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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뉴스 생태계란

뉴스미디어의 미래 2017.06.25 13:49 Posted by 수레바퀴

한국언론의 현재와 미래 토론회.

"이제 커뮤니티와 저널리즘의 연결이란 생태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커뮤니티는 스토리텔러, 밀레니얼 세대, 예술가-전문가 등이 저널리즘과의 협업을 기대하고 준비하는 공간을 말합니다.

저널리즘은 기존의 방식이 아닌 외부와의 협업을 이끌 수 있는 창의적 업무와 문화를 정비하는 조직의 업무를 대표합니다.

시민주도의 뉴스, 뉴스조직의 유연한 업무가 결합하는 곳이 바로 새로운 뉴스 생태계입니다.

저는 오늘 네 가지 주제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우리는 미래지향적 저널리즘 생태계를 위해 어떤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2.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저널리즘 생태계는 어떤 것인가?
3.그러나 현장은 어떤가?
4.어떤 새로운 노력이 요구되는가?

먼저 오늘 우리는 어떤 것을 인식해야 하는가입니다.

미래지향적 뉴스 생태계로 향하기 위해 우리는 최근 일어난 언론과 독자 간 마찰과 갈등부터 점검해야 합니다. 두 가지 정반대의 시각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첫째, 이들은 누구인가입니다. 공중의 진화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정치적 목적을 가진 반지성적인 사람들인지입니다. 둘째, 언론의 태도입니다. 제한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는지 아니면 일상적이고 상호적인 동력으로 봐야 하는지입니다.

우리가 지금 공유할 수 있는 사실은 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독자의 미디어 사용능력이 아주 우수하며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반면 뉴스조직은 가치를 잃고 조직은 퇴행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어떤 시스템이나 명령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책임 하에 대응하는 독자의 지혜로움은 낯선 현상이 아닙니다. 문제점을 지적하고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독자의 정보는 언론의 해명보다 앞선 수준있는 자료들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여론 조작을 위해서 동원되거나 감정적인 독자들이 더러 있지만 그것이 오늘날 언론과 독자 간 갈등의 전모는 아니라는 것도 인식해야 합니다.

현재 기성 언론의 비즈니스 모델은 현저하게 기능 부전에 빠져 있습니다. 독자를 확장하는 것도, 붙잡는 것도 모두 어렵습니다. 광고의 효용성은 추락했습니다. 일부 기업들은 사회적 신호가 있다면 오래된 종이신문의 지면에 광고를 끊을 준비가 돼 있습니다. 방송 환경도 더욱 분산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지난 10년 간 구조조정이 없었던 언론은 한국 뿐이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기자의 영향력과 매력도는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장을 지켜보는 미래 전문가들은 "저널리즘의 미래는 업계를 선도하는 몇몇 언론사 대신 집단지성과 자기 조직화된 지식 노동자에 있다"고 예측합니다. 이러한 징후는 세계의 신생 미디어에서 그 활약상을 찾을 수 있으며, 국내에서도 블로거나 소셜미디어에서 역동적인 장면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네트워크 기반에서는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는 더 많은 저널리즘이 가능합니다. 허핑턴포스트든, 오마이뉴스든 새로운 생산 에코 시스템은 콘텐츠 네트워크에 의해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유지 확장돼 왔습니다.

정치적 블로그에서 비즈니스, 여행, 교육, 페미니즘 등 무엇이든 다루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과 신생 미디어와 디지털뉴스매개자 간 협력은 이미 시작됐고 지금도 역사적인 기록들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콘텐츠 생산은 분산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자기 조직화된 지식 노동자의 네트워크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이뤄질 수 있습니다. 높게 평가해야 하는 부분은 새로운 미디어일수록 이것이 저널리즘에 부합한 활동인지 아니면 상업적인 활동인지를 분별하는 능력을 갖고 있고 대체로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 새로운 모델은 장기적으로는 직업기자 또는 비언론인의 경계, 언론 산업의 경제적 현실을 끊임없이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힘, 공간을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참여자들이 네트워크에서 획득하는 평판, 명성과는 별개로 보상은 낮습니다. 하지만 한때 미디어 수용자였던 독자들이 저널리즘 생태계에서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언론은 자신들이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함께 하려는 동력을 가지면 새로운 영향력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향하는 저널리즘 생태계는 어떤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독자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구조화하는 생태계는, 공동체의 공정성, 개방성, 다양성을 구축하고 강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목표를 최우선적으로 앞세워야 합니다. 이것은 저널리즘의 지속 가능한 미래와 연결돼 있습니다.

여기서 명백해지는 것은 '미디어 시민의 탄생'에서 보듯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기관이 아니라 네트워크처럼 활발하게 연결된 공간에서 협력적인 저널리즘의 패러다임이 열리고 있는 점입니다.

어쩌면 지금 언론시장이 누리고 있는 '산업'은 곧 없어질지 모릅니다. 특히 그것은 언론이 혼자서 기존의 교류관계를 근거로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을 거의 불가능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최근 수년 사이 포털사이트나 모바일 환경에서 언론의 역할이 별로 없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뉴스시장의 권력은 이동한지 오래입니다.

그 흐름에서 생산자와 소비자, 매개자로 구성된 생태계가 새로운 작동원리로 더욱 성장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다양한 방법은 지금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갈등과 불만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태계는 이들 여러 부분이 서로 협력하고 상호 의존적이며 서로의 작업을 공유할 때 가장 강력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러한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하고 그렇게 진화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언론환경은 어떻습니까?

언론의 내부는 긴장과 자극보다는 태만과 오만으로 가득합니다. 점증하는 다양한 목소리와 기존의 언론사 뉴스조직이 아닌 곳에서 발행되는 뉴스를 여전히 '도전'과 '생떼'로 여기고 있습니다. 네트워크의 에너지로 받아들이는 현명함은 찾기 어렵습니다.

언론과 커뮤니티가 연결되는 오늘날 생태계는 기존의 뉴스를 포함해서 가능한한 모든 형식과 주제를 다루는 스토리를 인정하고, 기존의 조직과 뉴스를 연결시키는 모든 노력을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예. 워싱턴포스트 코럴 프로젝트, 커뮤니티 교육 프로그램) 그리고 이때 언론이 관여할 수 있는 뉴스 생태계는 비로소 가장 강력해집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우리 앞에는 유감스럽게도 그러한 판단과 인식을 막는 요소들이 존재합니다.

첫째,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는 독립적이고 공정한 뉴스를 지속가능하게 생산, 유통할 수 있는 재원이 고르게 분산돼 있지 않습니다. 현실정치와 조응하는 과정에서 당파적인 매체가 일부 있지만 그것이 생태계를 대표할 수도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됩니다.

둘째, 또한 많은 경우에서 공동체의 문제를 진단하고 분석하는 뉴스의 품질에 수준저하가 이어지고 있고 뉴스조직 간 격차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트럼프 격노' 보도에서 보듯 품질과 방향에 심각한 결손이 있습니다. 여러 불성실한 이유로 내부의 시스템이 건강하게 작동되지 않고 있습니다.

셋째, 더욱 큰 문제는 언론사 뉴스룸이 우리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위해 노력하는 독자들에게 지금까지 지켜온 재능과 영향력을 나누고 있지 않는 점입니다. 저널리즘은 더 이상 한정된 기관이나 조직,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제품이 아니란 것을 기성 언론 만큼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엊그제 한 토론회에서 진보언론을 포함한 언론은 독자들과 더 많은, 열린 소통을 해야 한다고 발언했더니 한 언론단체에서 오신 분이 기자 탈진이 심한 현실에서 이상적인 이야기라는 취지의 반론을 펴셨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언론에 대한 비판적 담론을 펴는 공중을 바쁘다고 외면하는 상태에서 진보언론이 어떻게 경쟁력,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이런 상황에서 언론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까?

첫째, 저널리즘을 다루눈 비영리단체를 키워야 합니다. 스스로 신념하고 믿는 저널리즘을 할 수 있는, 더 큰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회적 배경을 더 넓게 가지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흐름을 성장시키려면 우수한 저널리즘 교육이 필요합니다. 도구의 활용 등 미디어 리터러시에 공동체적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가령 다수의 회원을 둔 커뮤니티가 데이터 수집과 분석, 취재를 직접 수행할 수 있도록 전문기관들이 지원하거나 기성 언론과 직업기자들에게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도록 기금을 조성•지원하는 환경을 마련해야 합니다.

민주주의 체제를 강화하고, 저널리즘 표준을 높이고, 전 세계의 부패와 학대와 싸우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게 '기금'조성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들을 후원하는 기관이나 기업, 개인에게는 100% 세금 공제 등 세제 상의 인센티브 등 정책접근이 갖춰져야 합니다.

