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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보적인 저널리즘을 제언하는 뉴욕타임스의 혁신 프로젝트. 신뢰와 소통의 문명을 재현하는 퀄리티 저널리즘이야말로 디지털 혁신의 최고 덕목이어야 한다.


"언론의 미래는 디지털에 있다"란 선언적 화두가 제시된지 어언 10여년. 전 세계 전통 뉴스 미디어의 숨가쁜 혁신 변주곡이 요란하게 켜졌지만 안갯속인 뉴스 시장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한국언론은 매체 포화와 포털사이트 등이 압도하는 시장 경쟁 질서가 이어지며 생존마저 힘에 부치는 양상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16'의 내용은 더 충격적이다. 지난 한 주 동안 신문 잡지 등 인쇄매체를 통한 뉴스 이용은 한국이 28%로 26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사실상 최하위권에 속했다.

또 포털 및 검색 서비스에서 뉴스 소비를 시작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60%로 세 번째로 높았다. 온라인 뉴스 소비에서 스마트폰을 주로 이용하는 비율(48%)은 가장 높지만 포털사이트와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에서 뉴스를 이용할 때 뉴스미디어의 브랜드를 인지한다는 비율은 가장 낮았다. 언론사 웹사이트나 모바일 앱이 뉴스 소비의 출발점이라는 응답은 불과 13%였다. 

또 "뉴스를 거의 항상 신뢰할 수 있다"고 답한 비율은 26개국 중 22위였다. 35세 미만 젊은 세대는 고작 10%만 뉴스를 신뢰한다고 응답했다. 2015년 한 해 동안 온라인 뉴스 유료 구매 경험은 6%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외국 기관이 국내 디지털 뉴스 생태계를 들여다본 성적표치고는 우울한 잿빛이다.

정론을 펼친다는 언론산업은 왜 불신받는가

정기적으로 발표되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5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에서도 전통 뉴스 미디어의 입지 축소는 거듭 확인됐다. 가장 일반적인 시장 지표인 신문 구독률은 2004년 48.3%에서 2015년 14.3%로 계속 떨어졌다. 열독률은 같은 기간 70.6%에서 25.4%로 급감했다. 

미디어별 하루 평균 뉴스 이용시간도 종이신문(7.9분)이 크게 줄어들었다. 지난해 말 한 지상파 방송사의 메인 뉴스 프로그램의 수도권 시청률은 2% 대로 곤두박질쳤다. 이에 비해 인터넷은 103.8분, 소셜미디어는 22.7분으로 전통매체를 압도했다. 

뾰족한 대응책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해외 언론의 '청사진'만은 희망의 좌표로 자리잡았다. 7명의 <뉴욕타임스> 기자로 구성된 '2020 그룹(The 2020 Group)'이 올해 초 공개한 '독보적인 저널리즘(Journalism that stands apart)'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전 세계 언론사와 기자들에게 디지털 퍼스트(digital-first) 전략을 금과옥조로 받아들이게 했던 2014년 5월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의 재탕이라는 지적도 나왔지만 그 울림은 명징했다. 최근 2~3년 사이 독자가 주로 이용하는 매체 조합 즉, '미디어 레퍼토리(media repertoire)'나 콘텐츠의 형식 선호에 맞춰 대다수 언론이 기울인 다채로운 노력의 중심에 저널리즘 가치라는 근원적인 성찰이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디지털이 희망이라면서 왜 제대로 하지 않는가

지난 2012년 아름답고 역동적인 그래픽을 탑재한 <뉴욕타임스>의 디지털 뉴스 ‘스노우폴(Snow Fall)’은 한국언론에 큰 자극을 줬다. 수많은 뉴스 형식 실험이 곧바로 전개됐다. 그러나 콘텐츠의 완성도가 떨어지면서 ‘보여주기식’ 접근이라는 지적도 받았다.  

"이것조차 만들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던 '카드뉴스'의 경우 불과 1~2년 사이 '이용 피로도'만 쌓였다. 한때 수백만 클릭을 기록하던 데서 지금은 뉴스 혁신의 '체면치레'나 하는 것으로 전락했다.

이러는 사이 '포털 검색어 기사', '자극적 제목달기' 등 '옐로우 저널리즘'의 멍에를 벗어던지지 못한 것은 물론 '기사형 광고'를 내세운 '상업성'의 그늘만 짙어졌다. 결국 십수년 동안 포털사이트로 넘어간 뉴스 이용 점유율을 되돌리지 못한 채 고착화하는 양상이 펼쳐졌다.  

