한 적자구조를 가지고 있다.

인터넷 이용자와 전통매체는 불유쾌한 관계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이용자는 언론사가 공익 논의를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용자가 가진 자신감 때문이다.

그들은 스스로 소셜네트워크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돼 언론을 더 이상 필수적인 동료로 평가하고 있지 않다. 그 대신 대체로 전통매체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언론의 뉴스는 이용하지만 자기식대로 해석하는 지적능력과 자율성을 행사하는 식이다.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는 이용자가 언론에 대해 갖는 자신감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자신감의 원천은 이용자의 경험으로 축조된다. 일반적으로 인터넷 이용자는 언론사에 대해 세 가지 경험을 갖게 된다. 첫째, 경쟁의 경험이다. 이것은 언론사 뉴스룸보다 빨리 사건(현장)에 대해 근접성을 확보하고 뉴스를 만들어내는 경험을 쌓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비평의 경험이다. 소셜네트워크에서 연대(following)하면서 전통매체를 극복하고 있다. 뉴스를 선별하고 친구에게 전달하는 활동을 거치면서 언론에 대한 불만족이 커지고 있다. IT기업에 종사하는 한 트위터리안은 말한다. "언론사들은 다양한 의견을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계몽하려고 한다"

셋째, 관계의 경험이다. 일반적으로 소셜네트워크의 관계는 지연, 학연, 혈연과 같은 오프라인의 연고주의보다는 기호, 욕구, 직장, 라이프스타일 등의 개성적이고 문화적인 것들로 '관계'가 설정된다. 이 관계는 기존의 연고관계보다 각별하게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이 관계는 자신 그리고 타인에 대한 선호로-적어도 그러할 것이다-시작되기 때문이다. 우호적이며 선린적인 공존의 관계가 깊어질 때마다 언론-수용자의 전통적인 관계와 대비된다. 그리고 후자의 관계보다 소셜네트워크의 우월한 관계에 대해 강한 애착을 느낀다.

여기에 인터넷 이용자는 언론사가 다루는 공익이 '정파적', '편향적'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더 강해지고 있다. 경쟁-비평-관계의 경험을 통해 이용자는 언론이 행사하는 저널리즘에 대해 신뢰를 못하고 있다.

언론 보도물에 대한 이용자 평판이 광범위하게 공유되면서 신뢰의 '결여'를 낱낱이 알게 된다. 그 결과 언론에 대해 공격적이고 저항적인 형태를 띤다.

마침내 이용자는 언론사가 점유한 시장(market)에 진입한다. 전통매체의 비즈니스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다.

그것은 종종 저널리즘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미 IT, 스포츠, 연예, 라이프스타일 분야는 물론이고 교육 그리고 드디어 정치로까지 인터넷 이용자는 발언권을 행사한지 오래다.

전통매체의 비즈니스는 타격을 입고 있다. 더 많은 콘텐츠들이 그리고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언론이 파고들지 못하는 작은 부분까지 이용자는 다가서면서 광고주는 움직이고 시장질서는 요동친다.

다국적 기업의 국내 홍보를 맡고 있는 한 홍보대행사 간부는 "3~4년 전부터 기업들이 신문, TV 등 전통매체를 거치지 않는 그러니까 소비자를 직접 상대로 하는 온라인 홍보방안을 제시해야 홍보대행계약에 사인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것이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언론과 소셜미디어는 격렬한 경쟁자가 돼

이렇게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언론 영향력은 감퇴한다. 바이럴 마케팅 즉, 구전 효과는 기업의 주요한 마케팅 수단이 되고 있다. 불과 2~3년만에 언론을 통하지 않고 바로 고객과 접점을 맺으려는 실험은 여전히 진행형이지만 하나의 테마가 된 것은 분명하다.

언론의 독점적이고 배타적 영향력-그것은 일반적으로 광고효과, 사회적 영향력이라고 묘사된다-을 인터넷 이용자가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으로서는 조바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때로는 그것이 뉴스에서도 나타난다.

인터넷 이용자를 유희적이고 사회일탈적인 세력으로 몰아세우는 것이다. 이용자의 발언은 신중하지 못하며 과학적, 객관적이지 않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끝내는 그들의 표현을 위축시킬만한 조치들-제한적본인확인제, 사어비모욕죄-을 취하라고 요구한다.

전통매체가 이용자 콘텐츠의 수준을 끌어 올리고 공익의 문제에 더 많이 가담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와 협업, 선택과 집중은 온데 간데 없는 것이다.

그 대신 더 많은 이용자가 자사 사이트에 올 수 있도록 옐로우 저널리즘을 멈추지 않는다. 이용자의 뼈아픈 비판과 지적이 담긴 댓글은 그것이 자사의 명예를 실추하고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억측이라는 것을 내세워 과감히 삭제한다.

언론사가 소셜미디어에 대한 체계적 접근이 취약한 것은 전담자나 전문가도 없기 때문이다. 즉자적이고 상업적인 검토만 존재한다. 함께 협력하는 파트너로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인 대상으로만 설정해 둔 것이다.

결국 소셜네트워크 이용자와 언론은 심각한 거리감이 생기고 있다. 심지어 소셜미디어 이용자 콘텐츠를 임의로 사용한다거나 이용자의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묘사하면서 적대적 관계까지 형성되기도 한다. 이렇게 손잡을 수 없는 관계가 되면서 언론은 이미 시장에서 좋은 협력자를 잃은 것이다.

언론의 정파주의는 결국 설득력 잃을 것

산업의 물결도 그럴진대 정치도 마찬가지다. 사실 지난 시절에는 전통매체가 현실정치에 독점적으로 참견해 비평했다. 유권자는 전통매체를 유일한 정보창구로 의존해왔다.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정당과 정치인들은 그런 언론과 불가분의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하지만 오늘날 언론이 현실정치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급감하고 있다. 인터넷 이용자는 정치인의 '지명도'를 높이는 원천이 되고 있다. 대통령 후보감으로 오르내리는 한 여당 지도자는 가장 많은 네티즌 팬들을 갖고 있다. 그는 그것이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 됐다. 유력한 광역단체장 후보는 인터넷에 의존해 후원금을 '성공적으로' 유치했다.

물론 언론이 현실정치에 갖는 지분은 결정적인 측면이 있다. 정치는 낡아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미디어 패러다임의 변화를 인지하고 있지만 속성상, 관행상 전통매체에 더 미련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변화가 생긴 것은 사실이다.

스스로 소셜미디어화하면서 인터넷 이용자와 직접 만나고 있다. 가장 먼저 '정견'을 남기는 곳이 인터넷이 되고 있다. 전통매체에서 정치인의 뉴스를 보는 것보다 인터넷에서 더 많이 발견된다. 언론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은 비단 정보의 유통만이 아니다. 정치인과 정책 비판, 정치현장 스케치, 정치분석과 전망같은 전통매체 고유의 현실정치 지분이 상당수 블로거의 것이 돼 버렸다.

인터넷이 정치 콘텐츠에 대한 이용자의 선택권을 강화시킴으로써 특정 언론사의 정파주의는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저널리즘의 신뢰도가 끊임없이 까발려지는 공간에서 전통매체가 추구하는 고집스런 논조는 철퇴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소셜네트워크의 이용자와 협력해야 한다는 것은 언론사 뉴스룸의 상황에선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선거와 소셜미디어는 좋은 궁합

다양한 의견이 교차하고 좋은 관점이 더 많이 공유되는 인터넷 콘텐츠의 유통 양식은 다양한 후보자의 콘텐츠가 쏟아지는 선거와 좋은 짝을 이룬다. 소수파의 정책도 다수파의 그것과 동등하게 경쟁하고 그만한 지분과 경로를 통해 인터넷 이용자에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오프라인과 온라인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첨예한 이념대결이 인터넷에도 고스란히 전이되고 있다. 선거때 폭주하는 정치 콘텐츠는 정당 등 현실정치세력에 의해 양산되고 있어 효율적이고 정상적인 온라인 소통을 가로막는 주범이 되고 있다.

또 언론과 지식인의 침묵 속에서 정부의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 규제 방침도 불변한 상황이다. 되레 언론과 지식인은 자신의 영향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통제가 불가능한 인터넷 공간과 이용자의 문화를 이단적으로 배척하는데 골몰한다.

그럼에도 서로의 기호와 니즈를 파악하고 관계를 맺는 소셜네트워크는 더욱 확장되고 있다. 이 관계는 오프라인의 연결고리들-학연, 지연, 혈연 따위를 무참하게 하는 대신 라이프스타일, 예를 들면 행동 반경과 거주 위치에 따라 교집함을 형성한다. 위계적이고 일방적인 접점들이 아니라 선택적이고 능동적인 조건들로 관계가 알뜰히 채워진다.