둘째, 정부의 역할은 예산 못지않게 다양한 노력이 이뤄져야 합니다. 현재 공공 데이터 수집, 분석 등을 위한 새로운 도구가 확대되면서 공동체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기회를 더 자주 갖게 되었습니다. 공공영역은 미흡하지만 점차 공공 데이터를 개방하고 관심있는 사람들이 더 진실에 다가서는 방향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앞으로 공공데이터의 표준과 연속성, 확장성을 기하는데 보다 지속적이고 일관된 경로를 확보해야 합니다. 공공데이터를 활용한 저널리즘 진흥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 저널리즘의 주변부에서 핵심으로 편입되지 못한 채 부유하는 역량있는 젊은이들이 떠오릅니다. 이들을 활용할 수 있는 관심이 모여야 합니다.

지방자치단체도 지역 시민단체 등에 데이터의 개방과 활용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맡겨야 합니다. 즉, 시민들에게 결정권을 위임해야 합니다. 그 뒤 시민들이 그 부분을 기성언론과 협력할지 말지를 판단토록 해야 합니다.

셋째, 공동체의 이익을 함께 고민하고 정립하는 협력 저널리즘의 생태계는 투명성, 윤리성 확보를 겅조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언론은 고위공직자, 기업인, 법조인, 유명인 등에게 투명성을 요구해왔습니다. 모든 기업과 기관 가운데에서 언론은 가장 투명해야 합니까? 독자들이 묻고 있습니다. 답변을 해야 하고 납득할만한 수준과 방향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야 공중으로 진화한, 비판적 담론공중은 언론과 긴밀하게 협력을 상정할 수 있습니다.

비영리 뉴스조직과 기관이 증가할수록, 저널리즘 생태계의 긴장도를 높이는 단계에서 박애주의자, 재단, 정부 및 기업의 자금 지원은 불가피합니다. 진정한 질문은 이들로부터 돈을 받아야 하는지 여부가 아니라 기부자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입니다.

투명성을 담보하는 프로세스가 절실합니다. 현실적으로 오늘날 새로운 저널리즘 생태계에 근접한 독립언론과 미디어 기관들이 이 부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자금의 출처, 주요 후원자, 급여 및 뉴스생산과정의 비용 등 윤리성이 좌우되는 영역에서 구체적 사실이 지금보다 더 정확하게 공개되어야 합니다. 이 지점에서 그들의 미래가 걸려 있고 생태계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독립적이고 비영리적인 저널리즘 기관의 성장이 새로운 생태계에서 중요한 것은 그 가치와 정신에 호응하는 청년세대를 기존의 언론사 뉴스조직보다 효과적으로 함께 할 수 있어서입니다. 진지한 저널리즘을 다루는 사람과 기관이 많아지는 것은 경쟁의 격화와 시장의 우울한 결말이 아닙니다.

정직하고 현명한 저널리즘이 도처에서 빛을 발하고 후속세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것은 저널리즘 생태계에게는 축복입니다. 인터넷 대중화 이후 한국사회에서 젊은 세대의 저널리즘에 대한 관심이 지금처럼 역동적이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새로운 생태계를 위해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생태계와 저널리즘의 관계를 끝으로 말씀드립니다.

현대 저널리즘은 디지털 적으로 가능한 것(Digitally Capable)과 근본적으로 디지털적인 것(Fundamentally Digital)의 영역에 있습니다. 생산방식과 기자의 역할, 커뮤니케이션, 조직, 자원 등이 모두 그러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기자의 인식과 철학, 비즈니스 모델은 상당 부분에서 구식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현실을 인정하더라도 우리는 새로운 목표를 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기회로 간주하는 뉴스 생태계는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정직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우선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저널리즘의 신뢰와 영향력을 재구성하는데 중요합니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뉴스는 하나의 완제품 즉, 최종 '결과물'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변경, 재사용할 수 있는 '과정으로서의 뉴스'라는 것을 수렴해야 합니다. 이것에 걸맞는 워크 플로우를 짜야 합니다. 언론과 기자에게 중요한 것은 자존심과 긍지가 아니라 독자와 손잡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워싱턴포스트는 최근 미국 최대 커뮤니티 중 하나인 '레딧'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명백한 것은 이제 저널리즘은 지난 세기의 경쟁의 자원과 기억을 청산하고 전혀 다른 수준의 장기전을 준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디지털 미디어의 효과는 금세 드러나지 않습니다. 곧바로 가시화하는 것은 원래의 목표와 다른 것일 수 있습니다. 트래픽 같은 지표에 절대적으로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독자의 참여처럼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힘을 만드는 일에 주목해야 합니다. 독자는 생태계의 시작과 또다른 가능성을 이끕니다. 뉴스조직과 밀착하는 표현•열정의 커뮤니티는 공동체에 긍정의 영향력을 일으키는 에너지입니다. 언론은 이제 자신에게 말을 거는 독자와 한 팀이 되어야 합니다.

현명한 뉴스조직은 이제 독자에 선택하고 집중해야 합니다. 독자의 준거지역과 공간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곳을 빛내는 독자의 일상에 다가서야 합니다.

저널리즘의 신뢰와 평판을 개선하는 노력이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이때 권위, 엘리트 같은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디지털 리더십은 기존의 우호군의 품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양식있는 질문에서 번성합니다. 양이 아닌 질, 형식이 아닌 가치 경쟁으로 협력저널리즘의 생태계를 끌어가야 합니다. 다양성•투명성•상호성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다루는 노력이 절실합니다.

감사합니다.

덧글. 이 포스트는 6월23일 미디어오늘•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공동 주최 기획 토론회 제4세션 <지속가능한 뉴스 생태계의 모색> 토론자로 참석해서 작성한 글입니다. 현장에서는 시간제약으로 충분히 토론하지 못했습니다. 이 주제에 관심있는 독자들께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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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2017년5월31일자. 나는 한경오 등 진보언론과 대통령 지지자 사이의 갈등은 느슨한 독자관계의 피로도와 불만이 누적돼오다 이번에 터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소셜미디어를 두루 잘 활용하는 독자들을 상대로 특별한 고객전략을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디지털 환경에서 새로운 경험을 한다. 가장 매력적인 것은 많은 청중(Audience)의 목소리가 네트워크에서 통합되는 점이다. 또 보다 많은 목소리 즉, 보다 다양한 관점의 '경계가 사라진 뉴스'를 마주한다. 더 많은 이야기를 더 오래도록 나누고 검색할 수 있는 네트워크에서는 독자들과의 '협력' 외에 공존의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부 대통령 지지자들과 이른바 `한경오(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간 충돌을 어떻게 보느냐는 언론들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고 있다. "고정·잠재 독자전략이 없는 뉴스조직은 자사 보도에 대한 성찰이 제대로일 수 없고, 독자와의 소통의 효용가치를 깨닫기 어렵다"고 답하고 있다. 

이번 진보언론의 경우처럼 '독자를 잃는' 소통과 보도행태는 더 이상 일어나선 안 된다. 그런데 이 문제를 진단하는 데 있어서 소수 기자의 일탈과 사소한 해프닝으로 한정하거나 가이드라인 정도로 봉합하는 것은 아쉽다. 무엇보다 뉴스조직 차원에서 갈등을 해결하려는 절박함을 갖고 있지 않은 듯하다. 

많은 매체들 가운데 유독 '우리'에게 말을 거는 독자들-공격적이고 거칠게 행동하는 독자들에게 친절함과 존경심을 드러냄으로써 '우리'가 여타 매체와 다르게 보이도록 하는 소통은 아주 중요하다. '규모의 경제'와는 거리가 먼 진보언론이 매달려야 하는 독자발굴 전략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러나 독자들의 '압박'을 감정적으로 다루는 협량한 태도가 여전하다. 최근 사태에 대해 일부 기자는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키는 자신과 독자들에게 굴복(?)하는 뉴스조직을 분리시켜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무책임하며 무례하다. 

'독자압박'은 첫째, 독자들이 자신의 신념기준으로 언론(인)에 정론직필을 요구하고 둘째, 구독중단 등 관계단절을 집단적으로 암시·실천하며 셋째, SNS에서 지속적으로 여론을 형성해 언론(인)에 직·간접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독자압박은 광고주 및 권력의 언론간섭과는 다르다. 폭넓은 정보공유에 의해 대중적인 이슈가 되고 있으며 압박의 근거 역시 (독자 입장에서는) 아주 구체적이다. 반면 뉴스조직의 주장은 제대로 부각되지 않고 브랜드 신뢰나 평판 더 나아가 경영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동기가 되고 있다.

진보언론과 독자 사이의 갈등 국면은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간 뉴스조직과 독자 사이의 관계가 느슨했고 대화의 기회와 실효성도 미흡했다. 한마디로 '독자에 대한 재정의'를 통해 독자압박의 교훈을 찾아야 한다. 

우리의 독자는 누구이며 무엇을 기대하는지 파악하고, 뉴스조직의 논의과정에 독자참여를 확보하고 독자의 목소리를 취재보도에 수렴하는 `생산적인 독자전략`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이번 갈등은 두고두고 뼈아픈 일이 될 것이다.

특정 매체와 기자를 나무라는데 치우칠 것이 아니라 국내 언론 전반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차원에서 인터뷰 때 이야기한 것들을 정리한다. 또 언론 보도 내용에서 충분히 다루지 않은 맥락을 보강했다.

