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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뉴스 전략. 경성 뉴스에서 연성 뉴스까지 두루 아우른다.


"언론사 뉴스조직을 나무에 비유하고 싶다. 열정적인 혁신가는 가지치기도 하고 나무를 접붙이기도 하면서 품종을 개량하는데 몰두한다. 현실적이다. 저같은 기자는 근원을 돌아봐야 한다. 밑둥의 뿌리를 봐야 한다. 저널리즘 신뢰나 명성 같은 것들이다. 참 어려운 일이다. 미래 연구자는 땅을 보고 숲을 살핀 뒤 나무의 위치를 바꾸려고 한다. 정체성을 개조한다는 점에서 장기적이고 파괴적이다.

그런데 오늘날 뉴스조직의 혁신은 판을 바꾸는 혁신에 나설지 아니면 그저 그런 혁신에 매달릴지의 갈림길에 있다. 전자의 경우는 구조적인 승부수다. 새로운 길을 여는 혁신이다. 그런 류의 혁신은 지난 20여년 사이 국내 언론계에도 등장한 바 있다.

시민기자를 내건 <오마이뉴스>, 라디오 기자도 온라인 뉴스에 관여케 한 '노컷뉴스'의 CBS, 본판보다 주목을 높인 '비디오머그'의 SBS, 명성과 포맷 그리고 온라인을 잘 활용한 '손석희'의 JTBC는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이런 혁신도 오래 갈수록 새로운 혁신으로 이어져야 성과를 낸다. 판을 바꾸는 혁신이 계속 필요한 셈이다. 그래서 각 매체의 고민도 나날이 커지고 쌓인다. 더구나 레거시 미디어의 조직혁신은 쉽지도 않다. 혁신에 영향을 미치는 숱한 변수와 장벽들도 있다. 대체로 그것은 내부에 있다. 그래서 내부를 잘 모르는 접근은 실패의 가능성이 높다.

현재 방송 뉴스의 온라인 이용행태는 크게 네 가지다. 첫째, 방송사의 공식채널(앱, 웹)을 통한 뉴스 시청이다. 대다수 매체가 이 비중이 낮다. 둘째, 유튜브를 통한 생중계가 있다. 중요한 채널이 된 만큼 핵심역량이 집중돼 있다. 셋째, 방송뉴스를 실시간으로 재전송하는 포털이 있다. 여전히 주목도가 높은 채널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넷째, '다시 보기'가 이뤄지는 형태다. 방송뉴스를 꼭지별로 쪼개고 텍스트 기사에 영상클립을 임베드한 것이다. 방송뉴스는 '다시보기'를 할만한 매력적인 장르는 아니지만 이 경우 포털검색이나 포털 뉴스채널 안에서 이용자의 선택을 받는다.

하지만 최근 방송뉴스를 둘러싼 디지털 환경은 녹록치가 않다. 우선 전례없는 영상뉴스의 공급증가다. 청년층은 이미 고정형TV를 떠났지만 소비는 늘고 있다. 방송사들의 세컨드 스크린 전략이 자리잡았다는 의미다. 즉, 뉴스공급자 측면에서 수요증가를 이끌고 있다. 그러나 이런 환경에서는 홀로 성과를 독식하기 어렵다는 것도 자명하다.

둘째, 오디언스 측면에서 영상뉴스 소비가 늘고 있다. 가짜뉴스가 늘고 있다. 큰 이벤트가 많이 발생한 1~2년 사이 미디어 수용자의 일차적 행동 가운데 하나는 방송뉴스를 찾는 것이다. 쟁점을 확인할 때는 큰 매체의 방송뉴스를 살핀다.

셋째, 공급과 수요가 늘었지만 오디언스가 원하는 형식과 내용이 달라졌다. 그 가운데 두드러진 것이 예능형 뉴스, 해설형 뉴스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썰전 강적들 스트레이트 등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유도현 닐슨코리안클릭 미디어부문 대표는 "이 프로그램들을 방송뉴스의 범주에 넣는다면 그 오디언스는 결코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다시 본질로 돌아가고자 한다. 방송뉴스가 처해 있는 이 생태계는 도대체 어떻게 변모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퓨리서치(PEW)에서 낸 '2025년의 인터넷' 보고서'는 인터넷의 극적인 진화를 기대와 우려의 시선으로 정리했다.