소셜네트워크에서는 그래서 지나친 정치는 오히려 추방된다. 문화적, 일상적인 동질감은 권장된다. 소셜네트워크에서의 선거는 이데올로기라는 특정하고 거대한 서사보다는 인물의 호감도, 정책이 삶에 미치는 영향, 주변환경에 대한 더 나은 채색들 같은 보다 개인적인 스토리를 요구받는다.

한 정당의 대표를 지내고 이번 지방선거에 광역단체장에 출마한 한 후보자는 자신의 일정을 트위터로 자주 공개한다. 다른 곳으로 이동한 뒤에도 흔적을 남긴다. 그곳에 실제로 거주하는 트위터리안들이 응답한다. "정말 열심히 사시네요!" 친밀감을 증진하는 사적인 활동인 동시에 사회적으로도 의미를 부여하는 활동이 된다.

이러한 소셜네트워크는 거대담론과 보이지 않는 힘들에 의해 유지되는 정치를 조각조각 나뉜다. 좀더 미시적이고 일상적인 소재들, 그리고 인간적인 느낌들 더 나아가 미래에 대한 창조적 혜안들이 담긴 콘텐츠가 좋은 평가를 받는다. 공급자 중심의 선거정치과정 모델이 수용자 중심의 선거정치과정 모델로 바뀌는 과정에 다름아니다.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지원하라

그러나 아직 소셜네트워크에선 이용자 참여의 과잉이 이뤄지는데 반해 조정, 중재의 과부족이 일어나고 있다. 대신 그 자리를 정부의 규제, 심의가 메꿔가고 있다. 그 배경에는 전통매체가 인터넷 이용자에 대해 갖고 있는 경계심을 기초로 경솔한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

인터넷 이용자의 다수는 공손하지 않으며 반체제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자정적인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유언비어, 명예훼손 같은 수준 낮은 콘텐츠들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한다는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이용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평판이란 점을 고려할 때 그러한 주장은 터무니없다.
이용자는 더 좋은 콘텐츠를 전달하고 주장함으로써 획득되는 평판 그리고 더 나아가 시장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지명도를 금과옥조로 여긴다.

이용자에게 정치와 이념은 실제로는 부차적인 것이다. 이용자는 표현을 통해 스스로를 완성해가는데 마치 그것은 예술가가 조각상을 만드는 것과 같다. 누가 오점을 남기려 하겠는가 - 굳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정당의 이해관계자 또는 매수된 자들일 것이다.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는 공직선거법 93조에 대해서는 지난 2002년 6월27일 헌법재판소의 인터넷에 대한 정의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은 '가장 참여적인 시장', '표현촉진적인 매체'이다. … 오늘날 가장 거대하고, 주요한 표현매체의 하나로 자리를 굳힌 인터넷상의 표현에 대하여 질서 위주의 사고만으로 규제하려고 할 경우 표현의 자유의 발전에 큰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헌재의 결정문이 이야기하는 것은 인터넷 이용자가 표현의 자유를 온전히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것이 소셜네트워크의 건강성을 돕는 일이라는 점이다. 또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오랜 논쟁은 기득권과 연관돼 있다. 자유가 확대될수록 기득권의 허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제도가 기득권을 보호하고 싶어도 그 기득권이 점유했던 공론장-시장은 너무나 보잘 것 없고 쓸쓸해지고 있다.
인터넷이 표현의 장을 걷잡을 수 없이 확장시켜 놓은 나머지 이제는 규제논의가 허황돼 보이기까지 한다.

중요한 것은 좋은 공론장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이다. 언론이 
거기에 성의를 보인다면 생존은 한결 쉬워지지 않을까? 언론이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지원하는 순간 언론과 소셜네트워크는 비로소 굳건한 동맹이 맺어질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전통매체는 이 협력을 기초로 그들의 저널리즘에 영예를 얻게 될 것이다.

인터넷에서 발언하고 공유하며 손잡는 많은 사람들은 언론과 소셜네트워크간의 협업과 공생의 관계야말로 오늘날 빛을 발해야 할 진정한 저널리즘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덧글. 이 포스트는 18일 저녁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새언론인 포럼, 언론광장 등이 공동 주최한 <소셜미디어 규제와 참여민주주의;공직선거법 상의 규제를 중심으로>에 토론자로 참여해 발언한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관련 발제자료는 파일로 등록했다.

지난 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가 주최한 <인터넷선거보도의 활성화와 공정성 확보방안> 세미나에 이어 비슷한 주제의 토론회에 참석하면서 내가 발언한 것은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은 그와 관련된 시장을 수성하려는 전통매체와 소셜네트워크간의 갈등에서 점화됐다는 것이 핵심이라는 점이다. 또 법제도와 언론이 인터넷 미디어의 속성을 잘 헤아리지 못한 데서 근본 원인이 있다고 강조했다.

언론과 이용자가 화해한다면 그것이 저널리즘을 꽃피우는 기회가 될 것이라 본다.

소셜네트워크의 이용자도 언론운동의 새로운 좌표를 만들어내야 할 필요가 있다. 종전의 정치지향적 비평운동이 아니라 산업적인 기반-집단적인 소액결제-을 지원해주는 일이다. 

이제 표현의 자유는 미디어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중대한 기로에 섰다. 서로 도와서 사느냐 아니면 서로 경쟁해서 피를 보느냐인 셈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litics' 카테고리의 다른 글

6.2. 지방선거의 시사점-정치 콘텐츠의 관점에서  (2) 2010.06.03
표현의 자유와 소셜미디어 규제 논의  (0) 2010.05.25
노 전 대통령 不在와 과제  (6) 2009.05.25
▶◀  (0) 2009.05.23

노 전 대통령 不在와 과제

Politics 2009.05.25 19:20 Posted by 수레바퀴

사용자 삽입 이미지

24일 한때 봉하마을에 퍼부은 소나기를 맞으면서 조문하고 있는 인파. 그들은 노무현 부재를 어떻게 부활시킬 것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서거하고 국민들의 추모 열기가 고조되면서 노무현 부재 시대의 한국정치를 예상하는 목소리들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버린 것과 관련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 책임소재는 앞으로 당분간 한국정치를 걷잡을 수 없는 혼돈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봉하마을 등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서 감지되는 차가운 기류는 정치갈등의 정점을 향하고 있는 분위기다.

일부에서는 사회적 타살, 정치적 살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전 정권과 정쟁의 서막이 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한 집권세력의 역사인식 한 자락이 그러한 평가의 뿌리이다.

그것은
진보정치의 씨를 말리는 격돌을 초래한 출발지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이 선출한 두 명의 대통령이 집권한 기간을 정통성 없는 것으로 단정한 비정함, 오만함 때문이다.

□ 노 전 대통령 부재(不在)는 사회적 손실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초반부터 전 정부와 날카롭게 각을 세운데 이어 검찰이 과잉 수사를 이어가며 전직 대통령을 향한 집단 린치룰 가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면에 시한폭탄처럼 재깍거리는 정치적 공방은 사법체계의 투명성, 독립성, 도덕성 같은 시스템의 결함을 항구적으로 제기할 뿐만 아니라 한 사람에게 많은 권능을 갖도록 하는 대통령제를 채택한 헌법에 대한 근본적 처방을 요구한다.

더구나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한국정치에서 '노무현'이란 키워드의 부재는 더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국민 대중에게 존경받는 정치 지도자가 없는 현실에서 서민적이고 소박한 이미지가 있었던 노 전 대통령의 부재는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한국사회 비주류에게 큰 좌절과 고통을 안겨주면서 사회적 실존으로서 향유할 꿈과 희망의 표현을 멎게 할 정도로 충격파가 깊다.

또 역사적, 정치적으로 손실이 크다. 지난 헌정사에서 한국정치의 한쪽 부분을 지키고 있던 개혁세력의 존재감을 일시에 정신적, 물리적으로 무너뜨렸기-김대중 전 대통령은 내 몸의 반이 무너지는 심경이라고 표현했다- 때문이다. 정치적 균형이 사실상의 타의에 의해 훼손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그 자신이 제의한 미래 민주주의의 역동성-쌍방향 소통의 지표를 잃게 해 그를 따르는 지지자를 비롯 전체 사회의 버거운 숙제로 남게 됐다. 이미 일부에서는 인터넷 대통령을 잃었다며 애석해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정치권, 언론과 지식인, 시민사회의 자기성찰과 분발이 없다면 노무현 부재는 좀더 우려스러운 상황으로 전개될 여지가 농후하다.