`한경오`-독자 갈등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 질문은 "우리의 가치는 무엇인가?" "우리의 독자-고객(단골손님:지불의사를 갖는 사람)는 누구인가?" "독자들을 이해시키고 파트너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등이다.

우선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에서 언론이 지향하는 가치는 세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투명성. 독자는 뉴스에 대해 시시콜콜한 것까지 물을 수 있다. 독자에게는 중요한 일이다. 언론은 점점 뉴스 생산과정을 감출 이유가 없다는 점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내일자 1면 톱뉴스나 단독-특종을 불과 몇 시간 이후까지 숨기기보다는 이 뉴스가 언제 어떻게 다뤄졌는지를 먼저 알리는 것이 더 의미가 있는 시대다.

둘째, 책임성. 독자가 비난하는 내용을 우리가 책임감있게 다뤘다면 주저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대체로 우리의 부주의가 있었다면 즉시 사과해야 한다. 또 후속 보도와 대화를 통해 충분히 알려야 한다. 가령 어떤 기자가 독자의 공격을 참지 못하고 독자를 비난했다면 그것은 책임이라는 가치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다. 뉴스조직은 발언하는 독자를 적으로 둔갑시켜선 안 된다. 독자가 제기하는 문제에 대해 뉴스조직은 크고 작은 책임을 인정하고 그들과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네트워크에 존재하는 미디어의 책임이다.

셋째, 다양성. 우리는 광범위한 목소리와 관점을 인정해야 한다. 기자들은 자신의 취재 보도 이후에 계속되는 독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다. 그것을 인정할 것인지의 여부가 아니라 원칙적으로 그것에 귀기울여야 한다. 때로는 독자들이 훨씬 더 현명하고 솔직하다는 것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기자는 중재자, 조정자로서의 새로운 역할을 인식해야 한다.

저널리즘의 고유한 원칙 혹은 매체의 관점-일정한 자존심을 지키는 것과 그들의 독자의 기대치는 항상 비슷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다룰 수 없다는 데서 시작한다. 먼저 진보언론의 독자들과 성실한 대화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 독자와의 갈등은 중요한 '고객'과 연관된 것인 만큼 뉴스룸의 리더, CEO가 나서야 한다.

디지털•모바일 퍼스트처럼 속도나 형식 등 뉴스생산양식의 고민 못지않게 고객에 대한 보다 투명하고 구체적인 소통을 의미하는 ‘독자 퍼스트’를 서둘러야 한다. 독자 퍼스트란 독자를 친구와 동료, 파트너로 다루는 협업과 협력을 의미한다. 이미 '독자 최우선 전략'은 네트워크의 잠재력을 활용하는 카드로서 논의된지 오래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일어나고 있는 진보언론과 독자들 사이의 갈등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첫째, 지난 십수년간 진보언론의 혁신이 무엇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제보 사이트를 열거나 인터넷방송 같은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하고 돈을 후원해달라는 읍소도 하였지만 말이다. 독자들에게 진보언론의 혁신이 무엇인지가 잘 전달되지 않았다. 

진보언론이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독자의 과잉감정도 문제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이전에 진보언론은 그들의 혁신을 독자들에게 알리지 못한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이번 문제는 진보언론이 그간 자신의 독자들에게 진정성이나 가치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간극이 벌어지면서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몇몇 기자의 감정노출이 빚은 일시적인 사건으로 봐선 안 된다. 독자들이 진보언론의 혁신을 제대로 공감했던 적이 있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 독자가 진보언론과 느슨하게 연결된 상태에서 기자들의 '결기'는 당황스러울 수 있다. 

둘째, 최근 논란이 된 소통 방식도 문제다. 소셜미디어처럼 개방적이고 유대감을 갖는 공간에서 기자가 독자에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자연스럽다. 다만 독자와 싸움을 거는 고약함은 문제다. 더 나아가 독자를 공격하고 가르치려고 하는 태도도 무례하다.

지금까지 전통매체의 디지털 혁신에서 자신들이 지키고 확보해야 하는 독자들을 잃으려고 소통한다는 사례는 본 적이 없다. 일단 논란이 커지자 진보언론은 '가이드라인'을 만든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안의 본질은 소셜미디어에서 기자의 대화방식과 태도를 규정한 근거가 없어서는 아니다. 우리에게 독자란 무엇이고 또 누구인지, 이들 독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한 목표와 방향이 없었다는 점이 근본적인 문제다. 

셋째, 진보언론은 다른 언론사의 보도 행태에 대해서는 날선 비판을 주저없이 해왔다. 자사의 보도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를 들이댈 필요가 있다. 

요즘 일부 독자들의 항의는 "문재인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변호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일관되고 품격 있는 저널리즘을 해달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독자들이 이번 사안에서 관심을 갖고 제언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없었던 방식으로 독자들과 대화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호소력있게 다가서야 한다.

워싱턴포스트의 논설위원이 독자 댓글을 골라 답변하는 형식의 동영상.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고객을 우대하고 존중하는 마인드를 갖고 있다. 독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언론의 가장 중요한 가치이다.


소통 더 나아가 네트워크에서 미디어의 전략도 바뀌어야 한다.

첫째, 현대 독자들은 소셜미디어 활동을 통해 거는 기대감이 아주 높다. 언론은 거기에 상응한 준비가 필요하다. 가령 독자가 문제제기를 하면 뉴스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독자의 합리적인 지적이라면 사과를 하고 정정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려야 한다. 가령 라이브 프로그램으로 실시간 소통하는 등 독자의 이야기도 자주 들어야 한다 독자는 뉴스를 그저 읽고 퍼나르는 소비자가 아니라 뉴스를 함께 만드는 '협력자‘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네트워크의 참여자는 포털로 유입되는 독자를 바라보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독자대응의 대전제로 삼아야 한다.    

둘째, 언론은 소셜미디어의 독자가 네트워크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는지 들여다보아야 한다. 몇 년 전 시카고 트리뷴 편집자 게르 잉 커른 (Gerould Kern) 편집장은 "우리는 수만 명에 이르는 일련의 개인적 연결에 주목한다. 우리의 성공은 어떤 형태로든 트리뷴에 오는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시카고 트리뷴은 독자와 유대 강화를 위해 2012년 한 해만 공공정책 토론, 저자대화, 기자 세미나 등 100개 이상의 뉴스 이벤트를 개최했다. 독자의 생각과 능력을 알기 위해 함께 활동했다.

셋째, 소셜미디어에서 언론과 독자 사이의 소통은 정확하고 검증 가능하며 공정한 것일 때 의미가 있다. 가령 독자들은 언론의 오류를 지적하고 언론은 그것에 대한 판단을 내려 피드백하는 과정을 갖는다. 

이러한 투명한 과정은 신뢰를 쌓는 일이다. 신뢰는 애착관계를 형성한다. 독자는 저널리즘이 어떻게 작동하고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왜 이 사진을 채택했는지, 그리고 왜 이런 식의 보도가 이뤄졌는지 신속하고 명백하게 제시하는 것이다. 독자는 소셜에서 언론의 진지하고 투명한 노력에 감동할 준비가 돼 있다.

넷째, 언론은 소셜에서 밀레니얼 세대를 비롯한 젊은 세대 또는 잠재고객을 발굴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역 공동체의 청년 활동가들, 반짝이는 창업자들 그리고 우리를 들뜨게 하고 생각에 잠기게 하는 셀럽과 철학자들을 불러모으고 함께 토론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지난 대선후보자 토론회에서 나왔던 군대 내 동성애자 이슈는 지금도 흥미로운 주제이지만 묻히고 있다.

다섯째, 소셜 미디어는 가정사와 같은 일상적인 주제, 최신 유행 등 트렌디한 주제를 다룰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들과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 채워지는 뉴스조직이 필요하다. 이것은 새로운 저널리즘 활동이다. 매체는 독자의 관심사를 발견하고 드러내는 주인공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여섯째, 최근의 갈등에서 우리가 배웠던 가장 중요한 점은 언론과 기자가 독자들과 대화를 하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뉴스에 대해 관심을 갖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만나야 한다. 대화의 방식과 태도에 대해 능숙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뉴스조직의 소셜미디어 활동 전반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

조직 내 갑질문화, 연성뉴스(스낵커블 콘텐츠) 등 상업화와 선정주의, 댓글관리 등 허술한 소통체계가 지금까지 국내 언론의 소셜미디어 활동의 그늘이다. 

첫째, 소셜가이드라인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엄정한 규칙만 강조하면 미래지향적 활용은 억제된다. 효율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예컨대 진보언론은 소셜 소통의 잠재력을 키우는 적극성이 요구된다.

둘째, 소셜 활동의 구체적인 목표가 보다 구체적으로 공유돼야 한다. 트래픽, 브랜딩, 독자관계 관리 등 체계적인 방향이 필요하다.

특히 내부 구성원들은 항상 진지하게 고객을 응대하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소셜미디어를 왜,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공유한다. 이를 위해 인프라 투자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국내 언론의 이 부문에서의 투자가 성의있게 전개되기를 기대한다.  

