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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재담꾼, 딴지일보 김어준

자유게시판 2004.09.16 14:01 Posted by 수레바퀴 수레바퀴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와 나는 1995년 PC통신 천리안에서 알게 됐고, 199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서는 '딴지일보'와 '보테저널'로 활동하면서 '깊은' 사이가 됐다.

그후 나는 제도권 기자로서, 또 그는 여전히 자유로운 기질을 가진 21세기 창작가로서 서로 다른 공간에서 만났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나는 그때의 그 자유적 관전기로부터 멀찍이 떨어져버린 소시민이 되고 말았다.

어쨌든 김어준의 재치있고 유머스러한 대화를 들어보지 않고서는, 그에 대한 어떤 혹평도 경청하기를 사절하고 싶다. 그가 성공하는 시대에 살고 싶다.


이코노미 21 "웹진...논객..."

Online_journalism 2004.08.24 21:08 Posted by 수레바퀴 수레바퀴

“거짓없는 기계류에 진실을 담는다. 보이지 않는 진실을, 외면되는 진실을 전달할 것이다. 그러나 전달에만 만족할 것이다. 판단하려고 건방떨지 않는다. 판단은 네티즌의 몫이다.”

‘작지만 진실한 이야기’를 표방한 웹진 ‘리얼페이퍼’www.realpaper.co.kr가 지난 4월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리얼페이퍼는 장애인·노인·탈북자·재야활동가 등 기존 매체에서 잘 다루지 않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얘기를 동영상 다큐멘터리로 전하면서, 네티즌 사이에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병약한 노인으로만 비쳐지던 전직 프로레슬러 김일씨의 소망, 인권에 눈떠가는 장애인들의 목소리, 소외된 노인들의 성 문제 등을 취재하며 감춰진 ‘진실’을 전했다. 문정동 개미마을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찍은 영상물을 통해 우리네 삶의 새로운 모습을 하나둘 일깨우기도 했다.


이곳에서 처음 소개된 뒤 사연이 알려져 오프라인 방송매체에 출연하게 된 사람도 생겨났다. 리얼페이퍼는 그런 반향들을 조금씩 키워갔다. 진실된 목소리를 찾아오는 독자들의 발길도 잦아졌다.

발행인 전훈철(28)씨는 “우리 사이트를 떠들썩하게 알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독자들이 조금씩 늘었다. 음식과 취재물품을 들고 직접 찾아와 성원해주는 독자도 생겨났다”고 말했다.

그러던 리얼페이퍼가 창간 두달여 만에 위기에 처했다. 한양대 광고홍보학과 출신들이 중심이 돼 그동안 거의 무보수로 활동해온 리얼페이퍼 제작팀은 ‘돈’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닥쳤다. 최근엔 설상가상으로 편집장이 개인사정 때문에 제작팀을 떠나기도 했다.

논란 끝에 결국 리얼페이퍼 사이트의 몸집을 줄여 최소 규모로 운영해나가기로 했다. 방송광고 조감독 출신인 전씨는 “우리 시대 진실이 담긴 영상을 만들고 싶다는 게 제작팀 모두의 소망”이라며 “규모를 축소하더라도 결코 폐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자각과 모델이 필요한 때”

대안미디어로 주목받던 인터넷의 사회비평 웹진들이 위기를 맞고 있다. ‘딴지일보’의 성공 이후, 기성 언론매체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며 의욕적으로 출발했던 사회비판적 웹진들이 지난해 말부터 하나둘씩 문을 닫거나 개점휴업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주기적으로 활발하게 새로운 비평을 올리는 웹진들은 ‘더럽’ ‘대자보’ ‘망치일보’ 등 한손에 꼽을 정도다.

웹진 1세대의 대표격인 문화웹진 ‘스키조’가 발행을 잠정중단한 상태이며, 한때 네티즌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온라인뉴스’가 문을 닫았고, 시사비평 웹진 ‘제이비에스’ ‘토로’ 등이 폐간하거나 명목만 유지하고 있다.