□ 이 대통령은 성공하는 대통령을 원하는가

지난해 5월 이후 수개월간 촛불시위를 컨테이너로 막는 ‘명박산성’ 이후 이명박 대통령은 ‘소통’을 어느때보다 강조했다. 1년 후 덕수궁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 주변에는 경찰 버스로 만든 거대한 차단벽이 생겼다. 이러한 바리케이드 정치가 이 대통령이 원하는 소통양식인지 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통령은 헌정사 초유의 전직 대통령 자살에 최소한 도의적인 자세를 갖출 필요가 있다. ‘공개 사과’까지는 아니더라도-민주당 송영길 최고위원은 25일 오전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전화 인터뷰에 나와 이 대통령의 공개사과를 제기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진심어린 표현이 뒤따라야 한다. 물론 이 대통령이 직접 조문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국민이 원하는 것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다.

또 이 사안에 대응하는 이 대통령의 처신도 중요하지만 퇴임까지를 고려한다면 유의할 부분이 있다. 바로 그가 보수 정파의 지도자로 자족할 것인지 아니면 광범위한 국민 대중의 지지를 받는 지도자가 될지에 대한 부분이다. 신선하고 합리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인사, 정책 등 열린 정치를 펼쳐야 한다.

앞으로 남은 정치일정을 고려한다면 이 대통령은 쇠고기 광우병 파동으로 허비한 집권 초반을 포함할 경우 남은 시간이 2~3년여 밖에 없다. 이 대통령이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지금까지 이 대통령의 통치는 대체로 철권적이었다.

지난 대선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업고 대통령이 됐으면서도 협량한 리더십을 견지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중요한 것은 이는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정치 스타일에 불과할뿐 국정을 운영하며 국민을 감동시키고 생산적인 결과물을 제시하는 동력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이 대통령을 향해 ‘독재타도’라는 구호가 나오는 것을 결코 소수 반대파의 목소리라고 무시해선 안된다. 이 대통령이 절치부심해 노무현 전 대통령 부재 이후 예상되는 대갈등-사회적 공동화(空洞化)를 메꾸는 진정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4년여 뒤를 어떻게 안심할 수 있겠는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임시 분향소 주변의 거대한 버스 차단벽. 소통을 막는 식의 국정운영은 결국 이 대통령의 리더십을 의문케 할 뿐이다.

□ 대결정치로는 국정 혼란밖에 없어  

세계적 금융위기로 국내 경제가 침체일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기예측에 대한 엇갈린 분석에도 불구하고 상당기간 많은 국민들이 고통받을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내우외환에 처한 현실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할 정치권이 사생결단식 대결정치를 지속해서는 안될 것이다. 

과반수를 넘는 국회의석을 갖고 지방의회도 사실상 싹쓸이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권력을 누리고 쓰는데 집중하기 보다는 권력을 분배하고 생산적으로 이용하는데 이바지해야 한다. 대화정치 복원을 위해서는 한나라당이 구체적으로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일단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따라 미디어 관련 법안 처리 진통이 예상되던 6월 임시국회는 2주 이상 순연될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에도 노 전 대통령 서거를 지켜본 국민의 마음을 다독여야 하는 만큼 날치기 통과나 일방적 처리는 불가능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정치일정과 역학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집권여당으로서는 조바심이 있을 수밖에 없어 확신하기 어렵다. 만약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서 인정하지 않고 정해진 절차만 강조하고 강행 처리하게 된다면 집권당의 지도력에도 심중한 회의가 들 수밖에 없다. 

당장에 10월 재보선을 비롯 지자체 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 매년 줄줄이 선거가 예정돼 있다. 지역개발 슬로건으로 프리미엄 선거를 능히 치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집권당이 국민의 바람을 져버렸다는 따가운 시선으로 선거결과는 물론 국정 전반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더욱이 노 전 대통령 서거 전후 과정에서 반한나라당 정서가 결집할 경우 이명박 대통령 집권기 내내 대결정치로 ‘식물정치’가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역시 정치력을 새롭게 조명받고 재집권의 기회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서거정치’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감동을 줄 키워드와 대중 정치인 즉, 콘텐츠를 제시해 이른바 개혁세력의 집결을 주도해야 할 책임이 있다.
 

□ 극단적 저널리즘으로는 뉴스 소비자 흡인 못해 

봉하마을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일부 기자들이 성난 지지자들의 ‘색출’을 피해 숨어서 취재를 하고 있다. 발행부수 상위에 속한 일부 신문 기자는 소속을 숨긴 채 인터뷰하는 도둑 취재를 감행, 물의를 빚고 있다. 한 방송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논조가 바뀐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봉하마을 진입과정에서 수치를 당하고 있다.  

참여와 공유, 개방이라는 웹 2.0의 미디어 가치가 인터넷 시장을 지배하고 향후 미디어 패러다임에 온전히 이식되고 있는 데도 일부 신문사들은 사주(社主) 또는 정파적 이해에 기초한 보도행태를 견지하는데 따른 비판이 커지면서 생긴 부담감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개설한 노 전 대통령 추모 게시판은 개설 48시간이 흐른 25일 오후 여섯시 현재 60만명이 넘는 방문객이 애도의 글을 남겼다. 반면 이 나라 최고 신문임을 자임하는 한 신문 웹 사이트 게시판은 230건에 불과하다. 포털사이트가 주도하는 국내 인터넷 여론문화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명백한 오디언스의 ‘선택’이다.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아우르는 저널리즘이 아니라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폭력적 저널리즘으로는 컨버전스 시대의 1,000만 오디언스 확보는 무망하다.

봉하마을 주민들조차 기성언론에 반감을 갖고 버린지 오래다.
순박한 시골 주민들에게마저도 버림받는 기성언론과 그 기자들이 컨버전스 미디어 산업을 리딩할 능력이 있는지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저널리즘을 최고의 경쟁력 원천으로 삼는 미디어 산업이 도덕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천문학적인 재원으로도 결코 국민대중을 감동시키기 어렵지 않을까?

통합과 미래적인 저널리즘으로 오디언스의 신임을 얻기 위해서는 뉴스룸 내부에 엄숙한 성찰과 숙의의 과정이 필요하다. 승부처는 퀄리티 저널리즘을 생산하는 일이다. 지난해 촛불시위 이후 봉하마을에서, 전국의 분향소에 나타난 국민의 분노를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 시민사회, 격분보다 연대의 네트워크 구축해야 

노 전 대통령 서거는 국민들에게 한국 정치의 현 주소를 확인케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비록 퇴임 이후 비리 혐의 등으로-검찰은 서거직전까지도 법률적으로 입증하지 못했다-도덕성에 치명상을 입긴 했어도 그는 성숙한 민주주의에 대한 아이콘으로 자리잡아왔다.  

노 전 대통령이 보여준 대중정치는 국민들에게 광범위한 평가를 얻으면서 정치사 한 켠을 차지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바보 노무현’이라고 불리워 질 정도로 노 전 대통령의 정치이력이 남다른 점,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상고에 진학한 환경까지 적지 않은 차별성이 거들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지난한 반독재 민주화투쟁을 벌여왔지만 집권 당시 DJP연합 등 '지역'을 얼개로 한 권력기반으로 386 운동권 중심의 노무현 정부와는 비교되는 측면이 있다. 한국정치의 고질적인 지역주의 연고와는 다른 지금의 30, 40대 세대의 문화적 동질감을 (인터넷으로) 공유하는 흔치 않은 '관통'의 서사도 있다.  

이런 대통령의 부재는 그 어떤 다른 지도자들의 부재보다 상실감이 클 것이다. 자신이 ‘실패’한 것처럼 안타까움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감정적 증오는 승화할 필요가 있다. 분향소에서도, 그리고 향후 정국에서도 책임있는 태도와 안목을 보여줄 책무가 있다. 

한국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주역은 한낱 정치인이 아니라 이들에게 힘을 위임하는 국민대중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참여적이고 합리적인 국민대중의 존재감을 아무리 무력화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웹 기반은 여전히 거대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진지이기도 했던 인터넷으로 새로운 대안과 가능성을 모색하는 큰 연대의 네트워크 형성이 필요하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지역통합과 남북화해라는 소신을 강조해온 지도자다. 이러한 가치를 확대, 재생산하기 위해서도 지지자들을 비롯 국민대중은 분노는 재우고 열망은 키우는 냉철함이 중요하다.