셋째, 디지털•모바일 퍼스트라는 구호 넘어 자리잡은 '독자 퍼스트'의 의미를 가다듬어야 한다. 네트워크는 새로운 무대이다. 이곳에 참여하는 독자들과 공생의 파트너십이 요구된다.

독자 퍼스트는 "우리가 정성들여야 할 고객을 명확히 설정하는 것, 우리가 그들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을 꾸준히 보여주는 것, 우리와의 유대관계가 그들의 삶에 유익한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최상의 선택과 집중을 할 것"을 의미한다. 언론사 내부에 '디지털 리더십'의 정립이 수반돼야 한다.

진보언론과 독자들 간의 갈등과 마찰을 생산적인 에너지로 전환시켜야 한다. 뉴스 생산자인 전통매체가 커뮤니케이션 주도권을 잃는 사이 네트워크는 더 촘촘한 연대의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전통매체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보는 것은 드라마틱한 아니면 이미 진부한 단정일까.

덧글. 이 글은 <더피알>, 이번 사건의 당사자이기도 했던 <미디어오늘> 등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던 내용을 재정리했음을 거듭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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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보적인 저널리즘을 제언하는 뉴욕타임스의 혁신 프로젝트. 신뢰와 소통의 문명을 재현하는 퀄리티 저널리즘이야말로 디지털 혁신의 최고 덕목이어야 한다.


"언론의 미래는 디지털에 있다"란 선언적 화두가 제시된지 어언 10여년. 전 세계 전통 뉴스 미디어의 숨가쁜 혁신 변주곡이 요란하게 켜졌지만 안갯속인 뉴스 시장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한국언론은 매체 포화와 포털사이트 등이 압도하는 시장 경쟁 질서가 이어지며 생존마저 힘에 부치는 양상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16'의 내용은 더 충격적이다. 지난 한 주 동안 신문 잡지 등 인쇄매체를 통한 뉴스 이용은 한국이 28%로 26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사실상 최하위권에 속했다.

또 포털 및 검색 서비스에서 뉴스 소비를 시작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60%로 세 번째로 높았다. 온라인 뉴스 소비에서 스마트폰을 주로 이용하는 비율(48%)은 가장 높지만 포털사이트와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에서 뉴스를 이용할 때 뉴스미디어의 브랜드를 인지한다는 비율은 가장 낮았다. 언론사 웹사이트나 모바일 앱이 뉴스 소비의 출발점이라는 응답은 불과 13%였다. 

또 "뉴스를 거의 항상 신뢰할 수 있다"고 답한 비율은 26개국 중 22위였다. 35세 미만 젊은 세대는 고작 10%만 뉴스를 신뢰한다고 응답했다. 2015년 한 해 동안 온라인 뉴스 유료 구매 경험은 6%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외국 기관이 국내 디지털 뉴스 생태계를 들여다본 성적표치고는 우울한 잿빛이다.

정론을 펼친다는 언론산업은 왜 불신받는가

정기적으로 발표되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5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에서도 전통 뉴스 미디어의 입지 축소는 거듭 확인됐다. 가장 일반적인 시장 지표인 신문 구독률은 2004년 48.3%에서 2015년 14.3%로 계속 떨어졌다. 열독률은 같은 기간 70.6%에서 25.4%로 급감했다. 

미디어별 하루 평균 뉴스 이용시간도 종이신문(7.9분)이 크게 줄어들었다. 지난해 말 한 지상파 방송사의 메인 뉴스 프로그램의 수도권 시청률은 2% 대로 곤두박질쳤다. 이에 비해 인터넷은 103.8분, 소셜미디어는 22.7분으로 전통매체를 압도했다. 

뾰족한 대응책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해외 언론의 '청사진'만은 희망의 좌표로 자리잡았다. 7명의 <뉴욕타임스> 기자로 구성된 '2020 그룹(The 2020 Group)'이 올해 초 공개한 '독보적인 저널리즘(Journalism that stands apart)'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전 세계 언론사와 기자들에게 디지털 퍼스트(digital-first) 전략을 금과옥조로 받아들이게 했던 2014년 5월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의 재탕이라는 지적도 나왔지만 그 울림은 명징했다. 최근 2~3년 사이 독자가 주로 이용하는 매체 조합 즉, '미디어 레퍼토리(media repertoire)'나 콘텐츠의 형식 선호에 맞춰 대다수 언론이 기울인 다채로운 노력의 중심에 저널리즘 가치라는 근원적인 성찰이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디지털이 희망이라면서 왜 제대로 하지 않는가

지난 2012년 아름답고 역동적인 그래픽을 탑재한 <뉴욕타임스>의 디지털 뉴스 ‘스노우폴(Snow Fall)’은 한국언론에 큰 자극을 줬다. 수많은 뉴스 형식 실험이 곧바로 전개됐다. 그러나 콘텐츠의 완성도가 떨어지면서 ‘보여주기식’ 접근이라는 지적도 받았다.  

"이것조차 만들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던 '카드뉴스'의 경우 불과 1~2년 사이 '이용 피로도'만 쌓였다. 한때 수백만 클릭을 기록하던 데서 지금은 뉴스 혁신의 '체면치레'나 하는 것으로 전락했다.

이러는 사이 '포털 검색어 기사', '자극적 제목달기' 등 '옐로우 저널리즘'의 멍에를 벗어던지지 못한 것은 물론 '기사형 광고'를 내세운 '상업성'의 그늘만 짙어졌다. 결국 십수년 동안 포털사이트로 넘어간 뉴스 이용 점유율을 되돌리지 못한 채 고착화하는 양상이 펼쳐졌다.  

대다수 언론이 '포털 탈출'의 기대주로 꼽은 소셜미디어에서도 논란만 커졌다. 젊은 세대를 겨냥한 뉴스 스타일은 쏟아냈지만 콘텐츠 완성도는 물론 독자 '소통'은 여전히 부족했다. 더구나 일부 언론사 소셜미디어 운영자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늘어놓아 '드립' 논란만 일으켰다. 정규직이 아니라 수개월 짜리 인턴을 뉴스룸에 투입하고 '갑질'하는 뉴스룸의 허위의식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품격 있는 저널리즘의 격과 결은 쉽게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트렌드에 맞추는 콘텐츠 생산의 함정

반면 ‘스브스뉴스'-'비디오머그'의 SBS, '소셜스토리'의 JTBC 등 방송사는 젊은 세대를 겨냥한 콘텐츠 큐레이션, 기자의 직접 참여로 브랜드 마케팅까지 확장하며 주목받았다. 이러한 시도가 '완성품으로서의 뉴스'가 아닌 '과정으로서의 뉴스'를 관철하는 자극제가 될지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과정으로서의 뉴스'란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며 더 나은 가치를 수렴해가는 뉴스다.

이를 위해 <뉴욕타임스>는 "독자에게 보다 중요한 목적지가 되기 위해서, 앞으로 위상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서" 다시 한번 '보도(report)'와 '직원',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주문했다. 특히 트래픽과 페이지뷰의 성장전략은 폐기하고 독자의 습관,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긴 안목을 우선시할 것을 내세웠다. 당장의 생존과 효용성을 위해 방치하는 '베끼기', '짜깁기', '따옴표 보도'를 버릴 것이란 경고이기도 하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온라인 뉴스 동영상의 미래(The Future of Online News Video)' 보고서는 뉴스 동영상의 현주소를 뼈아프게 진단했다. 온라인 뉴스 사이트 30곳의 동영상 채널에 머무른 시간이 전체 평균 방문 시간의 2.5%에 그쳤다. 북미 지역에 한정된 통계지만 뉴스 동영상이 텍스트에 비해 실제로는 많이 소비되지 않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국내 언론은 이같은 냉정한 진단과 측정은 생략한 채 '모바일 퍼스트', '비디오 퍼스트'라는 수사적인 자기 최면에 갇혔다.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드는 자체 플랫폼 강화 노력은 포기하고 독자는 실종된 언론사 간 순위놀이에 매몰됐다. 실제로는 포털사이트나 소셜미디어를 위한 '봉사' 뿐이면서도 독자 접점 확대로 미화했다. 이 과정에서 뉴스조직의 다수 구성원이 우리가 왜, 어떻게 콘텐츠를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합의하고 움직이는 진지함은 좀체 찾아보기 힘들었다.

업의 본질은 품격과 신뢰의 저널리즘이다

<뉴욕타임스>는 단지 풍부한 멀티미디어를 제공하는 선에서 머물지 않으려면 지금과는 180도 다른 차원과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자를 비롯한 전체 구성원의 채용과 교육, 인사는 물론 취재와 보도의 수준, 콘텐츠, 업무와 역할을 세부적으로 재정의하는 밑그림을 강조한다. 디지털 전문가들을 채용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전통 뉴스 미디어는 뉴스 콘텐츠의 상품성 약화, 독자와의 상호성 미흡, 네트워크 생태계에서 연결성 빈곤으로 생태계의 주변부에 배회하고 있다. 6년 전 0명에서 1년 전 100만명 이상의 디지털 독자를 보유한 <뉴욕타임스>는 콘텐츠, 커뮤니케이션, 커머스의 위기를 '품격의 저널리즘'으로 극복해온 혁신 리더다.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저널리즘 구현, 즉 '업의 본질‘ 추구가 진정한 성장과 닿아 있음을 역설해왔다. 