무수한 패러디 사이트들도 상당수가 자취를 감춰버렸다. 살아남은 웹진들도 대거 등장한 상업적 뉴스 사이트의 화려함에 가려 네티즌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6월 초 창간 한돌을 맞은 ‘더럽’지 www.therob.co.kr도 상황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7월 ‘동국합섬 노동자 정희양씨의 산업재해 사건’을 독점취재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는 등 나름대로 대안미디어의 가능성을 보여줬던 ‘더럽’지 역시 최근 축소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

편집장 민명기(30)씨는 “독자들 성원이 너무나 커 폐간은 있을 수 없다”면서도 “하지만 웹진들이 명실상부하게 대안미디어로 자라나려면 다시금 새로운 자각과 운영모델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그의 지적처럼 요즘 웹진들 사이에선 ‘웹진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논의가 무성하다.두달여간 발행중단의 진통을 겪은 뒤 최근 의욕적으로 새출발한 시사비평 웹진 ‘대자보’ jabo.co.kr의 발행인 이창은(38)씨는 “기성 언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대안미디어를 표방하는 웹진들이 연대해 인터넷 매체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며 “이런 논의들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고 전했다.

대자보는 앞으로 다른 웹진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하는 식의 활동방안을 적극 모색해나갈 계획이다.

폐간된 ‘온라인뉴스’의 전 편집장 최진순(31·대한매일뉴스넷 기획팀장)씨도 “인터넷 기업의 거품이 빠지듯이 지금은 웹진의 거품이 빠지고 있는 시기”라며 “사이트 이기주의를 벗어나 지금까지 흩어져 있던 전문 웹진들이 대안미디어의 틀에서 뭉쳐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예전에 네티즌 사이에서 인기를 끌던 통신논객들을 하나로 모으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최근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www.ohmynews.com의 창간 100일 기념 세미나에서 ‘인터넷 대안미디어의 가능성’이란 주제로 발표한 사이버문화연구실장 민경배(34·대학강사)씨는 “대안미디어가 온라인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며 “최근 온라인 웹진들이 오프라인과 협력을 모색하는 등 새로운 흐름을 보이고 있는 현상은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비평 웹진들이 연대해 오프라인 매체를 내는 식으로 대안미디어의 영향력을 넓히는 것도 가능한 방안”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현실의 부조리한 권력을 허무는 새로운 대안미디어로 주목을 받았던 웹진들에게 ‘제2의 르네상스’가 찾아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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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디웹진 걸어온 길

'보테저널'에서 '오마이뉴스'까지 다양한 대안 실험

인터넷이 지금처럼 널리 퍼지기 전, 피시통신 게시판에선 날마다 성대한 말잔치가 펼쳐졌다. 이 과정에서 화려한 글솜씨와 탄탄한 논리를 바탕으로 네티즌의 주목을 받은 ‘통신논객’들이 태어났다. 이들의 한마디가 네티즌 사이에 큰 파문을 일으키면서 피시통신은 중요한 여론공간으로 급부상했다.

피시통신 게시판에 처음 등장한 정기간행물이 ‘보테저널’이다. 당시 통신공간에서 개인이 정기간행물을 발행한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개성있는 언어와 감각적 논평으로 네티즌을 사로잡으며 대안언론 초창기를 화려하게 장식한 보테저널은, 열성독자들이 사이버 기자를 자청해 글을 기고하는 등 요즘 인터넷 언론의 운영방식을 최초로 선보였다. 하지만 보테저널은 더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인터넷 물결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인터넷은 ‘딴지일보’라는 새로운 스타를 탄생시켰다. 기상천외한 패러디와 삐딱한 딴지걸기, 그리고 독설의 언어를 앞세운 딴지일보는 네티즌에게 현실 권력과 금기에 대한 도발과 전복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면서 대안미디어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패러디를 통한 비판과 풍자는 언론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신뢰성을 심어줄 수 없었다. 독설과 야유로 자극받은 비판정신은 일시적이고 피상적인 쾌락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소진되고 말았다. 딴지일보는 비판적 정론지로 나아가지 못한 채 대중문화로 편입되는 길을 걷게 된다.