노 전 대통령 부재 이후 한국정치가 해결해야 할 각별한 과제를 맡는 역량있는 시민사회와 정치사회간의 큰 그림의 통합과 제휴가 형성돼야 할 때다.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litics' 카테고리의 다른 글

표현의 자유와 소셜미디어 규제 논의  (0) 2010.05.25
노 전 대통령 不在와 과제  (6) 2009.05.25
▶◀  (0) 2009.05.23
실망은 이르다  (0) 2009.04.08

▶◀

Politics 2009.05.23 10:48 Posted by 수레바퀴

사용자 삽입 이미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머리를 조아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사진은 24일(음력 5월 초하루) 낮 12시 30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 법왕루에 마련된 분향소, 긴 추모 행렬 뒤에 서서. "극락왕생 하소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litic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 전 대통령 不在와 과제  (6) 2009.05.25
▶◀  (0) 2009.05.23
실망은 이르다  (0) 2009.04.08
용산참사와 검색민주주의  (4) 2009.01.29
TAG 노무현

실망은 이르다

Politics 2009.04.08 11:11 Posted by 수레바퀴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0년 여름 '초짜' 기자이던 나는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던 노무현을 인터뷰했다. 일본과 독도문제로 갈등이 크게 일던 때였다. 그때 노 장관은 무척 감성적이었던 사람으로 기억된다.


20세기에 한국사회의 시민그룹이 일궈낸 민주주의는 경이롭고 격정적인 것이었다. 때로는 군홧발을 앞세운 총검에 피를 흘려야 했지만 마침내 정권교체를 이룬 험난하지만 숭고한 길이었다. 분노와 응집, 좌절과 치욕이 교차한 지점에 민주주의가 있었던 것이다. 

적지 않은 논란에도 지난 10년간 한국사회에 나타난 일은 그 이전의 30여년과 비교할 때 표현의 자유와 같은 보편적 시민권이 확립됐다는 것이다. 물론 특정한 정치 지도자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시민들이 현실정치와 부단히 조우한 덕분임을 잊어서도 안될 것이다.

어렵지 않게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지난 정권이 축조한 철학과 가치를 바꿔 놓기에 충분한 합법적 힘과 의지를 아낌없이 동원했다. 이 결과 부수적으로 냉전 이데올로기도 회생했으며 도처에 약육강식과 개발의 논리가 떠 올랐다.

퇴행하는 정부의 소통 방식을 겨냥했던 2008년 5월의 시민 ‘촛불’이 한때 한국 민주주의가 가르켜야 할 시침(時針)을 재확인시켜줬을 뿐 그 이후로는 속속 냉정한 사법의 감시와 경계가 밀고 들어왔다. 그때문인지 용산참사도 짧은 추억이 됐다.

오히려 만연한 사회적 보수화-정치냉소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중했다. 언론인은 정부정책과 태도에 비판적이었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시민은 거리에서 집회의 권리를 잃게 됐다. 조악한 경제정책을 비평한 ‘미네르바’는 국가기구의 검열에 영어(囹圄)의 신세가 됐다.


이렇게 믿을 수 없는 소란한 사건들이 일어나지만 현 정부의 관장 아래 놓인 방침과 대응이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들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적어도 당연한 권력이동의 결과로 이해되어져야 할 것이다.

지난 10년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위기 속에서도 절차적 민주주의를 배경으로 정권교체의 기대감을 잃지 않은 점도 그러한 이해 아래 놓여 있다. 유권자의 표로 선출될 권력을 향한 경쟁은 언제나 새로운 정부를 상정할 수 있을 정도로 확고부동한 질서이기 때문이다.

공정한 정치적 경쟁이라면 항상 새로운 정치문화는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던 시민들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이 7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사과문’은 비극 그 자체였을 것이다. ‘친노’와 ‘반노’ 진영의 희비와 이해득실은 접어두더라도 노 전 대통령 개인이 입은 데미지도 엄청날 것이다.

그러나 실망은 이르다. 큰 낙담은 불우함을 자초하는 일이다. 더구나 궁지에 몰린 노무현을 매정하게 린치하는 국면을 정면돌파하기 위해 쏟아지는 정리되지 않은 반론들도 마뜩치 않다.

예컨대 친노진영의 정치기반을 와해하려는 정치적 음모라는 시각, 전두환-노태우 비자금의 규모에 비길 바가 아니라는 일각의 반격, 차떼기 정당의 발뺌보다는 솔직한 인정과 사과가 좋다, 얼마나 청렴하면...식의 감성적 진단도 선뜻 받아들일 게재는 아니다.

으로 상당한 기간 노무현을 중심으로 사유하고 움직였던 그룹들은 노무현으로 인한 불편함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노무현’이 한국 민주주의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이다. 친노 진영이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쥐고 있는 것도 아니란 점을 유의해야 한다. 가혹하지만 노무현은 버려져야 한다.

반칙과 특권의 종식을 선언했던 노무현의 시대를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한다. 거기서 승부사 ‘노무현’이라는 인물도 극복돼야 한다. 봉하마을과 그의 홈페이지를 응시하는데 머물러서도 안된다.

가파른 시대의 변주곡을 지휘하는 새 전망이 필요하다. 장엄한 정치적 열망을 추스를 때다.

덧글. 이 포스트는 덧글과 트랙백 등 일체의 소통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litics' 카테고리의 다른 글

▶◀  (0) 2009.05.23
실망은 이르다  (0) 2009.04.08
용산참사와 검색민주주의  (4) 2009.01.29
미네르바 토론회  (4) 2009.01.17

용산참사와 검색민주주의

Politics 2009.01.29 13:43 Posted by 수레바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저서 '대중의 반역'을 통해 대중은 집단 속에 자신을 숨겨 군중심리 속에 안정을 얻는 등 현실에 안주하는 이들로 묘사한다. 대중은 언론의 확성기를 맹목적으로 좇으며 소수의 엘리트를 과신한다는 것이다.

대중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들을 더 살펴 보면 대체로 불성실하고 감정적이며, 무지하고 폭력적인 집단이라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중에 대한 더 혹독한 평가는 망각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역사적 사건으로부터 일말의 교훈을 얻고서도 곧 잊어버리는 대중의 습성은 종종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오늘날 열린 민주주의를 곤경에 빠지게 하는 것도 바로 대중의 무기력이다.

특히 정의와 진리를 탐색하고 토의하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일정한 수준의 교양이 '전통적으로' 확보되지 않은 곳에서는 사회적 야만이 그런 대중을 지배할 수밖에 없다.

이 야만은 거의 지식계에 의해 주도된다. 전통 미디어는 대중을 현혹하는 정보들을 내보내 사안의 본질로 연결된 통로로 다가서지 못하게 한다. 지식인들은 여기에 동참한다.

이에 대해 미디어 운동가들은 (전통 미디어가) 체제의 모순이 드러나지 않도록 원하는 정보만 생산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라고 일갈한다.

이것은 종종 언론이 대중의 망각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2001년 이태리 총리에 오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Silvio Berlusconi)는 대표적인 사례다.

AC밀란의 구단주이기도 한 베를루스코니는 최근 자신이 소유한 TV채널 등을 통해 세계적 축구선수 미드필더 카카(Ricardo Izecson Santos Leite)가 AC밀란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정치를 말초적인 '쇼'로 전락시키고 선정적인 콘텐츠가 뒤덮여진 미디어가 총리의 실정(失政)을 엄호하는 형국이다. 이는 이태리의 부패한 사회상으로부터 대중의 망각곡선을 최고조로 앞당기는 역할을 하게 된다.

지난 20일 용산참사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촛불로 번질 것을 두려워하는 집권세력과 이 문제가 한국사회의 모순을 응축한 것으로 보는 시민사회세력간의 공방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야당 등에서는 첫째, 이명박 정부가 아니었다면 이러한 인명참사가 일어났을까 둘째, 용역직원들을 포함, 공권력 진압은 정당하고 적절했는가로 좁혀져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지난 일주일간 정부와 전통적 미디어 그리고 일부 지식인들은 점거농성을 벌인 세입자와 전국철거민연합회(이하 전철연) 회원들의 불법 폭력시위에 방점을 두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여론조작'과 같은 새로운 딜레마가 등장했다. 지난 22일 MBC <100분 토론> 인터넷 여론조사엔 경찰의 조직적 개입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청와대는 29일 정례 브리핑에서 "인터넷에선 과격시위 책임이 있다,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를 유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졌다"고 논평했다.

과거 전통적 미디어가 주도한 여론시장에서 인터넷이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을 짐작케할만한 사건이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이 이면에는 더욱 더 가공한 시사점이 있다. 단
순한 여론조작의 가능성 못지 않게 정보가 유통되는 인터넷을 통한 민주주의에 대한 고찰이다.