<뉴욕타임스>는 무엇보다 왜 뉴스조직을 바꾸어야 하는지의 의문 즉, 원칙과 방향을 명확히 하는데 초점을 둬 왔다. 현대의 광고주들은 콘텐츠 소비를 위해 언론사의 플랫폼에서 오래 머물고 호기심과 의견을 드러내는 고객에게 주목한다는 것 쯤은 이제 상식에 가깝다. 

이 경쾌한 권위와 명성을 구가하는 신문은 고객이 원하는 정보 제공이야말로 언론사의 디지털 플랫폼이 추구하는 제1의 목표임을 거듭 되뇌인다. 첫째, 매일 습관처럼 찾아오는 곳 둘째, 시간을 아낌없이 쓰는 곳 셋째, 기꺼이 구독료 지불의사를 품게 하는 곳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말이다. 

즐겁고, 유익한 조언을 제공하는 서비스로 진화 

특히 언론사가 생산하는 모든 뉴스는 단편적이거나 평면적이지 않고 시각화(Visual-first),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같은 디지털 테크놀러지의 옷을 입는다. 모든 개별 뉴스는 다른 연관 정보들과 함께 구조화된다. 

고객을 즐겁게 하고 판단을 돕는 유익한 조언도 추가된다. 가령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지를 설득한다. 이같은 '서비스 저널리즘'을 선언한 <뉴욕타임스>는 아예 상품 추천 서비스 와이어커터(Wirecutter)와 스위트홈(Sweethome)을 잇따라 인수했다. 정보 생산자로서의 지위로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걷어내는 안내자(guidance)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언론 본연의 활동이 줄어들어서도 안된다. 탐사보도나 인사이트를 담은 논평 등 품격있는 저널리즘은 혁신의 변함없는 중심축이다.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네트워크 생태계와 충돌하는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칼럼은 지양한다. 그 대신 '다양성'과 '전문성'을 뉴스의 최고 가치로 다뤄간다. 

유연하고 탁월한 구성원을 확보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비디오 그래픽 전문가, 데이터 과학자 등 기술 분야의 권위자들은 충분히 보유해야 한다. 그러나 국내 언론사의 R&D 예산은 전무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기금지원 없이는 인프라 투자를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곳이 수두룩하다. 뉴스조직의 진화를 돕는 사회적 후원도 극히 제한적이다.   

독자 데이터·수익모델과 디지털 기술의 접목

국제뉴스미디어협회(INMA)가 발표한 '2017년 10가지 이슈'는 수익모델에 대한 고민에 상당한 내용을 할애했다. 언론사들이 처한 재정적 어려움 때문이다. 여기에는 언론과 광고주 사이의 구도가 재편되는 조짐이 있다. 가령 '브랜드 저널리즘'에 나선 국내 대기업들은 이미 미디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언론사가 우수한 콘텐츠 제작 역량을 갖추지 못하면 광고주를 설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20여명이 넘는 인력으로 자체 뉴스룸을 갖춘 한 대기업은 "우리는 (광고 관행을 바꿀) 준비가 됐지만 언론은 아직 아닌 것 같다"고 에둘러 현장을 표현했다. 사실 혁신은 기자들이 모여 있는 뉴스룸만의 문제는 아니다. 마케팅, 비즈니스 전담 인력들도 융합적인 매체 환경을 주도할 기술 역량을 갖춰야 한다. 편집국과 광고국 간의 '매출 경계 갈등'이 아니라 창의적인 콘텐츠 생산 인프라를 언론사 내부에 갖추는 시급하다. 

불확실한 콘텐츠 유료화의 과제도 만만찮다. 언론사와 기자들은 스스로 생산한 뉴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겠지만, 독자들이 외면하는 콘텐츠라면 애써 시간과 비용을 들일 이유가 없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우리 고객이 될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하고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는 과정이 없다면 일방적인 뉴스일 뿐이다. "언론은 모르지만 페이스북과 구글은 알고 있다"는 독자와 관련된 데이터 수집, 활용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 포털사이트를 비롯한 플랫폼 사업자나 대학, 연구자 등과 공동 프로젝트를 펼쳐야 한다.  

뉴스 만으로는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국내 시장에선 비미디어 부문의 수익 다각화는 앞으로 특별한 의제가 될 것이다. 언론 브랜드의 힘이 있을 때, 재능있는 파트너들과 함께 미래 비전을 그리는 큰 그림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안팎의 스타트업 창업 지원, 치밀한 투자 분석을 체계화하는 마케팅과 비즈니스의 시야가 필요하다. 

디지털 대응 속도와 트래픽에 주력하면서 놓쳤던 저널리즘의 가치를 복원하는 혁신 어젠다.


디지털 리더십·파트너십·멤버십·성과의 재정의 필요

2017년 세계 신문업계는 광고수익(628억 달러)보다 구독수익(639억 달러)이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콘텐츠의 차별화·고급화·전문화에 따르는 일관된 투자 못지않게 독자의 라이프스타일과 맞물리는 커뮤니케이션과 커뮤니티로 뒷받침해야 한다. 페이지뷰만 기록하고 사라지는 휘발적인 이용자에서 평판과 콘텐츠를 갖춘 참여지향적인 독자를 흡수할만한 멤버십이 나와야 한다. 

디지털의 성과 재정의도 필수적이다. <뉴욕타임스>는 "가장 성공적이며 가치 있는 기사는 가장 많은 페이지뷰를 얻은 것이 아니다"라고 정의한다. 다른 매체에서 접할 수 없고, 통찰력과 영감을 얻는 뉴스라면 비록 트래픽과는 거리가 멀더라도 의미 있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단독과 특종의 낡은 우상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단 한명의 독자라도 공감·반응할 수 있는 콘텐츠에 방점을 둬야 한다.

새로운 리더십도 각별한 이슈다. 정치권 광고주 출입처를 중심으로 전통적 유대와 연고에 기반한 '아날로그 리더십'을 뛰어넘는 '디지털 리더십'을 정립해야 한다. 디지털 리더십은 평등성, 개방성, 투명성, 상호성 같은 네트워크의 특성을 껴안은 통찰과 결단이다. 이는 개인의 다양성을 지지하고 집단지성의 잠재성을 도모하는 창의적인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외부 협력자를 넓고 깊게 상정하는 디지털 리더십은 콘텐츠와 관련있는 것이라면 다리를 잇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자동차, 생활가전 등 그동안은 거리가 멀었던 이종사업도 협력의 관점에서 다룬다. 위계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아니라 유연한 대화의 장을 지지한다. 더 나아가 각계의 전문가들은 물론 독자들과 친근한 벗을 자처한다.  

한국판 혁신보고서를 낸 <중앙일보>의 드문 도전은 겨우 1년여의 시간을 지났다. 척박한 국내 뉴스 시장에서 성공 사례가 나오려면 그 누구든 조급증은 버려야 한다. 폭증하는 뉴스의 시대, 다양하게 분화한 뉴스 소비자에게 '저널리즘의 가치'를 복원하는 공동의 자정과 분발이 절실하다. 허울과 구호 뿐인 지금까지의 디지털 혁신 논의를 넘어선 '신뢰·소통·독자'의 가치를 곧추세우는 대장정이 시작돼야 한다.

덧글. 이 포스트는 <관훈저널> 142호(2017년 봄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원고 작성시점은 2월 초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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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스토리텔링의 변화

Online_journalism 2017.02.20 09:14 Posted by 수레바퀴

뉴스의 폭주 시대다. 뉴스를 만나는 독자들은 분화하고 있고 언론사는 이들과 조응하기 위해 부산하다. 뉴스의 형식 변화에 많은 변화가 거듭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속에서 기억나는 뉴스와 언론은 보이지 않는다. 독자가 원하는 것에 포괄적으로 조응하는 서비스저널리즘까지 등장한 마당에 좌고우면할 시간은 없다. 그러나 그 이전에 우리가 전제해야 할 것은 없는가? 스토리텔링의 범람에서 성찰해야 할 지점이다.


"디지털에서 만나는 뉴스는 수십 년 전의 출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통매체의 콘텐츠가 소셜과 모바일에 억지로 끼워 맞춰지고 있다" 

2016년 말 조나 페레티 <버즈피드> CEO가 구성원들에게 보낸 글이다. 전통매체는 여전히 인터넷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반면 <버즈피드>는 콘텐츠와 커뮤니케이션이 결합한 소셜미디어에서 '항상 공유할 만한 콘텐츠'를 내놓는다는 것을 강조한 내용이다. 

모바일과 소셜미디어에서는 '공감성, '이면성', '인간적 흥미성' 등의 뉴스 가치가 부각되는 상황이다. 텍스트에서 멀티미디어로만 끝나지 않고 '사적 영역의 뉴스화’, ‘주관적 의견의 뉴스화’, ‘조각 사건의 뉴스화’ 등 내용적인 전환도 모색된다.