이를 재구성하면 긍정적인 측면은 여덟 가지 정도다. 첫째, 인터넷이 삶 그 자체가 된다. 콘텐츠가 커머스가 되고 커머스가 커뮤니티가 되고 다시 콘텐츠가 된다. 내가 있는 곳에서 인터넷에 들어오면 일상이 움직이고 그 자체가 배경이 된다.

둘째, 여전히 TV로 지구 곳곳을 볼 수 있지만 인터넷에 접속하면 그곳 사람들과 '이웃'이 된다.

셋째,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및 빅데이터는 사람들을 더 현명하게 이끌 것이 확실하다.

넷째, 증강현실 그리고 휴대형/착용형/체내삽입형(portable/wearable/implatable) 장비들은 실시간으로 정보를 모니터링한다.

뉴스조직은 어떤 정보를 만들 것인가 또 뉴스조직은 우리의 재능있고 재담있는 오디언스와 어떻게 조우할 것인가? 우리가 판을 바꾸는 혁신을 잊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면 말이다.

다섯째, 차별, 불평등, 억압 등 사회적인 갈등요소들을 폭발적으로 드러내고 새로운 전기를 이끈다.

여섯째, 기존 국가와 규범을 벗어난 사람들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새로운 질서, 체제 혹은 문화가 형성된다.

일곱째, 글로벌로 확장되는 보편적인 서비스 한편으로 보안을 강화한 개인화한 채널이 주목받는다.

여덟째, 더 많은 정보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지식 범람이 일어난다.

뉴스조직은 훌륭한 구성원을 확보하면서 더 똑똑해지고 더 유연하며 품위를 잃지 않은 채 중재하거나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가?

워싱턴포스트지의 구사옥 로비의 게시물. 관내 커뮤니티와 만나는 이벤트를 담은 월간 일정을 기록했다. 이 신문은 제프 베저스 인수 이후 코럴 프로젝트(Coral Project)를 통해 오디언스와 접점을 늘려가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 디지털 문명은 우리를 불편하고 힘든 과제 앞에 몰아갈 수 있다.

우선 물리적 정신적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분열과 폭발이 빈번히 발생하고 저항과 처벌이 반복된다. 또 집단적 사고-군중심리가 두드러지며 거짓정보가 폭증한다. 국가와 기득권은 이에 맞서 규제와 감시를 내세운다. 사람들의 관심사와 약점을 간파한 알고리즘은 확증편향을 가속화한다. 고도화하는 기술은 인간의 지혜를 시험한다. 불성실한 태도, 불확실한 예측들이 우리를 곤란하게 만든다.

뉴스조직은 인터넷과 함께 고유한 능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면서 혁신했다. 탐사저널리즘, 서비스저널리즘, 데이터저널리즘, 로봇저널리즘 등 진화를 거듭했다. 그 결과 뉴스조직에는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났다.

하지만 인터넷 이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도 있다. 첫째, 전통적인 정보 생산자 언론과 출판 즉, 레거시 미디어는 뉴스(정보)의 질과 양, 형식에 일정한 변화를 주도했다. 더 나아가 공급자 숫자도 증가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뉴스와 조직의 차이는 없어지고 있다.

둘째, 그대신 소수의 플랫폼 사업자가 힘이 세졌다. 혹시 어느 한곳에 힘이 빠지더라도 또다른 기술기업이 그 힘을 메꾸는 방식이 반복되고 있다. 기술기업이 독점한 '기술 통제권'은 앞으로도 공급자를 곤란하게 만들 것이다.

셋째, 오디언스는 이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다. 더욱 주도적인 위치에 서고 있다. 특히 공개된 기술을 가장 잘 활용한다. 그들은 더 많은 정보에 효율적으로 다가서고 더 많은 정보를 만들고 있다. 그 정보의 가치도 정의하고 있다.