인터넷이 왜 사람들에게 주목할만한 것들이 됐는지 그 배경을 검토하다보면 공통적으로 만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검색이다. 검색은 원하는 정보를 찾도록 해주는 엔진(engine)에 의해 최적화된다. 이 최적화한 검색은 사람들이 판단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인터넷은 하나의 채널이 아니라 수많은 채널을 모아서 한꺼번에 검색해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인터넷이 번창하면 할수록 검색은 모든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용산참사에 대한 시시비비, 정권의 국정운영 능력에 대한 자료, 그밖의 수많은 지표와 데이터들이 그것이다.

아무리 여론희석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위해 동원된 많은 인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인터넷은 좋은 정보를 중심으로 더 나은 토론을 이끈다. 그리고 그것은 결정적으로 엉성한 자료의 더미가 아니라 진실에 기초한 담론들이다.

검색은 이렇게 진실을 찾는 이용자들에 의해 더욱 향상된 기능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검색과 검색이 적용된 경로로 이동하면서 이제 우리는 민주주의의 다원성, 다양성에 대해 안심할 수 있게 됐다.

물론 그 안심은 아직 이르다. 인터넷과 같은 열린 플랫폼을 통제하기 위해 무리한 시도를 해서라도 정비하려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일단 인터넷을 감독하는 것이 얼마나 소모적인가를 깨우치게 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등장했다. 또 (정부에 대해) 비우호적인 콘텐츠에 대응하기 위해 우호적인 콘텐츠를 양산하는 시스템을 축조하는 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를 판단해야 한다는 합리적인 진단도 있다.

이러한 견해들이 존재하는 것은 검색 때문이다. 검색은 콘텐츠에 대한 양적인 접근만큼은 정중히 사양한다. 또한 검색은 어떤 일방향적인 흐름을 사전에 차단한다. 검색은 공정하고 합리적인 지식(정보)에 대한 갈망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검색을 통해 얻으려는 것은 객관성을 잃은 정보가 아니다. 그것은 신뢰도가 높은,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이며 그것을 뒷받침하는 체계-하이퍼링크, RSS, 트랙백 같은 것들-로 탄탄하게 구조화된다.

이점에서 한국의 일부 보수매체가 네이버나 다음, 인터넷신문에 비해 신뢰도를 잃었고 지금도 '그러한 경향으로' 굳어지고 있는 것은 유의할만하다.

여기서 정부의 태도도 검증돼야 한다. 뒤늦게 인터넷 '정책홍보'에 나선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진정성이 결여된 '타율적 동원'의 흔적이 농후하다면 전통매체의 몰락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 좋은 정보와 나쁜 정보를 펼쳐 보인 뒤 이중에서 선택하도록 하고 그 정보가 다시 여러가지 길을 열어두어 다른 정보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검색과 그 검색의 경로는 본질적으로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이미 인터넷 검색은 용산참사에 대해, 그리고 집권세력의 용산참사 접근방법에 대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무엇이 정의이며 진리인지를, 그리고 무엇이 대안이며 교훈인지를 말이다.

예컨대 메타블로그 사이트에서 여전히 '용산참사'는 중요한 키워드가 돼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물망처럼 서로 다른 견해들과 연결돼 있다.

이렇게 검색 민주주의(Searching Democracy)란 현재 대중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 대중이 원하는 공정한 결과물들을 제시하고 그 결과물들을 토대로 논의하는 과정을 담보한다. 이 과정은 결국 참여적이며 쌍방향적인 통로를 통해 민의라는 것으로 발산된다.

이 검색에 최후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망각을 촉진하는 부산물들이 채워질 여지도 거의 없다. 지식대중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에 끝없이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이에 의해 검색은 끊임없이 민의를 반영하는 살아있는 생명체로, 사회적 산물로 자리매김한다.

발전하는 민주주의에서 검색은 기술의 영역이 아니라 철학의 지평으로 승화한다. 검색시장을 장악한 포털권력이 이제 서서히 저무는 것도 그런 맥락 때문이다. 포털이 상업적으로 흘러가는 한 그것은 예상된 일이다. 비즈니스를 제패해왔지만 그 이상의 영역은 바꾸지 못할 것이다.

정치현실 속에서 다음 아고라도 변질됐고 네이버의 검색도 불량한 정보나 광고물들을 우선 제시하면서 시장의 우군들을 잃은지 오래다. 그대신 이제 검색은 지식대중에 의해 완연히 재창조되고 있다. 수많은 블로거들이 검색을 주도할 수 있는 창조적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

실제 이들은 이 아이디어를 적용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중앙집중화된 포털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여전한 한국사회에서 수많은 검색과 검색의 경로들이 봄의 대지에 피어나는 생명들처럼 번지고 있는 것은 검색 민주주의를 향한 축복으로 여겨진다.

물론 투명하고 합목적적인 검색기술에 대한 요구, 그러한 요구를 사회적으로 수용하는 제도적 장치들의 필요성처럼 검색에 대한 공공성 확보라는 주제는 이 시대의 엄숙한 화두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디지털, 네트워크 같은 초유의 용어들이 회자된지 10여년이 흘렀다. 세계의 변화는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어지고 있다. 그 덕분인지 검색 민주주의를 다루는 솜씨를 통해, 그것들이 구체화되는 인터넷을 통해 다시한번 한국사회의 대립과 갈등의 대치선을 볼 수 있게 됐다.

낙관적으로 들여다 보자면 그 대치선은 더 이상 나쁘지만은 아닐 것이다.

이를테면 용산참사는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인터넷에서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고, 검색에 의해 수많은 교훈의 콘텐츠들을 남길 것이고, 그것을 유용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의해 더욱 더 번져갈 것이고, 민주주의 그리고 철학 있는 정치적 리더에 대한 갈망을 대중에게 각인시킬 것이다.

그래서 (대중으로 하여금) 오늘날 향유하는 검색과 그것이 지향하는 그 어느때보다 명확하고 지혜로운 민주주의를 지지할 수밖에 없게 만들지도 모를 일이다.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litic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실망은 이르다  (0) 2009.04.08
용산참사와 검색민주주의  (4) 2009.01.29
미네르바 토론회  (4) 2009.01.17
`미네르바`와 한국의 지식생산구조  (8) 2009.01.14

미네르바 토론회

Politics 2009.01.17 16:06 Posted by 수레바퀴

이 포스트는 16일 야후!코리아가 주최한 '끝장 토론, 진중권 vs 변희재 "미네르바를 말한다"' 토론회에서 기본적으로 활용된 사전원고(질문과 질문을 위한 배경설명이 있는 원고)입니다.

저는 사회자로 참여했습니다. 자의반타의반으로 나가게 된 일이었습니다. 살다 보면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나지 않습니까.
 
토론회 원고는 제가 작성했습니다. 원래 주최측에서 준비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이번에는 여건이 그러질 못해 부득이 대부분을 제가 작업했습니다. 물론 하루를 남기고 부랴부랴 정리하느라 완전한 원고는 아닙니다.

토론회 때에는 상당히 다르게 전개된 부분도 있고, 네티즌들의 의견을 받는 부분이 포함됨을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지상파TV를 포함 수많은 토론회에 패널로 나간 바 있으나 사회자는 두번째였습니다. 인터넷 토론회 사회는 처음이었고요(하지 않는게 좋을 뻔 했습니다만...).

어쨌든 야후!코리아에서 준비한 인터넷 생중계 스튜디오는 흡사 방송사 같았습니다. 십여분이나 걸린 분장도 했고요.

진중권, 변희재 두 토론자는 전혀 모르는 분들도 아니어서 긴장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2시간여를 처음으로 진행하느라 미숙한 것이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기계적인 중립을 취하려고 애를 썼지만 어떻게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직접, 간접으로 연락주셨는데 이 포스트로 대신 인사 드립니다. 또 야후!코리아 경영진에게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참고로 야후!코리아의 '미네르바' 토론회 원고를 포스팅하는 것은 '기록'차원입니다.
 
"미네르바를 말한다" 진중권 VS 변희재
2009.1.16. 오후 16:00~18:00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안녕하세요?


야후!코리아 사이트에서 진행하는 미네르바 토론회의 진행을 맡은 한국경제신문 최진순 기잡니다.


인터넷 경제논객 ‘미네르바’가 사회적 핫 키워드가 되고 있습니다. 검찰에서는 미네르바 때문에 경제신인도가 실추했다며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명백한 표현자유의 침해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미네르바’가 현재 시점의 인터넷 정책의 모든 것을 압축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 인터넷 민주주의 등 많은 숙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야후!코리아는 이 ‘미네르바’를 둘러싼 복잡하지만 아주 중요한 주제들을 놓고 말씀을 나누는 자리를 열었습니다.