실제 현장에서의 뉴스 혁신은 육하원칙(5W1H)의 뉴스 문법 극복, 다양한 표현 적용, 퀄러티(Quality) 저널리즘으로 전개돼왔다. 2012년 '디지털 스토리텔링 뉴스' '멀티미디어 인터랙티브 뉴스'의 교과서로 평가받는 뉴욕타임스의 '스노폴(Snow Fall)'은 결정타였다. 

'스노폴' 직후인 2013년은 국내에서도 '인터랙티브 뉴스'가 서막을 알린 해였다. <경향신문> '그 놈 손가락', <한국경제> '사물인터넷 빅뱅이 온다', <매일경제> '경주마 당대불패 이야기', <아시아경제> '그 섬 파고다' 등 장기간 준비한 작품들이 빛을 봤다.  

정보 구조화, 집단지성 활용, 산학연계 등 울림이 있는 시도도 쏟아졌다. 주간지 <시사IN>의 '응답하라 7452'는 세련된 디자인과 화려한 인터랙티브를 줄이는 대신 메시지 자체에 초점을 뒀다. 지역 공공데이터를 활용한 <부산일보>의 '석면쇼크'도 이 무렵 공개됐다. 

2010년 전후 <연합뉴스>를 필두로 <조선일보>, <한겨레> 등의 디지털 부서에서 크고 작은 인터랙티브 콘텐츠의 첫 선을 보인지 3년여 만에 재점화했다. '2016 온라인저널리즘 어워드' 대상을 수상한 <중앙일보> '대한민국 검사의 초상', 모션 그래픽 100만 촛불의 과학' 그리고 <경향신문> 최순실 게이트 관계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등 수작이 적지 않았다.

사실 국내 언론에서 체계적인 디지털 뉴스 생산이 본격화한 것은 인터랙티브 뉴스가 아니라 카드뉴스다. 2014년 미국 <복스뉴스>는 '카드스택(card stacks)'으로 공전의 히트를 쳤고, 턱밑에서는 <피키캐스트>의 재미있는 카드뉴스가 대파란을 일으켰다. 

카드뉴스는 카드 규격의 공간 안에 사진과 텍스트를 담아 한 장씩 넘겨보는 스와이프(swip) 구조로 돼 있어 모바일에 최적화돼 있는 포맷이다. 크게 기존 보도물을 요약하는 것, 인물과 주제를 설명하는 것, 수치나 통계 따위를 직관적으로 제시하는 것으로 나뉜다.

지난해 대부분의 언론사는 카드뉴스에서 폭넓은 소재를 다뤘다. 2015년 초 SBS <스브스뉴스>가 '최저 시급으로 '밥상 차리기'…각 나라별 사진 화제' 등 재미와 정보를 담은 카드뉴스로 소셜미디어를 주름잡은지 2년 만이다. 

카드뉴스를 전문으로 하는 미디어 '티타임즈(TTimes)'도 탄생했다. 네이버 포스트, 카카오 1분(boon) 등 양대 포털사이트도 모바일 카드뉴스에 힘을 실어줬다. 이 결과 <조선일보>, <한국일보>, <민중의소리> 등 대부분의 뉴스조직이 카드뉴스 제작에 뛰어들어 생산량이 크게 늘었다. 

페이스북을 비롯 소셜미디어에서 인기를 모은 것은 카드뉴스 뿐만 아니라 '리스티클 뉴스'에서도 찾을 수 있다. 리스트(list)와 아티클(article) 합성어인 리스티클은 기사제목에 소재와 숫자를 제시해 궁금증을 유발하고 요약한 정보를 나열하는 게 일반적이다. 

카드뉴스처럼 유익하고 재미있는 정보의 콘셉트를 가진 리스티클은 '40대 직장인이 챙겨야 할 금융상품 5가지',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 10곳' 등 소셜미디어 공유에 최적의 형식을 주도해왔다. 한때 언론사 간 베끼기가 넘치면서 피로도가 고조됐지만 간편한 제작과 배포 등 업무 효율성으로 카드뉴스와 함께 꾸준히 성장했다. 

모바일 플랫폼에 비디오 콘텐츠 수요가 급증하며 카드뉴스에서 클립 영상으로 대세가 이동하고 있다. 클립 영상은 짧은 시간 동안 즐길 수 있는 '스낵 컬처'의 대표 주자로 확실한 킬러 콘텐츠가 됐다. 

천편일률적인 뉴스 영상 재가공에 머물던 클립 영상은 기자들이 직접 해보는 체험형, 취재 현장을 라이브로 전하는 중계형, 중요 부분을 요약하거나 그래픽과 자막을 입히는 하이라이트형, 함께 토론으로 이슈를 풀어가는 방담형, 기존 자료를 짜깁기 한 재활용형, 독자 제보형·참여형, 페이스북 라이브 여론조사 등 여러 갈래로 진화했다.  

클립 영상은 스포츠·예능 등 풍부한 콘텐츠를 보유한 KBS, MBC, SBS 등 대형 방송사의 활용도가 컸다. 편집 노하우와 제작 인프라가 한 수 앞섰다. 독보적인 SBS <비디오머그> 못지않게 JTBC 등 4개 종편사도 거들었다. 

독자가 문의하고 기자가 피드백하는 참여형 라이브 외에도 정규 뉴스 프로그램에서 미처 못다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소셜 전용 기획 프로젝트가 잇따랐다. 정치이슈를 쉽게 소개한 '100초 정치수업', 출연자가 미션을 수행하는 '치킨 게임' 시리즈,  '어려워진 운전면허 기능시험 테스트' 등 <노컷뉴스> '씨리얼(C-Real)'은 강의형·드라마형 같은 독창적인 스토리텔링을 앞세웠다. JTBC는 '전기료 누진제 소송 이슈'처럼 시의성 있는 주제에도 순발력 있게 대응했다. 

<KBS 뉴스>의 '아침뉴스'는 페이스북 라이브 중계를  통해 기상 리포터가 방송과는 다른 자유롭게 날씨 예보를 전했다. 머리를 긁적이거나 독자의 댓글을 읽어주는 등 친구같은 모습이다. '뉴스의 예능화'란 비판도 있지만 '친근한 뉴스'란 이미지와 '관계'를 덤으로 얻었다.

뉴스의 외연을 넓히고 독자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 일관되게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JTBC는 페이스북 '사회부 소셜 스토리'를 통해 기자들을 스토리텔러로 내세웠다. 우선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등에 훌륭한 수준의 '티저(teaser) 영상'을 공개해 실제 방송 시청으로 유도했다. 또 '미리보는 뉴스룸 #큐시트'로 흥미를 유발했다. 

물론 JTBC는 홈페이지, 유튜브, 페이스북 등 다양한 채널에서 라이브 중계를 진행했다. 정규 방송이 끝난 직후 페이스북에서 기자와 앵커가 어우러진 '소셜 라이브'는 중단없는 뉴스 소비로 짙은 여운을 남겼다. 

뉴스를 색다르게 구현하고 이것들을 물 흐르듯 연결하는 방식은 JTBC 브랜드에 대한 교감을 넓혔다. 유도현 닐슨코리아 미디어 리서치 부문 대표는 "기자나 부서, 앵커가 전면에 등장하는 페이스북 전용 콘텐츠는 다른 시사프로그램의 시청으로도 연결된다. 브랜드 충성도를 구축하는 활동으로 볼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휘발적이고 느슨한 경험(Reader Experience)에서 지속적이고 강렬한 경험(Fan Experience)을 제공해 골수 팬을 형성하는 전략인 셈이다.  

방대한 자료에서 인사이트를 제시하는 '데이터저널리즘'이 폭넓게 다뤄진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KBS 보도국 데이터저널리즘팀 '고병원 조류독감 이렇게 퍼졌다', SBS 뉴미디어국 데이터저널리즘 서비스 브랜드 '마부작침'의 20대 총선, YTN 보도국 데이터저널리즘팀, <중앙일보> '데이터로 보는 뉴스세상(DATADATE)' 등이 두드러졌다. 

콘텐츠의 절대량이 많아질수록 선별된 양질의 정보 수요와 차별화한 형식의 몰입도는 커진다. 미디어 전문가들은 이를 주제별, 타깃별로 콘텐츠 생산과 유통을 추진하는 '분산 미디어' 전략으로 확장한다. 세대·나이·지역 친화적인 니치(niche) 콘텐츠에 비중을 둔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두텁다. 강정수 <메디아티> 대표는 "2016년은 전통매체의 특종 경쟁이 디지털 뉴스 시장을 지배했다. 촛불집회를 라이브로 중계하는 영상이 압도했다. 정치 이슈가 온라인 저널리즘을 잠재웠다"고 평가했다. 