넷째, 거대한 네트워크의 강력한 영향력은 이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이다. 오디언스를 서로 연결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시작할 수 있는 열쇠이다. 제프 자비스 교수는 2020년 미디어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거대한 커뮤니티가 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사실 디지털 혁신의 품격을 높이는 세계의 유력언론은 오디언스를 파악하고 상호 영향을 주고받기 위해 헌신한다. 불과 몇 년 뒤의 뒤엉킨 전망과 사실에서조차 더 분명해지는 것은 뉴스조직의 디지털 투자 즉, 혁신은 오디언스를 향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저널리즘의 신뢰와 명성을 높이고 그 가치를 확장할 수 있으려면 훌륭한 오디언스와 상호작용하는데 나서야 한다. 그것이 판을 바꾸는 혁신이다.

BBC의 오디언스팀. 오디언스의 이용행태는 물론이고 다양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효과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다시 묻는다.

● 우리의 오디언스는 누구인가? 뉴스를 이해하며 의견을 제시하고 논쟁의 살을 붙이는 오디언스를 찾는 과정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충분히 이뤄지고 있는가?

● 그 오디언스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기대하는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가? 그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것과 우리가 원하는 것을 교환하고 있는가?

● 우리의 잠재적인 고객은 어디에 있는가? 새로운 오디언스를 찾는 계획과 투자는 전략적으로 이뤄지고 있는가?

BBC의 오디언스팀은 100여명이 넘는다. 매년 수백억원을 지출한다. 오디언스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류하며 대응하는 모든 활동에 그들은 '미래'와 '경영'의 화두를 붙인다. 2017~2020년 BBC의 전략적 목표 가운데에는 오디언스 데이터를 수집하고 그것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다양한 노력들이 첨부되었다.

2013년 시작된 예산 7,600만 파운드 규모의 'myBBC' 프로젝트는 쉽게 말하면 오디언스가 자신의 정보를 BBC에게 건네고 로그인하게 만드는 것이다. BBC는 그들에게 자신들의 분별력 있는 콘텐츠를 제공한다. 예를 들면 '느린 뉴스'와 세로형 영상 같은 '모바일 최적화' 포맷에 주력한다. 분석의 깊이를 더하는 데이터저널리즘도, 뉴스앱을 통한 푸시 알림 기능, 건강-환경 등 삶에 밀착한 뉴스 등등도 모두 자사의 훌륭한 오디언스를 연결하는 것을 전제로 한 전략이다.

만약 지상파방송사가 판을 바꾸고 새 길을 여는 혁신을 고민한다면 먼저 오디언스로 향해야 한다. 2012년 페이스북 임원은 "지능적인 화면을 탑재하는 자동차 제조업체는 운전자와 그들의 친구 사이를 연결하고 사회적 맥락을 활용할 수 있는 화면을 만들길 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 <뉴욕타임스>의 한 간부는 "우리는 20세기에 넘볼 수 없는 명성을 가졌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나아가서 그들과 손을 맞잡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모든 디지털 플랫폼은 연결된 개인을 향해 지속적으로 설계된다.

많은 방송뉴스 조직은 톱다운 방식을 택했다. 일부는 그 이후 독립적인 문화를 갖춘 조직을 일궜다. 그 어떤 혁신이든 기술, 경험을 내재화하고 시스템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없으면 용역조직을 갖추고 비용 주판만 튕기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뉴스조직은 이런 방식을 택해서는 안 된다.

특히 훌륭한 오디언스를 찾고 서로 연결하는 것은 오로지 뉴스조직의 핵심 미션이 돼야 한다. 매일 당신들의 뉴스에 말을 거는 사람들, 의지와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한다.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연거푸 만들어야 한다.

카드뉴스, 짤방, 말랑말랑한 뉴스 등 네이티브 세대를 위한 트렌디한 뉴스형식을 만드는 노력을 멈추라는 말이 아니다. 오디언스 접점을 늘리고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것은 다매체 다채널 환경에서 판을 바꾸는 혁신에 비하면 손쉽고 보잘것 없는 혁신이다. 방송뉴스의 경쟁구도를 바꾼 태블릿 PC 이슈 같은 기적은 더 이상 재현되기 어렵다. 체계적이고 일관되게 오디언스를 확보하는 노력만이 혁신의 전부이며 핵심이다. 당신의 뉴스조직에서 그것을 해낼 수 있기 바란다."