오늘 토론자로 참여해주신 두 분의 논객은 인터넷에서 아주 유명하신 분들이지요. 두 분은 또 최근 인터넷을 둘러싼 여러 가지 정책변화 속에서 상당히 다른 주장을 펼치면서 네티즌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분들입니다.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진중권 겸임교수입니다. 안녕하세요?

미디어발전국민연합 변희재 대표입니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야후!코리아의 진중권vs변희재, 변희재vs진중권 미네르바 토론은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며, 토론 중간에 네티즌 여러분의 질문과 의견을 받아 반영하도록 할 예정입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자, 그럼 오늘 토론을 시작하겠습니다.


I. 미네르바의 경우-법률적 문제


우선 미네르바 구속에 대해 이야기해봐야겠습니다.


Q. 어제 법원이 구속적부심 청구를 기각했죠. 그러니까 법원은 미네르바 구속이 적법하다고 했는데요. 미네르바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허위의 통신을 하는 등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고, 범죄구성요건을 부인, 증거 인멸내지 도망의 우려가 있다고 구속영장 발부를 적법하다고 했는데요.

진 교수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변 대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 허위사실 유포, 공익 침해를 이유로 들고 있는데요, 법률적 근거는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벌칙조항입니다만 너무 오래된 법률에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무리가 있다, 애매모호하다는 지적도 있고요. 지난해 촛불시위때 적용된 이후 헌법재판소에서 최종 판결을 기다리는 법률인데요.


※ 이 법률로 1심에서 유죄판결이 나온 것은 전경이 촛불시위 진압을 거부했다는 글을 올린 사람에게 벌금 선고가 있었고요, 촛불시위 참여 여대생이 경찰에 의해 숨졌다는 글을 올린 사람이 징역을 선고한 바 있는데요.


※ 정보통신망법은 반의사불벌죄로 피해자가 명확해야 하고 피해자의 적극적 수사의뢰가 있어야 하죠. 그래서 전기통신기본법을 적용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 지난해인가 휴대전화로 휴교령 문자메시지를 보냈던 10대에게 공익을 해할 목적 이 부분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는데요. 법원이 공익을 해할 목적이라는 불확정적 개념은 형벌법규가 국민생활에 지나치게 개입해 의사소통을 위축시키고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지 않도록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그랬지요


※ 하지만 또 어제인가요, 경찰이 촛불시위 참가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허위글을 인터넷에 퍼뜨린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했는데요. 법원은 구체적인 설명이 포함된 글로 사회전반에 파장을 일으키고 시위대와 경찰의 갈등을 심화시켰다면서 글의 내용과 성질, 허위의 정도, 표현방식, 사회적 파장을 고려할 때 공권력에 대한 불신을 조장한 것이 인정된다, 그러니까 공익을 해할 목적이 있다며 유죄 판단을 했지요.


※ 어쨌든 구속수사 부분에 대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여론인데요. 대법원 판사를 지낸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이나 여당내 소장파 의원 쪽에서는 구속수사는 무리하다는 정도로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 그래서 이 부분 말이죠, 전기통신기본법 등 인터넷상의 표현물과 관련된 전반의 문제에 대해서 사회적 논의, 법률적 검토가 충분히 필요한 시점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말입니다.


Q. 변대표는 어제 오마이뉴스토론회에서 “모든 허위사실과 거짓말을 했다고 처벌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법원은 사이트 규모, 대응방식, 글쓴 사람과 사이트관계 등 5~5가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책임을 묻는다”면서 미네르바 사태가 책임의 범주에 든다고 말을 했는데요?

※ 우리 헌법은 제37조에서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 법률로써 표현자유와 같은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지요?


Q. 하지만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은 침해할 수 없는 것이지요? 또 헌법에서 직접 제한한 것이 아니라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한 것이지요? 진 대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Q. 진교수께서는 공익에 중대한 해를 입었다, 20억불의 손해를 입었다는 정부측의 주장을 ‘신춘문예소설’감이라고 공박했는데요. 하지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경제시장에 혼란을 야기하거나 불안감을 준 측면이 있지 않을까요?

※ 미네르바는 자신을 아주 중요한 시장내 관계자인양 묘사한 바 있는데 말입니다.

※ 검찰은 전체 280건중 2편을 문제 삼았는데요, 전체 글을 대상으로 한게 아니니 어떤 정치적 의도가 없다고 봐야 하지 않는가, 이게 어제 변희재 대표의 주장이었는데요.


■ 네티즌 질문 수렴


II. 미네르바 사태의 함의


1) 인터넷 문화

Q. 어쨌든 인터넷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책임과 의무, 자정노력은 부족하다는 지적도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규제장치의 불가피성을 역설하는데요. 제한적본인확인제 확대나 정보통신망법 강화 움직임에도 여전히 문제가 커지고 있잖아요. 이걸 어떤 식으로든 정리할 필요는 아주 없는 건지요? 진교수님?


2) 언론, 지식인 책임

Q. 지식인, 언론의 책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미네르바 사태를 지나면서 진 교수께서는 언론이 띄워주고 언론이 헌신짝처럼 버린다, 정부고위 관료보다 더 낫다 이런 취지의 말씀도 하셨는데요.


■ 네티즌 질문 수렴


III. 표현자유 침해


Q. 부정적으로 보시는 분들은 미네르바 사태가 인신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가장 근본적인 시민권을 박탈한 것이라면서 헌법적 가치가 훼손됐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변희재 대표는 어떤 생각이십니까? 미네르바 글이 불편해서 정부가 자유를 억압했다고 보십니까?


Q. 허위사실, 거질말을 하면 모두 사법처리 대상이 된다는 게 전기통신기본법 적용의 맹점인데요. 미네르바 검거 이후 다음 아고라의 경제전문 논객들이 자취를 감췄다는데요? 혹자는 인터넷 검열시대가 도래했다고 합니다. 토론자 분들은 어떤 생각이신지요?


Q. 사이버모욕죄로 이어질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요? 어차피 전기통신기본법이 애매모호한 논란 때문에 공방이 있다면 법률적으로 아예 매듭을 짓고 가자는 것이 낫다는 지적도 있을 수 있거든요. 변 대표께서는 형법상 명예훼손죄, 정보통신망법에 사이버명예훼손 처벌조항이 있는만큼 반의사불벌죄를 빼면 추진이 가능하다 이런 판단이시죠?


Q. 진중권 교수께서는 미네르바 사태가 ‘사이버모욕죄’를 나아가는 수순이다라는 지적에 대해서 어떻게 보십니까? 사이버모욕죄로 가기 위한 노이즈 마케팅이다 이런 지적까지 나왔거든요. 정부는 제한적 본인확인제 즉, 인터넷실명제를 강화하자는 주장을 펴거든요.


Q. 미네르바의 주비판 대상이었던 기획재정부가 수사의뢰를 하지 않았는데 검찰이 나선 것이, 수사기관의 월권을 가능케하는 사이버모욕죄의 미래모습을 보여준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 사이버 모욕죄는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처벌할 수 있는데 굳이 별도의 처벌조항을 만들었는데요.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억압할 개연성은 없을까요?

※ 참고로 말이죠. 지난해 9월인가 방송통신위원회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올 상반기 동안 통신사업자들이 수사기관에 가입자 인적사항을 제공한 건수는 231,234건에 이르고 있는데요.
하루 평균 1천건이 넘는 가입자의 인적사항이 수사기관의 협조 요청에 의해 제공되었거든요. 특히 인터넷의 경우 59,330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28.1%나 증가했어요.
이처럼 수사기관이 통신사업자로부터 가입자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것은 전기통신사업법 54조 통신비밀의보호 3항에 근거하죠. 이때 제공하는 자료는 이용자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 가입 또는 해지 일자인데요. 인터넷기자협회는 IP까지 내준건 다음이 법률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는데요. 아직 다음은 해명하고 있지 않지요.


Q. 표현자유 공방은 좀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지난해 7월 행정안전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명예훼손 관련 댓글을 임시조치하지 않을 경우 처벌 조항 신설 등 50개 세부대책을 담은 ‘인터넷 정보보호 종합대책’을 내놨죠. 18일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전송망 차단까지도 가능한 강력한 저작권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죠. 경찰은 인터넷 전담대응팀을 구성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검찰은 인터넷 신뢰저해사범 전담수사팀 신설도 있었지요.


Q. 따라서 위축효과가 나고 있는 거 아니냐는 건데요. 미네르바 경우만 해도 신상정보를 알고 있다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데, 시민단체들은 이것부터가 감시이고 처벌이며 표현자유 침해다 이렇게 말했지요? 사실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5월초에도 경찰은 미국산쇠고기수입과 대통령 비판글을 올린 아이디를 지정하며 신원확인 착수사실을 공개한 바 있죠(한 주간지가 지난해10월 보도).