대다수 언론이 '포털 탈출'의 기대주로 꼽은 소셜미디어에서도 논란만 커졌다. 젊은 세대를 겨냥한 뉴스 스타일은 쏟아냈지만 콘텐츠 완성도는 물론 독자 '소통'은 여전히 부족했다. 더구나 일부 언론사 소셜미디어 운영자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늘어놓아 '드립' 논란만 일으켰다. 정규직이 아니라 수개월 짜리 인턴을 뉴스룸에 투입하고 '갑질'하는 뉴스룸의 허위의식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품격 있는 저널리즘의 격과 결은 쉽게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트렌드에 맞추는 콘텐츠 생산의 함정

반면 ‘스브스뉴스'-'비디오머그'의 SBS, '소셜스토리'의 JTBC 등 방송사는 젊은 세대를 겨냥한 콘텐츠 큐레이션, 기자의 직접 참여로 브랜드 마케팅까지 확장하며 주목받았다. 이러한 시도가 '완성품으로서의 뉴스'가 아닌 '과정으로서의 뉴스'를 관철하는 자극제가 될지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과정으로서의 뉴스'란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며 더 나은 가치를 수렴해가는 뉴스다.

이를 위해 <뉴욕타임스>는 "독자에게 보다 중요한 목적지가 되기 위해서, 앞으로 위상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서" 다시 한번 '보도(report)'와 '직원',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주문했다. 특히 트래픽과 페이지뷰의 성장전략은 폐기하고 독자의 습관,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긴 안목을 우선시할 것을 내세웠다. 당장의 생존과 효용성을 위해 방치하는 '베끼기', '짜깁기', '따옴표 보도'를 버릴 것이란 경고이기도 하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온라인 뉴스 동영상의 미래(The Future of Online News Video)' 보고서는 뉴스 동영상의 현주소를 뼈아프게 진단했다. 온라인 뉴스 사이트 30곳의 동영상 채널에 머무른 시간이 전체 평균 방문 시간의 2.5%에 그쳤다. 북미 지역에 한정된 통계지만 뉴스 동영상이 텍스트에 비해 실제로는 많이 소비되지 않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국내 언론은 이같은 냉정한 진단과 측정은 생략한 채 '모바일 퍼스트', '비디오 퍼스트'라는 수사적인 자기 최면에 갇혔다.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드는 자체 플랫폼 강화 노력은 포기하고 독자는 실종된 언론사 간 순위놀이에 매몰됐다. 실제로는 포털사이트나 소셜미디어를 위한 '봉사' 뿐이면서도 독자 접점 확대로 미화했다. 이 과정에서 뉴스조직의 다수 구성원이 우리가 왜, 어떻게 콘텐츠를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합의하고 움직이는 진지함은 좀체 찾아보기 힘들었다.

업의 본질은 품격과 신뢰의 저널리즘이다

<뉴욕타임스>는 단지 풍부한 멀티미디어를 제공하는 선에서 머물지 않으려면 지금과는 180도 다른 차원과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자를 비롯한 전체 구성원의 채용과 교육, 인사는 물론 취재와 보도의 수준, 콘텐츠, 업무와 역할을 세부적으로 재정의하는 밑그림을 강조한다. 디지털 전문가들을 채용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전통 뉴스 미디어는 뉴스 콘텐츠의 상품성 약화, 독자와의 상호성 미흡, 네트워크 생태계에서 연결성 빈곤으로 생태계의 주변부에 배회하고 있다. 6년 전 0명에서 1년 전 100만명 이상의 디지털 독자를 보유한 <뉴욕타임스>는 콘텐츠, 커뮤니케이션, 커머스의 위기를 '품격의 저널리즘'으로 극복해온 혁신 리더다.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저널리즘 구현, 즉 '업의 본질‘ 추구가 진정한 성장과 닿아 있음을 역설해왔다. 

<뉴욕타임스>는 무엇보다 왜 뉴스조직을 바꾸어야 하는지의 의문 즉, 원칙과 방향을 명확히 하는데 초점을 둬 왔다. 현대의 광고주들은 콘텐츠 소비를 위해 언론사의 플랫폼에서 오래 머물고 호기심과 의견을 드러내는 고객에게 주목한다는 것 쯤은 이제 상식에 가깝다. 