덧글. 이 포스트는 최근 한 지상파 방송사에서 강연한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일부 민감한 내용과 해당 방송사 만의 사안은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사설(私設) 방송 <나는 꼼수다>가 묻는다

뉴스미디어의 미래 2011.08.26 15:38 Posted by 수레바퀴 수레바퀴

인터넷 라디오 방송 <나는 꼼수다>의 인기가 파죽지세다. 다루는 주제부터 형식까지 파격 그 자체인 <나는 꼼수다>가 CNN과 ABC 등 내로라하는 미국 뉴스 미디어들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나는 꼼수다> 콘텐츠는 팟캐스트(Podcast)에 등록된다. 팟캐스트란 아이폰으로 아이튠즈에 접속해서 음악이나 음성 등 오디오 파일을 다운로드 받아 두었다가 언제든 듣고 싶을 때 들을 수 있는 서비스를 말한다.

애플의 아이팟(Ipod)과 방송(Boradcasting)을 결합해 만든 신조어로 지난 2005년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 '라디오 방송을 디지털로 녹음해 인터넷에서 개인 오디오 플레이어로 다운받는 것'이란 뜻으로 수록된 바 있다. <나는 꼼수다>를 비롯 음성 파일들은 다른 모바일 기기에서도 들을 수 있고 PC에서도 마찬가지다.

객관적인 청취율 조사는 어렵지만 현재 국내 아이폰 가입자수가 약 350만명이고 안드로이드폰을 포함해 연내 스마트폰이 2,000만대 가량 보급된다는 것을 감안할 때 상당한 이용자가 <나는 꼼수다>와 접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분위기에 <나는 꼼수다>를 둘러싼 팽팽한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전통매체를 대신해 금기와 성역을 향하는 비평", "정치 현실이 빚은 난감한 사설(私設) 방송" 등 의견도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나는 꼼수다>는 우리가 알고 있던 '방송'은 아니다. 방송법에서는 방송 프로그램을 기획, 편성 또는 제작하여 이를 공중에게 전기통신설비로 송신하는 것을 '방송'이라고 한다.

불특정 다수인 공중에게 배포하는 행위가 아닌 특정 디바이스에 특정 가입자를 대상으로 선택적 다운로드가 이뤄지는 제한적 서비스인 <나는 꼼수다>는 일단 현행 법에서 자리할 곳이 없다.

일요신문 2011년 10월 16일자.


기존 방송과 다르게 이용자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아무 때나 들을 수 있어 맞춤형 개인 미디어를 대표하며 '미친 존재감'을 보여주는 <나는 꼼수다>는 2000년대 초반에 등장했던 인터넷개인방송, 블로그 같은 1인 미디어를 경험한 이용자에게는 사실 낯선 것은 아니다. 

트위터, 페이스북에서 '콘텐츠'를 퍼뜨리고 의견을 교환해 본 이용자 역시 <나는 꼼수다>를 '진보한' 서비스로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또 신문, TV 등 전통적인 콘텐츠 생산자 역시 웹캐스트나 팟캐스트로 이미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어 색다른 시도도 아니다.

대부분의 전통매체 기자들은 `나는 꼼수다`를 불편하게만 들을지 모른다. `나는 꼼수다`의 치명적 매력이 무엇인지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리고 그것은 지금의 뉴스룸 내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 채널을 선택, 수렴하는 독자와 시청자에게 알아내기 전까지는 아마도 계속 그럴 것이다. 전통매체가 저널리즘의 신뢰를 다시 꽃 피워 청명한 울림으로 `나는 꼼수다` 같은 사설 방송을 덮는 시원섭섭한 그날이 어서 왔으면 싶다.