Q. 지난해 방통위가 입법예고한 본인확인제 확대, 임시삭제 조치 등을 내용으로 하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망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사전 검열을 부추긴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 네티즌 질문 수렴


IV. 미네르바 신드롬


다시 돌아가보죠. 미네르바 신드롬 말이죠. 생각할 것이 참 많은데요. 좀 지엽적이긴 하지만 진위여부는 어떻게 보세요. 언론도 거들고 있고 지식인들도 이제와서 공방을 벌이는데요.


1) 진위여부


Q. 여러 사람들이 미네르바의 진위여부를 두고 논란을 하고 있습니다. 진위여부를 놓고 나온 이야기들부터 시작을 해야 하겠는데요. 여전히 그런 논란이 있는데요. 미네르바는 15일 구속적부심 때 정확히 그 글을 다 썼는지 기억에 안난다 이렇게 말했는데요. 신동아 미네르바는 지금 구속된 미네르바와는 다른거 같고요? 어떻게 보세요?


Q. 학벌을 놓고 여러 가지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게 한국사회의 학벌지상주의를 다시 드러낸 것이다. 이런 말도 있었는데요. 그러니까 학벌과 전문성, 그리고 인터넷에 비전문가가 참여하는 형태, 이를테면 이런 것이 새로운 ‘기교’, ‘능력’으로 볼 수 있다는 평가도 있는 반면에는 거짓 정보, 허위 정보, 짜깁기 정보가 판치는 지식생산구조에 근본적 결함이 있는거 아닌가, 언론과 지식인, 포털 이런 곳에서 자성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미네르바 진위논란에 불거진 학벌공방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2) 미네르바 누가 신드롬을 만들었나?


Q. 미네르바가 익명이 아니라 실제의 모습으로 이런 주장을 하였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미네르바 신드롬이 익명성으로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의 특수성 때문에 가능했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Q. 미네르바 영향력은 어떻게 생긴 것인가요? 진 교수께서는 미네르바 예측이 정부보다 정확해서 그런 것이라고 하셨고, 그 예측이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면 정부의 신뢰가 그만큼 없었다는 것이라고 말씀했는데요.

※ 전문가들은 영향력이 법적 기준은 아니라는 말도 하는데요. 정부도 20억달러 손실 부분에 대해서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긴 한데요.


3) 포털 책임론


Q. 그러나 그 영향력이 상호 공평한 검증을 할 수 없는 익명의 구조에서 또 포털사이트가 의도적으로 키워서 이렇게 됐다는 지적도 나오긴 하는데요. 변 대표가 주장하는 다음의 '방조' 책임 같은 류인데요.


Q. 포털사업자가 개인정보를 순순히 넘기고 검찰수사에 협조한 대목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 포털사업자가 수사요청이 들어오면 거부없이 모두 내어준 것이잖아요. 사업자의 입장도 이해가 가는 건데요.



4) 개인정보보호


Q. 개인정보보호와 관련해서는 어떻게 봐야할까요? 인터넷기자협회에서는 다음이 미네르바의 IP까지 내어준 것은 과잉투항이다. 이런 지적을 했는데요. 검찰이 미네르바의 개인정보 제공을 요청한 것은 영장이 없어도 되는 전기통신사업법(제54조) 규정때문이었는데요.

※이 법에는 법원과 검찰·국세청·국정원 등이 범죄 수사나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 방지를 위한 정보 수집을 위해 특정사이트 이용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주소·전화번호 등을 요구할 경우 전기통신사업자는 이에 응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죠, 그런데 응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는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해서 법원에서 발부할 경우만 가능하죠. 그런데 또 이때는 통상적으로 서버를 압수해서 사업자가 크게 곤란을 겪죠. 그래서 미리 해버려준 거라고 추정된다는 의견도 나오는데요.


※ 참고로 검찰은 미네르바의 문제가 된 글, 그러니까 “정부가 7대 금융기관 및 수출입 관련 주요 기업에 달러 매수를 금지하는 긴급 공문을 전송했다”는 글이 지난해 12월29일 게재된 직후 다음으로부터 미네르바의 회원 정보와 IP(숫자로 된 인터넷주소) 등을 넘겨받은 뒤 2일 박씨의 존재를 확인했고 7일 오후 자택에서 그를 체포했다고 밝혔죠.


IV. 전망


Q. 자, 이제 정리를 해야할 거 같습니다. 미네르바 구속 전후과정에서 지켜본 다양한 규제논의, 그리고 정부의 조치가가 땜질식이다, 과잉이다 하면서 철학있는 규제, 합리적 규제의 고민을 이야기하는데요. 여론조사를 보면 절반 정도 또는 그 이상의 국민들이 규제 필요성은 인정한다 이런 통계가 없는 것은 아니거든요. 물론 그 규제 강도는 중간수준이 다수였는데요. 또 미네르바 구속에 대해선 반대여론이 많은 것 같습니다. 진교수님 전반적으로 어떻게 보세요?

※ 현재 국내 규제 방향은 일단 법적 규제에 집중돼 있는데요. 정부의 각 해당부처가 직접 나서 관련법을 개정하고, 국회의원이 새로운 법 규정을 제시하는 등 중앙집중식 규제가 주를 이루지요. 일사불란하고 사회적인 효과가 단기간에 나타나는 이점은 있지만 부작용도 만만찮습니다. 산업이나 시장에 대한 개입이 지나쳐 왜곡 현상을 낳고, 규제 순응형 기업만 양산할 우려도 있고요. 산업생태계는 물론이고 이용자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쪽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 선진국들이 콘텐츠 규제는 지양하고 자율규제는 강조하는 모양새지요. 교육이나 디지털 리터러시도 강화하고요. 물론 미성년자와 아동에 관한 보호는 강화하지만요.


※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은 IP 주소와 인터넷 메신저, 전자우편 등 인터넷 사용기록의 보관 및 휴대폰 감청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규제간 충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지난해 방통위와 행안부가 발표한 ‘인터넷 정보보호 종합대책’에 보면 개인정보수집을 최소화하는 개인정보보호법과 강화되는 제한적 본인확인제에 따르면 실명제에 따른 기본적인 개인 정보수집은 불가피하고요.

또 명의 도용이라는 역기능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개인정보 수집이 강화돼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집니다. 통신비밀보호법 역시 개인의 통신 기록을 저장하지 못하도록 한 개인정보보호법과 상충돼 인터넷 기업의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Q. 인터넷 공론장, 전자민주주의등으로 향하는 산고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제 인터넷이 본격화한지 10여년 밖에 안됐으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이 미네르바 사태는 한국민주주의의 퇴보다라고 보는 시각도 있고요, 황페화한 사이버스페이스에 경종을 울리는 단초가 돼야 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정부가 취해야 할 인터넷 정책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진교수님은 어제 민주당 최문순 의원이 주최한 토론실에서 아예 "그냥 놔두라"고 말씀하셨는데요.


Q.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서 이렇게 현행 법률로만 보더라도 상업적, 정치적으로 결박될 수에 없는 포털사이트가 인터넷 공론장이 될 수 있을까요? 대안적 사이트 구축 논의도 있었고요.


Q. 인터넷이 민주주의에 어떤 방향으로 기여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예를 들면 다음 아고라 같은 공간이 많이 생기고, 여론을 수렴하는 채널들이 늘어나야 한다고 보는지요? 아니면 정부나 지자체가 직접 개입해서 후원해야 한다고 보는지요? 외국에서는 민관이 프로젝트도 하고 있지 않는지요?


■ 네티즌 질문 수렴


예, 오늘 토론은 여기서 이제 마무리할까 합니다. 이 자리는 ‘미네르바’ 사태와 관련 보는 시각과 방법이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두분의 토론에서처럼 조금씩은 접근할 수 있는 것들도 보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두 분처럼 인터넷 논객의 자리가 중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오늘 자리해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또 많은 의견을 남겨주신 네티즌 여러분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야후!코리아는 건전한 인터넷 토론문화를 위해 더욱 힘쓸 것을 약속드립니다.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저녁입니다. 지금 밖은 몹시 춥지만, 미네르바가 마지막 글에 남긴 것처럼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은 희망 아니겠습니까.