이 경쾌한 권위와 명성을 구가하는 신문은 고객이 원하는 정보 제공이야말로 언론사의 디지털 플랫폼이 추구하는 제1의 목표임을 거듭 되뇌인다. 첫째, 매일 습관처럼 찾아오는 곳 둘째, 시간을 아낌없이 쓰는 곳 셋째, 기꺼이 구독료 지불의사를 품게 하는 곳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말이다. 

즐겁고, 유익한 조언을 제공하는 서비스로 진화 

특히 언론사가 생산하는 모든 뉴스는 단편적이거나 평면적이지 않고 시각화(Visual-first),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같은 디지털 테크놀러지의 옷을 입는다. 모든 개별 뉴스는 다른 연관 정보들과 함께 구조화된다. 

고객을 즐겁게 하고 판단을 돕는 유익한 조언도 추가된다. 가령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지를 설득한다. 이같은 '서비스 저널리즘'을 선언한 <뉴욕타임스>는 아예 상품 추천 서비스 와이어커터(Wirecutter)와 스위트홈(Sweethome)을 잇따라 인수했다. 정보 생산자로서의 지위로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걷어내는 안내자(guidance)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언론 본연의 활동이 줄어들어서도 안된다. 탐사보도나 인사이트를 담은 논평 등 품격있는 저널리즘은 혁신의 변함없는 중심축이다.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네트워크 생태계와 충돌하는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칼럼은 지양한다. 그 대신 '다양성'과 '전문성'을 뉴스의 최고 가치로 다뤄간다. 

유연하고 탁월한 구성원을 확보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비디오 그래픽 전문가, 데이터 과학자 등 기술 분야의 권위자들은 충분히 보유해야 한다. 그러나 국내 언론사의 R&D 예산은 전무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기금지원 없이는 인프라 투자를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곳이 수두룩하다. 뉴스조직의 진화를 돕는 사회적 후원도 극히 제한적이다.   

독자 데이터·수익모델과 디지털 기술의 접목

국제뉴스미디어협회(INMA)가 발표한 '2017년 10가지 이슈'는 수익모델에 대한 고민에 상당한 내용을 할애했다. 언론사들이 처한 재정적 어려움 때문이다. 여기에는 언론과 광고주 사이의 구도가 재편되는 조짐이 있다. 가령 '브랜드 저널리즘'에 나선 국내 대기업들은 이미 미디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언론사가 우수한 콘텐츠 제작 역량을 갖추지 못하면 광고주를 설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20여명이 넘는 인력으로 자체 뉴스룸을 갖춘 한 대기업은 "우리는 (광고 관행을 바꿀) 준비가 됐지만 언론은 아직 아닌 것 같다"고 에둘러 현장을 표현했다. 사실 혁신은 기자들이 모여 있는 뉴스룸만의 문제는 아니다. 마케팅, 비즈니스 전담 인력들도 융합적인 매체 환경을 주도할 기술 역량을 갖춰야 한다. 편집국과 광고국 간의 '매출 경계 갈등'이 아니라 창의적인 콘텐츠 생산 인프라를 언론사 내부에 갖추는 시급하다. 

불확실한 콘텐츠 유료화의 과제도 만만찮다. 언론사와 기자들은 스스로 생산한 뉴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겠지만, 독자들이 외면하는 콘텐츠라면 애써 시간과 비용을 들일 이유가 없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우리 고객이 될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하고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는 과정이 없다면 일방적인 뉴스일 뿐이다. "언론은 모르지만 페이스북과 구글은 알고 있다"는 독자와 관련된 데이터 수집, 활용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 포털사이트를 비롯한 플랫폼 사업자나 대학, 연구자 등과 공동 프로젝트를 펼쳐야 한다.  

뉴스 만으로는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국내 시장에선 비미디어 부문의 수익 다각화는 앞으로 특별한 의제가 될 것이다. 언론 브랜드의 힘이 있을 때, 재능있는 파트너들과 함께 미래 비전을 그리는 큰 그림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안팎의 스타트업 창업 지원, 치밀한 투자 분석을 체계화하는 마케팅과 비즈니스의 시야가 필요하다. 

디지털 대응 속도와 트래픽에 주력하면서 놓쳤던 저널리즘의 가치를 복원하는 혁신 어젠다.