그럼에도 <나는 꼼수다>가 각광을 받는 것은 첫째, 시기가 좋았다. 인기를 끄는 미디어 서비스는 동시대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짚고 제때에 맞춰 제공해야 하는데 <나는 꼼수다>가 그랬다.

개인용 디바이스인 스마트폰의 폭발적인 보급 시기와 동선을 같이 하는 것도 거들었다. 하지만 전통매체는 콘텐츠 생산과정이 아직 아날로그적인 부분이 많아 대체로 속도가 더디다.

둘째, 새로운 콘텐츠 유통 방식으로 파급 효과가 월등히 높다. 지상파방송 프로그램은 전파나 케이블망에 의존한다. 신문은 각 지국에서 보급한다. 전통매체도 인터넷이나 모바일 서비스는 하지만 포털 같은 재매개 플랫폼에 맡기거나 오랜 관행에 따라 서비스하기 일쑤다.

반면 <나는 꼼수다>는 이용자가 스스로 찾고 공유하는 모델이다. 따라서 '자가발전'이 필요하지 않다. 이렇게 하는 데도 <나는 꼼수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나는 꼼수다>를 들어 본 사람들끼리 도와서다. 그들은 콘텐츠 수신자-소비자가 아니라 송신자-(메시지)발화자다.

셋째, 사람들이 원하는 내용을 전달한다. 전통매체는 콘텐츠 이용자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보다는 공급자 관점에서 결론 내리는 경우가 더 많다. 독자와 시청자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된 '조사'를 해 온 언론사는 거의 없다.

인터넷의 등장 이후 왕성하고 상호적인 평판은 저널리즘의 신뢰도에 금이 가게 했다. <나는 꼼수다>는 전통매체의 그 균열 지점을 파고 들었다. <나는 꼼수다> 탄생과 인기는 분명한 사회적 동기가 있다지만 출연자들끼리 마구 떠 들어도 이용자가 공감할 콘텐츠가 그득하다.

이에 대해 <나는 꼼수다>의 리더격인 <딴지일보>의 김어준 총수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방송"이라고 정의한다. 시청률에 목을 매단 채 일희일비하고 광고주에 얽매인 전통매체와는 기본적으로 '애티튜드(atitude, 태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또 김 총수는 "<나는 꼼수다>로 덕을 볼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악전고투하며 뉴스나 드라마,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전통매체 종사자에겐 억울한 노릇이지만 해바라기성 언론인을 향한 일침에 해당한다.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만큼 냉랭한 반응도 적지 않다. <나는 꼼수다>는 선술집에서나 나눌 법한 이야기들을 방송이라는 형식으로 둔갑한 사이비 방송이라는 지적이 그것이다. 복잡한 정치 현실 탓에 어부지리 성과를 거둔다는 분석도 있다.

어쨌든 <나는 꼼수다>는 현재진행형이다. 매회 아슬아슬한 정치(인) 이야기를 쏟아내며 신문, TV의 시사 분야 콘텐츠와 경쟁 아닌 경쟁을 즐기고 있다. 물론 뉴스의 문법, 뉴스룸의 지향점, 권력과 광고주와의 커뮤니케이션 등 전통매체가 유지해 온 것과 <나는 꼼수다>는 현격한 거리를 두고 있다.

이 차이를 그저 인정하고 외면하면 그 뿐일까? <나는 꼼수다>가 오롯이 묻고 있는 시절이다.

덧글. 이 포스트는 한국기자협회보 온앤오프(62)에 게재된 글입니다.

미디어오늘 기자가 26일 오전 <나는 꼼수다> 인기 비결이 뭐냐고 물었다. 이날 마침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이 <나는 꼼수다>에 대해 '놀라움'을 표했다고 한다. 전통매체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 중 최고의 시사 프로그램이 어두운 지하세계의 방송 <나는 꼼수다>를 다룬 셈이다.

최근 의도와는 다르게 블로그나 기고글을 통해 <나는 꼼수다>를 자주 알려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이 방송이 조금 어색하고 불편하다. 아주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다루는 형식 때문이다.