희망을 이야길하는 즐거운 저녁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덧글. 이 많은 질문들의 답은 바로 인터넷의 '여러분들'이 갖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litic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용산참사와 검색민주주의  (4) 2009.01.29
미네르바 토론회  (4) 2009.01.17
`미네르바`와 한국의 지식생산구조  (8) 2009.01.14
미네르바 처벌하면 정부품위 손상  (0) 2009.01.10

`미네르바`와 한국의 지식생산구조

Politics 2009.01.14 15:23 Posted by 수레바퀴

인터넷 경제논객 '미네르바'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법해석의 차이, 그리고 표현자유를 둘러싼 첨예한 이념적 대립이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인터넷을 바라보는 권력과 집단지성간의 헤게모니 경쟁으로 볼 여지가 있다. 권력의 배후에는 언론과 지식계 등 20세기의 지식생산그룹들이 후원하고 있으며 집단지성은 인터넷으로 형성된 네트워크와 새로운 미디어들이 지지하는 양상이다.

이 두 세력의 갈등은 한국사회내 지식생산구조의 변화국면에서 나타난 상징적 사건이라고 할 것이다. 사실 지식생산구조는 인터넷의 등장으로 중대한 전환이 전개된지 오래다.

첫째, 지식정보의 과잉, 유사 지식정보의 범람 등 그동안의 지식체계가 감당하기에는 힘든 기술적, 문화적 쓰나미가 형성됐다. 지식을 건조하고 유통하는 양태가 변모했기 때문이다.

둘째, 전통적 지식그룹인 언론과 지식인들의 발언권이 지속적으로 축소됐다. 동시에 새로운 소통장치와 유통플랫폼을 수렴하지 못함으로써 그간 유지돼왔던 지식생산과 사회적 영향력이 후퇴했다.

셋째, 지식정보를 효과적으로 수집하고 재가공하는 집단지성의 힘이 커진 반면 이들과의 중재나 협업은 부재했다. 전통적인 지식생산 그룹들은 집단지성을 무릎꿇리는데 치중했으며, 집단지성은 언론과 지식인을 비판하면서 생기는 '평판'에 매료됐다.

미네르바 사태는 이같은 양측의 힘겨루기로 결국 상호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줄 가능성이 짙다. 왜냐하면 양측은 물러날 곳이 없는 지점에서 맞닥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침체하는 전통적 지식그룹은 집단지성의 '불확실성', '불투명성'을 놓고 마지막 포화를 쏟아부을 수밖에 없다. 반면 집단지성은 권력과 전통적 지식그룹의 부당하고 부자유한 측면을 공론화하면서 스스로의 '존재감'을 통해 '정당성'을 지켜내려고 할 것이다.

본질적으로 이 두 세력은 서로 다른 특질과 경향을 갖고 있어 '화해'의 접점을 형성하기는 아주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집단지성과 전통적 지식그룹의 비교


우선 집단지성은 블로고스피어나 다음 아고라 같은 ‘광장’에서 자신과 생각이 비슷하거나 다른 인터넷 이용자들 속에서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을 찾고 이들과 ‘친구맺기’를 통해 동질한 문화를 생산하고 있다.

이것은 주관적이고 정파적 의견의 형태를 띠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굳어진 것들은 아니다. 그러나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든 영향력의 행사로 언제나 정제되지 않고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을 안팎에서 감수해야 한다.

반면 전통적 지식그룹은 가치중립적, 객관적(으로 포장되는) 식견을 공개적으로 발표한다. 이들의 주장은 자주 언론을 통해 인용되고 사회적 영향력을 획득해간다.

문제는 정치적 포섭과 동맹 같은 외부적 요인에 의해 이들은 종종 변질되고 정치사회적인 무대로 전향(轉向)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들은 종전의 지식체계 내부에 의존하며 단계적이고 현학적인 수사에 매몰되기도 한다.

특히 지식인과 언론간의 협업이 주도한 20세기 지식생산구조에 대한 정면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때로는 산업적 위기담론에서 제조된다. 집단지성과 소통하지 않으면 전통매체의 미래가 없다는 전망 때문이다.

전통매체가 지식생산구조의 패러다임 변화를 제대로 수용하지 않고 여전히 전통적 지식그룹 체계에 놓인다면 정보의 생산은 물론이고 유통시장내 지배력, 부가가치 형성도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상당수 전통매체가 집단지성의 참여를 주요한 의제로 삼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언론계는 뒤늦게 착수한 집단지성과의 소통에 실패하고 있다. 그것은 언론이 집단지성과 제대로 손잡지 않고 단지 ‘걸치기’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전통적 지식체계에 의존하는 뉴스생산구조를 혁신시키지 못하고 있다.

결국 언론이 집단지성과의 소통관계를 정상화하지 못하면서 경영위기 구조의 심화를 자초하고 있다. 더구나 한국언론에 대한 집단지성의 근본적 불신체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더 이상 미래를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부분들을 신방겸영 등 산업적 측면으로 풀어가자는 의견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지식생산구조의 측면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는한 요원할 것이다.

그것은 정부의 역할모델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 지식인과 전통매체를 주요 파트너로 놓고 사회적 의제를 다뤄왔던 '웹1.0‘형 정부에서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웹2.0‘형 정부의 등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통의 변화양상이 과연 올바르게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부호를 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미네르바 체포에서도 드러나듯이 정부가 새로운 지식생산구조를 다루는 방법에 대한 비판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인터넷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상당수 부처가 블로그 개설 등 변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아직 집단지성의 기대치와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이버 모욕죄 도입 논란처럼 인터넷을 통제하려는 시도 때문이다.

그러한 접근이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집단지성과 더 많은 소통과 감동이 요구된다. 하지만 정부의 소통은 공직자 없는 ‘대행’ 소통, 열정 없는 ‘냉정’ 소통, 교감없는 ‘일방’ 소통에 그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웹 1.0 정부와 웹 2.0 정부


특히 정부가 집단지성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점은 우려스럽다. 인터넷의 발언자들을 이념적으로 관찰한다면 지난 10여년의 유산으로만 간주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집단지성은 전통적 지식체계보다 훌륭한 논쟁문화를 통해 편향적 참여자들을 ‘분별’하고 있다. 긍정적 부분을 더 많이 부각시켜서 생산성,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방법을 찾는 것이 인터넷 발전에 따른 사회적 기회비용을 줄이는 방법이다.

미네르바의 경우는 비록 ‘허위사실’ 유포의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지식생산구조가 낳은 ‘적자適者’이다. 미네르바로 상징되는 집단지성과는 제대로 된 소통이 필요하다. 미네르바의 신원을 알아내기 이전에, 체포하기 이전에 그와 인터넷으로 만난 정부의 감동적인 온라인 소통체계는 없었다.

미네르바에 대한 ‘처벌’보다는 ‘교감’을, 집단지성을 향한 ‘공격’보다는 ‘공존’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전통미디어 산업의 위기 가속화는 물론이고 권력의 위기도 피할 수 없을지 모른다. 이미 집단지성은 인터넷을 둘러싼 갈등의 본질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통제할 수 없는 인터넷에 대한 통제'는 결국 지식생산구조를 놓고 벌이는 전쟁이라고 할 것이다. 미네르바를 놓고 벌이는 격돌 속에서 부상하는 또다른 담화구조는 전통적 지식그룹과 집단지성 양자 모두에게 21세기의 소통 역량을 검증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미네르바'는 결국 정보 생산과 유통, 소통의 참여자들에게 '새벽'을 준 것이 아니라 해묵은 '과제'를 던진 셈이다.

덧글. 그리고 한 가지 짚어야 할 것이 미네르바의 예측이 정확했는가 하는 점이다.

많은 경제 전문가와 언론들이 이 부분에 대한 과학적 검증 없이 허송세월을 보내다 결국 미네르바가 '희생양'이 된 측면이 있다. 상당수 경제 전문가들이 새로운 소통구조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많은 오프라인의 지식인들이, 그리고 언론이 "잃을 것이 없는" 인터넷 논객들을 비방하고 인터넷 소통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식견을 표현하는데 아낌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litic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네르바 토론회  (4) 2009.01.17
`미네르바`와 한국의 지식생산구조  (8) 2009.01.14
미네르바 처벌하면 정부품위 손상  (0) 2009.01.10
기자의 `분노`  (0) 2008.12.17
BLOG main image
최진순 기자의 온라인저널리즘의 산실
역사, 사랑, 생애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by 수레바퀴

카테고리

전체 (1100)
Online_journalism (469)
뉴스스토리텔링 (8)
포털사이트 (124)
온라인미디어뉴스 (144)
뉴스미디어의 미래 (61)
뉴미디어 (44)
Politics (118)
TV (78)
자유게시판 (45)
독자의 질문에 답합니다 (8)
  • 2,201,143
  • 400498
Follow choijinsoon on Twitter

최진순 기자의 온라인저널리즘의 산실

수레바퀴'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수레바퀴 [ http://www.onlinejournalism.co.kr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NM Media DesignMyse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