디지털 리더십·파트너십·멤버십·성과의 재정의 필요

2017년 세계 신문업계는 광고수익(628억 달러)보다 구독수익(639억 달러)이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콘텐츠의 차별화·고급화·전문화에 따르는 일관된 투자 못지않게 독자의 라이프스타일과 맞물리는 커뮤니케이션과 커뮤니티로 뒷받침해야 한다. 페이지뷰만 기록하고 사라지는 휘발적인 이용자에서 평판과 콘텐츠를 갖춘 참여지향적인 독자를 흡수할만한 멤버십이 나와야 한다. 

디지털의 성과 재정의도 필수적이다. <뉴욕타임스>는 "가장 성공적이며 가치 있는 기사는 가장 많은 페이지뷰를 얻은 것이 아니다"라고 정의한다. 다른 매체에서 접할 수 없고, 통찰력과 영감을 얻는 뉴스라면 비록 트래픽과는 거리가 멀더라도 의미 있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단독과 특종의 낡은 우상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단 한명의 독자라도 공감·반응할 수 있는 콘텐츠에 방점을 둬야 한다.

새로운 리더십도 각별한 이슈다. 정치권 광고주 출입처를 중심으로 전통적 유대와 연고에 기반한 '아날로그 리더십'을 뛰어넘는 '디지털 리더십'을 정립해야 한다. 디지털 리더십은 평등성, 개방성, 투명성, 상호성 같은 네트워크의 특성을 껴안은 통찰과 결단이다. 이는 개인의 다양성을 지지하고 집단지성의 잠재성을 도모하는 창의적인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외부 협력자를 넓고 깊게 상정하는 디지털 리더십은 콘텐츠와 관련있는 것이라면 다리를 잇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자동차, 생활가전 등 그동안은 거리가 멀었던 이종사업도 협력의 관점에서 다룬다. 위계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아니라 유연한 대화의 장을 지지한다. 더 나아가 각계의 전문가들은 물론 독자들과 친근한 벗을 자처한다.  

한국판 혁신보고서를 낸 <중앙일보>의 드문 도전은 겨우 1년여의 시간을 지났다. 척박한 국내 뉴스 시장에서 성공 사례가 나오려면 그 누구든 조급증은 버려야 한다. 폭증하는 뉴스의 시대, 다양하게 분화한 뉴스 소비자에게 '저널리즘의 가치'를 복원하는 공동의 자정과 분발이 절실하다. 허울과 구호 뿐인 지금까지의 디지털 혁신 논의를 넘어선 '신뢰·소통·독자'의 가치를 곧추세우는 대장정이 시작돼야 한다.

덧글. 이 포스트는 <관훈저널> 142호(2017년 봄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원고 작성시점은 2월 초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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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라디오를 향한 실험

자유게시판 2010.01.28 08:40 Posted by 수레바퀴

20세기 중반까지 라디오는 전성기를 구가했다.


시인 김수영은 1966년에 발표한 시 <금성 라디오>에서 금성라디오 A504를 500원 깎아서 일수로 사들여왔다고 적었다. 시인이 노래한 이 라디오는 전후의 황폐한 시대 속에서 사람들의 정신과 육체의 타락을 이끄는 기계였다. 사실 1951년 최초로 생산된 국산 라디오는 1960년대 후반에 사치품 단속 목록에 오를 정도로 귀중했다.

물론 라디오가 대중의 품에서 애지중지한 존재가 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대중의 애환을 달래줄 미디어가 부재했던 시대에 라디오의 영향력은 지대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라디오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였다.

육중하고 우직하게 보이는 라디오가 공동체의 한 가운데에 선 것이다. 사람들은 라디오를 통해 서로를 만났고 스토리를 공유했다. 세상의 희로애락이 라디오에 통째로 들어왔다. 이렇게 절대적인 라디오는 심지어 전쟁터의 이야기도, 권력의 이동도 가장 먼저 알리는 전령을 자임하게 된다.

이후 컬러텔레비전 수상기가 전국에 보급돼 TV가 여가 시간을 메우던 때에도 라디오는 굳세게 살아 있었다. 한밤 DJ가 전하는 메시지와 음악을 들으며 녹음을 하던 추억, 신청 음악을 카세트테이프에 담아 사랑하는 이에게 선물하던 순간은 지금도 마음을 설레게 한다.