뉴스 시장 환경도 녹록지 않다. PC에서 모바일로 넘어간 뉴스 이용은 언론사 채널이 아니라 여전히 포털에서 이뤄진다. 뉴스 혁신 성과가 높게 나올 수 없는 환경이다. 유도현 대표는 "트래픽이 급증한 조선일보 '스낵(snac) 서비스'처럼 현재 연성 뉴스는 유효한 대응이다. 뉴스 혁신 그 자체에 주력한 것이 아니라 유통 채널 다변화로 시장 경쟁구도를 바꾸려는 여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디지털 뉴스의 위기는 가짜 뉴스(fake news)와 필터 버블(filter bubble)에서도 불거졌다. 뉴스 생산의 전문성이 엷어지는 가운데 누구나 허위 정보를 마구 유통해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 대선 과정에서 페이스북은 가짜 뉴스의 온상으로 도마에 오르내렸다. 

또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은 편향적인 정보 선별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소셜뉴스중개자 즉, 플랫폼 사업자가 개인의 기호나 취향을 반영한 내용만 뽑아서 전달하면 다른 사실을 접할 기회는 멀어지기 때문이다. 독자들도 소셜미디어에서 비슷한 성향의 친구들과 교류할수록 다양한 정보 노출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뉴스의 신뢰 회복을 위해 '팩트 체크(fact check)'와 '테크 저널리즘'이 부상했다. 미국의 주요 뉴스 미디어는 대선 후보자의 TV토론 프로그램과 인터넷을 접목했다. 후보자가 과거에 발언한 내용이나 관련 기사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시간 검증했다. JTBC 뉴스룸은 '뉴스룸 팩트체크' 페이스북 페이지와 연동해 사실 검증 채널로 입지를 굳혔다.

4년 전 시작된 <경향신문>, <한국일보> 등 신문사 팟캐스트(pod cast)는 시사 분야 팟캐스트 영역에서  <한겨레> '김어준의 파파이스' 등이 두각을 나타냈다. 기자나 유명인이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주효했다.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드론 등 첨단 기술과 결합된 테크(tech) 저널리즘도 화제였다. 기존 화각을 넓힌 360도 영상으로 통용되는 VR영상은 <한경닷컴> '뉴스래빗의 '아수라장 조계사' 보도를 시작으로 '"아들에 죄책감 없어요?"…잔인했던 부천 현장검증', '가장 추운 날…어쩌면 가장 따뜻했던 소녀' 등으로 주목받았다.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자동으로 뉴스를 생성하는 로봇 저널리즘(Robot Journalism)은 <LA타임즈>의 실시간 지진 속보 작성 로봇기자 '퀘이크봇(QuakeBot)'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선 시황 기사를 쓰는 2015년 초 <파이낸셜뉴스>의 ‘아이엠에프엔봇(IamFNBOT)’, 기업 공시자료를 전하는 <매일경제> 스타트업 '엠로보' 그리고 올 1월 <헤럴드경제>의 '히어로(HeRo)'로 이어졌다.  

드론은 2014년 경주 마우나 리조트 붕괴사고 때 조명받았지만 비행금지구역, 야간비행 금지 등 항공법의 제약과 전담인력 부족으로 신문사의 경우 취재 과정에 광범위하게 쓰이지 못했다. 그러나 독자 제보, 공모전 등의 형태로 가능성을 타진하는 언론사들도 하나둘 생겼다. <한경닷컴>은 외부 전문기관과 '한경 드론영상 콘테스트'를 개최하는 등 사업화를 추진했다.  

강정수 대표는 "해외 뉴스 미디어는 디지털 투자가 확대되고 있다. 특히 기술력과 콘텐츠가 우수한 스타트업이나 고객층을 확보한 온라인 미디어를 인수했다"고 말했다. 내부 실험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외부 협력을 통한 합종연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독자가 문제 해결이나 판단을 위해 행동할 수 있는 정보를 흥미와 호기심을 곁들이며 제공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중앙일보>·JTBC는 올해 초 독자가 직면한 문제와 사회적 이슈를 여론화하고 대안을 찾는 열린 소통 채널 '시민마이크'를 오픈했다. '시민마이크'는 특정 주제에 대해 독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광장이다.  

다양한 장르를 결합하는 기법도 여럿 나왔다. <중앙일보>는 판결 데이터를 기초로 헌재와 독자의 인식 차이를 알아보는 '당신과 헌재의 싱크로율은?', '초간단 정치성향 테스트' 등 '뉴스퀴즈'를 꾸준히 선보였다. 

크고 작은 뉴스의 혁신들이 쏟아졌지만 '거품'론도 제기된다. 뉴스 스타트업 한승곤 <뉴스룸(Newsroom)> 대표는 "전통매체는 지나치게 '완성도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시장의 경향은 쉽게 전달하고 널리 공유하는 것이다. 독자가 원하는 것을 언제든 제공할 수 있는 가변형 생산 구조를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뉴스 형식 못지않게 조직의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유도현 대표는 "독자를 고객으로 인식하고 성향을 파악하고 개인화 뉴스를 제공하는 활동이 커지고 있다. 핵심 독자층이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채널에 대한 맞춤형 접근으로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와 충성도를 높여야 한다"며 뉴스 혁신 방향을 설명했다. '브랜드 선택과 목적지향 독자' 또는 2030 세대를 주축으로 하는 '스마트 유저'를 발굴하고 이들과 호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를 수동적인 소비자에서 뉴스에 관여하는 참여자로 상정할수록 뉴스의 변신은 필연적인 흐름이다.  

<뉴욕타임스>는 1월 미래 비전을 담은 <2020 보고서>에서 비주얼(visual) 형식과 '서비스 저널리즘(service journalism)'을 내세웠다. 독자가 견인하는 뉴스의 시대를 상징한다. 지난해는 다채로운 뉴스 형식을 풀어내며 독자와의 눈높이를 맞춰 봤다면 앞으로는 열성적인 독자와의 소통, 참여와 협력에 방점을 둬야 한다. 닫힌 커뮤니케이션에서 열린 커뮤니티로, 일방적인 콘텐츠에서 공감하는 문화로, 지식에서 지혜의 틀로 뉴스 경쟁력을 재정의해야 한다.


덧글. <신문과 방송> 2월호 원고입니다. 원고작성 시점은 1월 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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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 없는 언론, 덕후 많은 유명인

Online_journalism 2016.09.19 00:19 Posted by 수레바퀴

류근 시인과 선대인 경제연구소장의 페북 계정. 류근 시인은 한 신문의 보도내용에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고, 선대인 소장은 한 방송의 출연정지 통보가 부당하다며 공론화했다. 유명인이 자신의 소셜계정을 지렛대 삼아 레거시 미디어의 일방 통행에 직접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이들의 팬들은 즉각 그들을 응원하고 나섰다. 레거시 미디어의 독자 충성도는 빈약한데 비해 유명인의 팬덤은 규모는 물론 내실도 성장한지 오래다.

유명인들이 언론(인)과 관계에서 겪은 일들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 계정으로 공개하는 경우가 부쩍 늘고 있다. 

과거에는 (향후 언론관계를 고려해서) 보도내용 가운데 잘못된 사실관계를 바로 잡는 선에서 소극적으로 대응했지만, 최근에는 법적 다툼은 물론이고 기자 또는 제작진과 주고받은 이야기들을 소상히 전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양상이다. 

<상처적 체질>에 이어 얼마전 시집 <어떻게든 이별>을 낸 류근 시인은 15일 페이스북에 한국일보 황아무개 기자의 기사를 링크하며 불편한 마음을 드러냈다. "왜 내 시집 기사 안 써줘요"란 제목의 이 기사에 '익명'으로 등장한 시인이 '나'라며 해명하고 나선 것.

평소 잘 아는 한국일보 다른 기자에게 안부 겸해 전화를 걸었다가 졸지에 '기사 청탁'을 한 '갑질 시인'이 됐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에서 류근 시인과 시는 '여성을 착취하는 메커니즘' 위에 똬리를 튼 채 "야만의 세계를 꼭 빼 닮은 야만의 시"를 생산하는 것으로 모질게 평가받았다. 

류근 시인은 이 기사를 "시에 대한 오독과 모독"이지만 "이해한다"고 받아들이면서도 시집 기사나 써 달라고 재촉하는 '쓰레기 시인'으로 둔갑시키고, 구체적 작품 인용도 없이 시집을 '여성혐오의 총알받이'로 만들어버린 '언론권력'에는 '양아치 폭력'이라며 토를 달았다. "사실 관계에 대한 정확한 확인도 없이 한 개인을 뭉개버렸다"는 것이다.

시인은 자신의 소셜 캐릭터처럼 "참 영광스런 노릇"이며 "눈물나게 고맙다"고 역설로 봉인했지만 쉽게 닫히지 않는 모양새다. 한 평론가는 류근 시인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의 글을 허핑턴포스트에 기고했고, 소설가 이외수는 "평론가는 오줌을 누고 싶어 하는 개와 흡사하다"며 시인을 '응원'했다. 시인의 팬들은 이루 말할 것도 없다.

평소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해온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은 18일 자신의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통해 KBS <아침마당>의 납득할 수 없는 출연 정지 통보에 깊은 유감을 표했다.