딴지일보의 성공은 인터넷에 ‘패러디 미디어’를 유행시켰다. 피시통신 게시판을 주름잡던 논객들이 대거 인터넷으로 진출해 저마다 독특한 사이트를 선보였다. ‘망치일보’ ‘대자보’ ‘더럽’지 ‘온라인 뉴스’ 등이 잇따라 창간되면서 사이버 공간은 가히 인터넷 대안미디어의 백가쟁명기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이들은 영세한 자금력을 극복하지 못한 채 대부분 단명하고 말았다. 별다른 수익구조를 마련하지 못한 채 몇몇의 헌신적 노력만으로 웹사이트를 운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한계였다.

화려하지만 았던 패러디 미디어의 시대가 막을 내릴 즈음 사이버 공간에는 새로운 움직임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오마이뉴스’ ‘세이 월드’ ‘데일리 클릭’ ‘뉴스 보이’ 등 인터넷 일간지를 꿈꾸는 정기간행물들이 대거 출현한 것이다.

피시통신 시절의 1세대 독립미디어, 패러디를 앞세운 2세대 독립미디어에 이은 3세대 독립미디어로 분류할 수 있는 이들은 자체 취재진과 사이버 기자제도를 운영하면서 독자적 취재·보도 기능을 담당하는 전업형 언론으로, 가장 진화한 형태의 대안미디어라 할 수 있다.
민경배 사이버문화연구실장·대학강사

2000.6.28.

이코노미 21

미디어다음 "정보트러스트 운동..."

Online_journalism 2004.08.24 21:06 Posted by 수레바퀴 수레바퀴

"주권재민이라고 하지만 힘없는 사람들 목소리는 사회에 제대로 전달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온라인 상에서는 얘기가 달라지죠. 직업, 학벌, 재력 등에 상관없이 모두가 함께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 웹진의 태동 동기입니다."

모뎀을 통해 처음 PC 통신을 연결했을 때 나던 '삐' 소리를 떠올리면 지금도 가볍게 흥분된다는 민명기씨(31). 정보 트러스트 '릴레이 인터뷰' 네 번째로 미디어다음이 만난 사람은 90년대 후반 '더럽지'라는 웹진을 창간한 사이버 논객 1세대 민명기씨다. 그는 대학생 때인 92년 천리안 시사토론 게시판인 '나도 한마디'에 글을 올리면서 왕성한 기고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웹진 창간이 활발하던 99년 6월 능동적 사회비판을 모토로 '더럽지'라는 웹진을 창간하기에 이른다.

민씨는 소시민이 제 목소리를 못 내고 정치에 참여하는데 제약을 받는 현실이 "치사하고 더러워서" 웹진 이름을 '더럽지'로 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초기 시절 비해 질 높은 정보공유 활발

- 정보트러스트 갬페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좀 늦은감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보다 IT 분야에서 뒤쳐져있다는 미국에서도 이미 3~4년 전부터 정보보존운동이 시작됐습니다. 이번 행사가 일회적인 행사에 그치지 않고 시민사회 단체나 기업들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현재 우리사회의 정보공유 수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정보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라 질입니다. 인터넷 초기 시절에 비해 정보 접근이 많이 통제되고 있다고 하지만 초기에 비해 질 높은 정보가 많이 공유되고 있습니다. 단지 개인정보를 기입하는 식의 회원가입 절차를 마련하여 순수한 정보 공유가 아닌 상업적 정보 공유로 변질되는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정보공유의 유료화 과정도 어쩔 수 없는 수순이라고 봅니다. 좀 더 좋은 정보, 남이 가진 정보를 얻기 위해서 대가를 지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너무 상업적으로 흐른다면 곤란하지만요. "

- 정보공유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과거에 기반을 두지 않은 미래란 없습니다. 정보통신부에서는 새로운 디지털 컨텐츠 육성에만 주력할 것이 아니라 사이버 박물관 등을 마련하여 정보공유의 창고를 갖추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이버 논객들의 주무대 PC통신 게시판