# 비 소리가 좋아 창문을 열자 바람에 흔들리는 라디오 안테나.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가 점차 탁해지고 끊어진다. 안테나를 손으로 잡으니 금새 소리가 이어진다. 하지만 녹음은 실패한 일이다. 라디오 앞에 놓여 있는 관제엽서에 깨알 같은 글씨 다시 쓴다.

누구나 경험했음직한 이 장면은 라디오와 순수, 그리움, 기다림, 청춘 같은 모노 톤의 조각들을 껴안고 있다. 시인 장석남이 1990년대 중반에 발표한 시구에 등장하는 라디오는 뼛속까지 밴 외로움을 다잡는 친구로 다가온다. <로케트 건전지 위에 결박 지은 / 금성 라디오 / 한번 때려 끄고 / 허리를 돌려 / 등뼈를 푼다>
 
그 때에도 FM 주파수는 사막 위 밤하늘의 별처럼 유유하고 장엄한 좌표였다. 이 반짝이는 라디오가 사람들의 공간과 시간에 유유히 정박(碇泊)할 때만 해도 라디오에게 추락은 없을 것 같았다. 소리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듯 소리를 전달하는 매개체인 라디오의 존재감은 영원하리라 믿었다.

그러나 인터넷, 스마트폰, 와이브로, 노트북, DMB... 제대로 정돈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는 멀티미디어와 기기들은 라디오를 무참하게 만들었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점령한 미디어 생태계는 라디오를 재편하도록 독려한다. 텍스트, 그래픽, 비디오와 함께 어우러지는 변신을 요구받게 된다.

그동안 라디오는 텔레비전과 함께 존재할 수 있는 나름의 전략을 찾았다. 텔레비전이 함께 하지 못하는 시간과 공간에 재미있는 스토리를 전하는 포맷과 편성을 개발했다. 출근 시간대 자동차에서 들을 수 있는 뉴스를, 오전과 오후에는 청취자가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주로 만들었다.

또 대중에게 인기 있는 스타 진행자를 선택했다. 스타의 고정 팬을 기반으로 청취자를 늘리려는 시도였다. 또 향수를 되살리는 가요나 올드 팝, 클래식 음악과 영화 음악 프로그램이 각각의 타깃을 관통했다. 따지고 보면 라디오가 취할 수 있는 모든 현실적 방법들이 강구됐던 것이다.

최근 이러한 시도들마저 흡족하지 않은 결과를 내자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실험들에 기대고 있다. 기존의 라디오 기기가 급격히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인터넷과 휴대 단말기(Portable Device)를 통해 라디오 방송을 듣는 젊은 세대들이 트렌드를 좌우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부상하는 디지털 라디오는 우선 ‘보이는 라디오’에 착안한 전략이다. 스튜디오 진행자들을 볼 수 있도록 해 영상에 익숙한 세대에게 어필하려는 것이다. 

그 다음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의 콘셉트를 내세운다. 예를 들면 인터넷으로 ‘다시 듣기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어떤 휴대 단말기에서도 라디오를 들을 수 있게 윈도우즈를 확대한다거나 위젯 프로그램을 통해 간편하게 라디오 프로그램에 접근할 수 있게 한다.  

뿐만 아니라 청취자들의 실시간 참여도 보장한다. 전화는 물론이고 인터넷 게시판으로 신청 음악, 사연을 받는 것은 이제 일반적인 일이다. 과거에는 DJ나 작가, 연출자가 음악을 선곡했지만 청취자들에 의해서 좌우되는 경향도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디지털 라디오는 다양한 양방향 데이터 서비스로 변신한다. 음악 제목 찾기(검색), 가수, 가사 등 음악과 관련된 부가 정보 제공에 이어 교통 및 날씨 서비스, 뉴스 등 생활 정보 연동도 시작되고 있다. 진행자와 실시간 대화와 이슈 투표까지 온라인 이용자의 특성에 맞는 서비스도 구현됐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라디오는 뭐니 뭐니 해도 듣는 즐거움을 주는 것이 그 어떤 다른 것보다 중요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다양한 미디어를 동시에 소비하는 이용행태를 고려할 때 무언가를 하면서도 들을 수 있는 장점을 지닌 라디오의 본래 가치에 초점을 둬야 한다는 의미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어떤 실험이 라디오를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일인지 결론내리기는 어렵다. 다만 뉴미디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다양한 실험이 계속될수록 라디오의 잠재력은 분명 확장될 것이다. 불면의 밤을 함께 했던 친구이자 세상의 소리를 모두 담아냈던 청진기인 라디오의 변신을 기다릴 일만 남은 것이다.