물론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미디어 수용자의 태도이다. 지난 10여년간 사람들은 '나'와 '타인'의 스토리를 즐기고 공유하는 문화에 익숙해졌했다. 대체로 그런 스토리들은 다이내믹하고 비주얼한 포맷과 내용으로 채워졌다. 당연히 사람들은 콘텐츠를 소비할 때 더욱 더 높은 기대치를 갖게 됐다.

<나는 꼼수다>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사실 기존 미디어도 심지어 뉴스도 온라인을 통해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들을 제공해온 것이 사실-최근까지도 뉴스는 철저히 상업적 플랫폼에서 연성화를 통해 생존본능을 발휘해왔다-이다.

결국 <나는 꼼수다>의 인기는 현대 미디어 수용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제시한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즉, <나는 꼼수다>는 수용자가 일상에서 자주 노출되는 콘텐츠의 형식과 내용들을 '방송'이라는 형식을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콘텐츠 소비의 개인화를 촉진하는 스마트 디바이스로 접점을 형성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전통매체는 아직 규제적인 시스템에 갇혀 있다. 현실적으로 실험적인, 파격적인 방송을 하기는 어렵다. 시사 장르의 경우는 정치적 환경도 무시할 수 없다.

현실정치와 저널리즘의 인과성도 <나는 꼼수다>의 인기와 비례한다. 무엇보다 현실정치가 아주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고 이 과정의 여러 이슈들을 전통매체가 속시원히 풀어주지 못한다는 미디어 수용자의 불만도 커진 상태다.

앞서 언급된 미디어 수용자의 콘텐츠 소비 행태는 사실 대중문화, 기호라는 흐름 속에서 규정된다. <나는 꼼수다>는 수용자가 좀 더 신랄하고 통렬한 것을 바라는 지점을 잘 파고 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심리는 시대가 만든다. 그런 점에서 일시적인 유행일 수 있다.


<나는 꼼수다>를 선호하는 분위기는 "세상 돌아가는 것이 답답하다"는 생각을 품는 사람들에게 더 어울린다. 대리 만족을 할 수 있는 서비스인 거다. 이는 또 마치 2000년대 초 시사 분야에서 패러디물이 인기를 끈 것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것을 종합할 때 <나는 꼼수다>의 인기는 불완전하고 불안정하다. 이 방송에 대한 사회적인 인지도는 최고조에 이르겠지만 언제고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다. 정치 및 시민사회 가령 정치, 제도와 법률, 언론을 포함한 지식사회 등등이 어느 정도 정상적인 흐름을 타게 된다면 <나는 꼼수다> 같은 위태하고 희극적인 '소신'이 설 자리는 당연히 축소된다.

그 점에서 전통매체가 상당히 분발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오죽하면 미디어 수용자가 <나는 꼼수다> 같은 방송에서 정치사회적 현안을 확인하고 공감을 표하겠는가. 자사 저널리즘에 대한 통렬한 자기비판, 성찰이 필요하다.

앞으로 종편과 보도채널 등 뉴스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겠지만 현대 미디어 수용자의 의식세계와 동화하기 어렵다면 그러한 매체의 사회적 정당성은 그만큼 엷어진다. <나는 꼼수다>에 열광하는 수용자는 왜 전통매체의 뉴스를 불신하는가 곰곰히 따져 봐야 한다. 그리고 오늘날 사람들이 어떤 스토리를 나누고 있는가 좀 더 깊이 천착해야 한다.

<나는 꼼수다>는 정치현실을 조롱하고 있지만 정작은 전통매체가 짊어진 저널리즘을 대리하고 있다. 그래서 이 방송은 희희덕거리고 품격없다고 불편하게만 볼 것이 아니라 엄중하게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관련 포스트 : <나는 꼼수다> 골방방송과 블루오션 사이


정연한 언변은 아름다운가

TV 2004.08.24 23:07 Posted by 수레바퀴 수레바퀴

 
손석희 아나운서 인터뷰 장면
 
그는 너무도 현명한 '질서'를 갖고 있었다.
정해진 시각에 정확히 나왔으며, 정해진 시각에 정확히 끝냈다.
그 질서는 그를 지탱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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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MBC, 손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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