PC통신에 사이버 논객이 형성되던 시절의 상황을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90년대 중반 천리안, 하이텔 등에서 내로라 하는 논객들이 큰 게시판에서 사회 현안을 둘러싼 공방을 벌여 화제가 됐습니다. 게시판에서 뜬 스타 논객들에는 김어준(현 딴지일보 대표), 최진순(현 대한매일 뉴미디어국 뉴스팀 팀장), 김동렬씨(인터넷 칼럼니스트) 등이 있습니다. 97년 들어서는 사이버 논객들 사이에서도 의견을 같이하는 사람끼리 모여 김어준파와 최진순파로 나뉘게 됐죠."

이렇게 나뉜 사이버 논객들은 게시판에 올린 글들을 모아 말머리를 달고 그 밑에 글을 다는 형식의 저널형태로 게시판을 꾸려가기 시작했다. 김어준씨쪽은 '딴지일보'를, 최진순씨쪽은 '보태저널'이라는 이름으로 정치 및 선거 관련 글들을 활발하게 올렸다. 이 밖에 망치일보, 수세미일보, 만두일보 등도 당시 유명했던 저널형태의 게시판이었다.

"기성 언론 비평"에 네티즌 시선 고정

사이버 논객들은 인터넷 인구가 폭발하면서 주무대를 인터넷으로 옮겼다. 98년 딴지 일보의 인터넷 이적을 신호로 웹진 창간 붐이 일었다.

"당시 웹진을 만들어 배너광고를 유치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이 만연하면서 웹진 창간 붐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더럽지'를 창간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통신 게시판에 올린 글이 삭제된다는 데에 있었죠. 공들여 쓴 자식 같은 제 글을 보존하고 싶은 욕구가 웹진 창간으로 이어졌습니다."

99년까지 계속 천리안 게시판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던 민씨는 곧바로 기자모집 공고를 냈다. 서울을 비롯하여 울릉도, 미국 등 각지에서 지원을 했다. 이 중 10여 명이 모여 그 해 6월 드디어 능동적인 사회비판을 모토로 한 '더럽지' 1호가 나오게 된다.


당시 웹진의 역학구도는 딴지일보를 시작으로 망치일보(98년 7월 창간), 정보 민주주의를 외치며 99년 1월 창간한 대자보의 삼파전. 그러나 창간 붐을 타고 웹진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당시 크고 작은 웹진들을 모두 합치면 200여 개에 달했을 정도다.

그는 "당시의 웹진들은 대안언론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다"며 "조선일보를 패러디, 각종 사회비리를 과감히 꼬집는 등 기존 언론의 잘못된 관행을 비판하고 언론개혁을 주창했던 진보를 표방한 웹신문이 대부분이었다."고 회고한다.

2000년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웹신문들은 경제적인 어려움과 낮은 인지도 등으로 활동에 제약을 받는다. 영세한 웹진이 사라지면서 뉴스보이나 데일리 클릭, 아이뉴스24 등의 기업화된 거대 웹진만이 생존하는 상황을 맞게 된 것.

민씨는 그러나 "초기 웹진의 시행착오 모델 있었기에 오늘날 웹진이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당시 활동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미래 웹진, 화려한 UI 구현가능해질 것

"요즘 웹진들을 보면 너무 상업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아 염려스럽습니다. 기사의 팩트나 정확성은 예전보다 좋아졌지만 경제적 이익 때문에 글을 쓰는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이익단체를 대변하거나 특정 업체를 홍보해주는 홍보성 글쓰기 등 기사를 쓰는 의도에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기사가 많습니다."

10년 후 웹진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겠냐는 질문에 "10년 후 웹진은 방송국의 형태를 띄고 있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는 웹진의 미래에 대해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고 텍스트보다 사진과 그래픽, 음성과 동영상 등의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활발히 구현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2003.10.21.

미디어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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