덧글. 이 포스트는 매거진 <뮤인MUINE>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게재된 글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아래는 매거진 <뮤인MUINE>에 실제 게재된 내용으로 SBS 라디오 프로그램 <컬투쇼>를 중심으로 재정리한 것입니다.

시인 김수영은 1966년에 발표한 시 <금성 라디오>에서 금성라디오 A504를 500원 깎아서 일수로 사들여왔다고 적었다.

시인이 노래한 이 라디오는 전후의 황폐한 시대 속에서 사람들의 정신과 육체의 타락을 이끄는 기계로 묘사됐다. 사실 1951년 최초로 생산된 국산 라디오는 1960년대 후반에 사치품 단속 목록에 오를 정도로 귀중했다.

물론 라디오가 대중의 품에서 애지중지한 존재가 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대중의 애환을 달래줄 미디어가 부재했던 시대에 라디오의 영향력은 지대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라디오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였다. 세상의 희로애락이 라디오에 통째로 들어왔다. 사람들은 라디오를 중심으로 만났고 스토리를 공유했다.

1990년대 중반 시인 장석남의 노래에는 라디오가 뼛속까지 밴 외로움을 다잡는 친구로 등장한다.

<로케트 건전지 위에 결박 지은 / 금성 라디오 / 한번 때려 끄고 / 허리를 돌려 / 등뼈를 푼다>

텔레비전의 등장에도 라디오는 가슴 한 켠 시린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존재였던 것. 사막 위 별처럼 사람들의 공간과 시간에 유유히 정박(碇泊)했던 라디오.

그러나 인터넷, 스마트폰, 와이브로, DMB... 쏟아지는 뉴미디어 세상은 갈매기 조나단의 비행처럼 라디오를 설렘과 동시에 아찔한 도약대에 오르게 한다.

청춘의 푸른 순수를 끌어 안던 라디오는 이제 젊은 세대들에게 밀려 나고 있어서다. 영상 세대, 인터넷 세대에겐 라디오가 불편하기 짝이 없는 무용지물이란 선입견이 지배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라디오는 우선 텔레비전이 없는 시간과 공간에 차별화한 편성으로 주목도를 높이는 접근법을 택했다. 주로 출근 시간대엔 시사 정보를, 나른한 오후엔 청취자의 참여로 활력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식이다.

폭넓은 사랑을 받는 스타 진행자를 모시는 것도 잊지 않는다. 스타의 고정 팬을 기반으로 청취자를 늘리려는 시도다. 가령 주로 밤 시간대엔 아이돌 스타가 DJ를 맡아 청소년층을 라디오로 이끈다.

최근엔 ‘보이는 라디오’가 대세다. SBS 파워 FM(107.7㎒) <2시 탈출, 컬투쇼>(이하 <컬투쇼>)는 매일 오후 2시 30~40명의 방청객과 함께 공개 생방송을 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2006년 11월 처음으로 청취자들을 만난 <컬투쇼>는 정찬우·김태균 두 개그맨의 입담으로 풀어가는 토크 형식으로 대본보다는 애드립에 의존하는 꾸밈 없는 진행 스타일을 고수한다.

그러다가 지난해 11월 초엔 같은 이름의 TV쇼로 아예 케이블방송 E!TV 채널에 둥지를 틀었다. 라디오가 TV와 동행을 시작한 것이다. 

이 TV프로그램은 SBS 케이블 채널 ETV를 통해 월~토요일 밤 9시에 방송한다. 라디오 프로그램은 2시간이지만 TV는 알짜만 편집해 1시간 짜리가 된다.

TV용 프로그램이 되면서 카메라 4대로 이야기와 음악을 들려 주는 개그+음악+토크 종합 구성 프로그램으로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기존의 ‘보이는 라디오’가 고정 카메라 1대였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투자라고 할 수 있다.

이 덕분인지 같은 시간대 라디오 청취율 1위를 달리는 프로그램이 케이블TV로 오면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케이블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좀체 달성하기 어렵다는 마의 1%대 시청률에 육박하면서 방송 3개월여만에 방송사 자체 시청률 1위에 랭크됐다. 

개그맨 생활 15년차 명콤비 진행자가 방청객과 어우러지고 소통하면서 진행하는 공개 방송을 별도의 편집없이 자막만 넣었는데도 말이다. 낮 시간대 라디오를 들을 수 없었던 사람들도 밤에 TV를 통해 라디오와 TV가 결합한 분위기를 생생하게 접하면서 쌍끌이 인기대박이 터진 셈이다.

여기에 4~5년 전부터 TV 프로그램의 VOD처럼 라디오도 인터넷으로 ‘다시 듣기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물론 <컬투쇼>는 ‘다시듣기’, ‘다시보기’가 다 된다. 이렇게 현재 대부분의 라디오 프로그램은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가 일반적으로 취하는 유통전략이다.

특히 각 방송사들은 지난해 하반기 국내에 출시된 아이폰에서 듣고 볼 수 있게 애플리케이션을 개발 중이다. 음악 정보가 풍부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선택할 수 있는 라디오라면 휴대가 가능한 모바일 기기와 찰떡 궁합이 될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이미 라디오 진행자와 실시간 대화와 이슈 투표 등 온라인 이용자의 특성에 맞는 서비스는 확실히 자리를 잡고 있다.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넷 게시판엔 방청신청이나 사연들이 물밀 듯 들어오는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컬투쇼> 홈페이지의 경우 시청률 40% 국민 드라마 홈페이지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이용자들이 넘친다. 사연만 연간 이십만 건이 넘게 접수됐다.

하지만 양방향 데이터 서비스까지 구현이 가능한 디지털 시대의 라디오는 뭐니 뭐니 해도 ‘듣는 즐거움을 주는 것’이 관건이다. 무언가를 하면서도 들을 수 있는 장점을 지닌 라디오의 본래 가치에 초점을 둬야 한다는 의미다.

<컬투쇼>도 다양한 뉴미디어 실험을 하고 있지만 가장 인간적인 매체 라디오의 본래 얼굴을 찾아준 덕분에 성공한 것은 아닐까. 현대인들의 외로우과 그리움을 감싸주는 소리의 즐거움을 그 누구보다 잘 전해준 것이 라디오 생존전략의 왕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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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통합뉴스룸 재설계의 방향

Online_journalism 2008.10.30 12:12 Posted by 수레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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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통합뉴스룸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유비쿼터스 미디어 환경에서는 단일 매체의 단일 플랫폼은 큰 의미가 없고 크로스미디어 시스템을 통해 원소스멀티유스, 멀티소스멀티유스하는 것이 미디어 경쟁력을 높일 수 있게 된다.

일단 인터넷, TV, 신문의 뉴스룸을 한 공간에 합쳐서 시너지를 내겠다는 것이 통합뉴스룸의 뼈대다. 그러나 무턱대고 통합하는 것이 뉴스룸 통합의 의미는 아니다. 다양한 요소들을 분석해서 가장 합리적인 결합을 해야 한다.

따라서 모든 신문사가 그리고 방송사가 서로 다른 플랫폼을 상대하는 뉴스룸을 통합할 필요는 없다. 어떤 경우는 그렇게 해야 하고 또 어떤 경우는 그렇지 않아도 된다. 각 영역에서 어떤 경쟁을 하고 있느냐도 판단해야 하고 과연 통합 이후 효과를 볼 수 있느냐는 주판알도 튕겨 봐야 한다.

신문방송 겸영 환경이 도래하지 않은 국내의 경우 일단 신문과 인터넷, 방송과 인터넷의 통합이 이뤄지고 있다. 신문의 경우는 온라인 뉴스룸을 완벽히 통합한 것이 아니라 뉴스 생산과 편집에 오프라인 뉴스룸 종사자가 관장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중앙일보 디지털뉴스룸은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통합형 뉴스룸이지만 대부분의 기자는 조인스닷컴 소속이고, 그 감독권을 오프라인 기자가 행사하는 형식이다. 중앙일보는 Jmnet(중앙미디어네트워크)의 협업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어서 한국형 통합뉴스룸의 전형을 보여준다.

지역신문을 포함 그밖의 매체들은 편집국이 주도하거나 닷컴이 독립적으로 움직이고 있어서 전면적인 통합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제한된 여건에서 일시적인 협업을 하는 경우가 빈번한 것도 컨버전스 환경에서 국내 전통매체 뉴스룸이 보여주는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방송의 경우는 아직 온라인과 오프라인 뉴스룸 통합이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2~3년 전부터 지상파 방송사에서 인터넷 뉴스 부서를 두는 등 한 차례 바람이 일었지만 여전히 TV 뉴스의 보조적 역할에 그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CBS 노컷뉴스처럼 완전히 독립적인 매체가 CBS 뉴스룸을 사실상 대표하는 경우도 있다. ‘통합’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온라인뉴스룸이 CBS 브랜드 경쟁력을 좌우할만큼 성장했다는 점에서 평가할만하다.

SBS 보도국의 변화도 눈부시다. 기자들의 인터넷 참여가 진지하게 전개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콘텐츠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문화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통합'보다 더 쏠쏠한 효과를 내고 있다.

현재 일부 신문, 방송에서 통합의 내용과 효과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가 이뤄지면서 통합뉴스룸을 재설계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런데 통합뉴스룸 재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영적 접근, 콘텐츠 해석, 산업적 결과 등으로 간단치 않은 검증작업이다.
 
우선 통합을 해서 경영상의 효율을 거두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조직에 갈등만 키울 수 있다. 통합은 비용절감의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기구와 업무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내 통합뉴스룸의 대부분은 기계적인 ‘합침’에 불과해 경영효과를 거두는 곳이 거의 없다.

또 통합 이후 생산되는 콘텐츠가 속도와 질에서 개선되는가 부분도 결정적인 이슈다. 통합한 뒤 콘텐츠에 변화가 없다면 통합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콘텐츠 포맷이 멀티미디어인가, 디지털스토리텔링을 자주 활용하는가, 소통과 개방의 철학이 반영되고 있는가 등 검증해야 할 부분이 많다.

산업적인 예측은 어려운 부분이지만 통합뉴스룸 체제 하에서 콘텐츠 판매나 오디언스 증가 등으로 이어져야 한다. 즉, 통합은 뉴스룸 그 자체의 통합이기도 하지만 뉴스룸을 둘러싼 다른 부서와의 교감, 협력도 중요하다. 필요하다면 새로운 마케텅 인력, 기술인력의 충원도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국내 뉴스룸은 여전히 뉴스룸 그 자체에 매몰돼 있다. 시장과 오디언스는 패러다임이 이동하고 있는데 뉴스룸은 형식적 변화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뉴스룸 재설계 움직임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일단 뉴스룸 재설계는 종사자들이 필요성을 공감하는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목표나 비전이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하고, 그 과정이 충분하고 객관적으로 전개돼야 한다. 이 과정은 6개월에서 1년 정도 소요된다. 뉴스룸 변화는 결국 문화적인 통합을 지향한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뉴스룸 통합의 필요성이 진지하게 재검토돼야 한다. 자기 몸에 맞는 통합의 옷을 입어야 하기 때문이다(때로는 통합을 포기할 경우도 생긴다).

일단 통합은 비용이 지속적으로 드는 프로젝트다. 소프트웨어는 물론이고 하드웨어도 갖춰야 하고, 통합에 적합한 조직과 사람을 재충원해야 한다. 국내 뉴스룸은 대부분 내부에서 인력 재배치 형태로 소화됐다. 통합에 따른, 통합의 효과를 위한 인력 충원은 없었던 것이다.

뉴스룸의 진보를 고려한다면 정보 검색사나 콘텐츠 패키징을 전담하는 사람, 콘텐츠를 기획하는 사람 등 통합 이후를 고려한 전문가들이 있어야 한다. 앞으로 새로운 미디어의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뉴스룸의 경쟁우위가 결정될 것이다.

이들은 주로 기술과 유통(마케팅) 분야에서 필요할 것이다. 국내의 경우 정보구축이나 검색기술, 서비스 기획자 등이 포털이나 다른 신생 미디어기업에 집중된 상태다. 신문, 방송이 앞으로 통합 이후의 서비스 퀄리티와 비즈니스를 고려한다면 미래 동력 확보라는 점에서 인재양성에 힘써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통합 뉴스룸은 기자역량에 대한 재검증이 요구되고 재교육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특히 단지 기능적인 통합뉴스룸 재설계가 아닌 매체의 종합적인 비전 아래에서 뉴스룸 모델이 제시될 수 있어야 한다.

그간 국내 통합뉴스룸이 제대로 성과가 나지 않았다면 바로 이런 점들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뉴스룸 재설계를 고민하는 전통매체들은 근본적인 (철학 또는 패러다임)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이란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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