선대인 소장은 장문의 글에서 "프로그램이 정한 생존•탈락시스템은 어긴 채 담당 국장과 본부장이 전해 들은 의견을 내세워 중도하차를 결정했다"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음에도) 시청자에게 사과는커녕 방송과정에서 저지른 잘못 때문에 출연을 정지시킨다는 안내 멘트를 방송에서 할 예정이라는 문자를 받았다"고 경위를 소상히 밝혔다. 

또 선 소장은 "이번 일은 언론의 공정성과 여론 다양성을 훼손할 수 있는 문제이고, 공영방송의 가치에 의문을 갖게 하는 문제"로 규정하면서 '공론화'했다. 선 소장은 특히 "(KBS 제작진과 주고받은) 통화 녹취파일과 문자 내용 등이 있다"면서 앞으로 진실공방이 있을 경우 '공개' 의사까지 밝혔다.

선 소장과 KBS측의 갈등을 전한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KBS 담당 CP는 "프로그램에서 정해놓은 규칙에 따르지 않고 선 소장에게 ‘출연정지’ 통보를 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선 소장의 방송 내용에 대한 문제 지적이 있었기 때문에, 제작진(국장·책임피디·담당피디)이 자체적으로 판단과 결정을 내렸다"고 해명했다. 또 KBS측은 조만간 제작진의 공식 입장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선 소장의 페이스북 계정에는 '팬'들을 중심으로 '공영방송 신뢰추락' 논란이 가열되고 있고, 언론보도가 잇따라 파문이 확산될 조짐도 엿보인다. 

언론(인)과 유명인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면 몇 가지 생각할 여지가 있다.  

첫째, 언론(인)과 유명 취재원(출연자)은 대등하다. 이제 취재원은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에 노출되는 것이 일정한 성공을 위해 최우선적인 목표도 아니고, 언론 역시 (대중성을 갖춘) 전문가 확보가 예전처럼 몹시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이제 양측은 서로에게 전략적 파트너에 다름아니다. 더욱이 특정 사안이나 주제를 이끌어 가는 측면에서는 언론(인)의 역할이 점차 줄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흐름이다. 여행, 공연, 부동산, 금융 등 각종 이슈를 판단하는데 있어 레거시 미디어의 콘텐츠는 2순위가 되기도 한다. 언론은 여러모로 불순한 동기에 의해 보도한다는 비판을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둘째, 유명 취재원(출연자)은 네트워크에서 브랜딩-대중성, 저명성, 전문성 등을 쌓는 동안 팬들과 직접 접촉이 늘어나게 된다. 단지 공감버튼과 댓글로 그치지 않고 미팅, 토크쇼, 식사 등 대면 접촉이 빈번해진다.

반면 언론(인)은 혁신의 강도나 수준에 따라 다르지만 당분간은 독자와의 직접 만남이 제한적이고 후차적인 과제로 머물러 있다. 독자는 댓글-게시판을 점령할 순 있지만 현실적으로 '(사내)인사', '정책(논조)', '수입'에 영향을 미치는 분명한 그룹은 아니라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셋째, 유명 취재원(출연자) 특히 전문가들은 네트워크에서 영향력을 일정하게 갖추고 있다. 이에 언론(인) 사이에도 이들을 확보하려는 다툼은 격화하고 있다. 현실에선 '우리 편'은 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다른 매체와 협력할 때도 있고 경우에 따라선 등질 때도 있어서다.

사실 미디어 시장에서 전문가를 둘러싸고 피할 수 없는 경쟁은 오래 전 시작됐다. 유명 필자, 스타는 지면 경쟁력과 프로그램 시청률을 견인하는 원동력 중 하나다. 심지어 페북 스타의 기사 공유는 클릭 순위를 주무른다. 언론(인)이 팬덤을 보유한 취재원(출연자)과 반목하는 것은 결과적으로는 손해나는 일이다.

오늘날 유명인의 소셜계정은 언론은 물론 대중의 관심을 사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유명인과 척을 진 언론(인)을 보지 않으면 그뿐이지만 유명인의 소셜계정에서 '좋아요'를 누르는 일은 매일 습관이 돼 있다. 유명인의 '호소'는 "정의에 가깝다"는 팬들이 많다. 언론(인)은 활동 역사만 한 세기니 "누가 뭐래도 믿는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앞으로도 각 분야 전문가 즉, 유명인들과 레거시 미디어 간 갈등은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안의 경중과는 별개로 유명인들이 자신의 소셜계정으로 대언론 비판에 활발히 나서는 것은 소셜네트워크에서 확보한 두터운 팬층을 의식한 행동으로 볼 수 있다. 류근 시인과 선대인 경제연구소장이 스스로 밝히면서 알려진 이 사건들은 대표적이다. 

'덕후'를 등에 업은 유명인 그리고 팬덤은 없지만 '관록'의 전통매체 사이에 벌어지는 팽팽한 대결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경기장은 점점 기운다. 네트워크 참여자들과 상호교류와 공감이 없는 레거시 미디어의 연전연패다. 오죽하면 현존하는 혁신의 최종 목표가 타깃 독자 확보이겠는가.

선대인 소장은 19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시고 KBS 아침마당 시청자게시판에까지 찾아가 항의의 글을 올려주신 덕분"이라며 감사의 글을 올렸다. KBS가 해당 프로그램에서 (선 소장은 100% 만족하지는 않지만) 공식적인 안내 멘트를 내보낸 데 따른 것이다. 선 소장은 "(자신의 출연정지는) '진짜 시청자'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행태"인 만큼 "(바로 잡는 행동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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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법감정`은 흉악범죄일수록 피의자 신상공개가 당연하다는 쪽이다. 하지만 피의자 신상공개의 부작용이 만만찮다는 점에서 언론, 시민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지난 5월 ‘안산 대부도 토막시신 살인사건’의 피의자 조성호(30) 씨의 신상은 경찰이 공개하기도 전에 SNS(사회관계망 서비스) 등으로 알려져 ‘흉악범의 신상 공개’ 논란을 다시 일으켰다. 경찰은 조 씨를 긴급 체포한 뒤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열고 범행 수법의 잔혹성 등을 근거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얼굴, 성명, 나이를 공개했지만 그 과정에서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경찰은 당시 수사본부장인 안산단원경찰서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신상공개위원회를 통해 “범행수법이 잔혹한 데다 사망이라는 중대한 결과가 초래된 점”에서 신상정보 공개대상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2009년 강호순 연쇄살인사건 이후 2010년 4월에 신설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하 ‘특강법’)1) 제8조의2에 근거하여 국민의 알 권리 보장과 범죄예방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피의자의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피의자가 구속되기 전,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서 열린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려고 피의자가 단원경찰서를 나설 때 피의자의 얼굴이 노출됐다. 경찰이 마스크를 씌우지 않아서였다2.) 현행 특강법 제8조의2는 피의자의 얼굴 공개 요건으로 △ 잔인하고 중대한 특정강력범죄일 것, △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 국민의 알 권리 보장,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것, △ 피의자가 청소년이 아닐 것 등을 정하고 있다. 또 동법 제8조의 2 제2항은 피의자의 얼굴 등을 공개하더라도 피의자의 인권을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하고 남용해선 안 된다고 돼 있다.

수사기관의 피의자 신상공개 기준 오락가락

문제는 사건에 따라서 다른 결정이 내려진다는 점이다. 2015년 1월 자신의 부인과 두 딸을 살해한 ‘서초구 세 모녀 살해사건’, 지난 1월 자녀를 상습적으로 폭행하다 살해 후 사체를 토막내 냉동실에 보관한 ‘부천 초등학생 아들 시신 훼손 사건’, 3년 전인 2013년 전처의 자식을 학대하다 죽이고 암매장한 ‘평택 아동 살해 암매장 사건(일명 원영이 사건)’의 경우에는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지 않았다.3)

이 사건들의 경우 남겨진 피해자 가족과 지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처음부터 피의자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다. 특강법에 의한 피의자 ‘신상에 관한 정보’ 공개는 모든 사례에 의무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수사기관의 판단 즉, 재량권에 속한다. 조성호 씨의 경우, 피의자 신상 공개가 이뤄지지 않았던 다른 사건들에 비해 신속히 공개돼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대부도 토막살인 사건’의 피의자 신상 공개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시행된 여론조사는 피의자 인권에 대한 대중의 눈높이가 피의자 인권보다는 ‘알 권리’에 있음을 보여줬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5월초 전국 19세 이상 성인 536명을 대상으로 강력범죄 피의자 신상공개에 대해 설문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4.2%포인트)를 한 결과 응답자의 절대 다수인 87.4%가 강력범죄 피의자 신상공개에 찬성을 한 반면 반대 응답자는 고작 8.9%에 그쳤다.

네티즌들의 ‘신상털기’는 이와 같은 군중심리에 기댄 채 확산되고 있다. 네티즌들은 범죄 피의자나 피해자의 거주지, 학교 그리고 지인의 신상 정보까지 인터넷에 퍼 나르는 등 공격성을 띤지 오래다. 피의자 개인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찾아내 공유하며 ‘피의자의 인격권은 존재할 수 없다’는 ‘집단적 타성’마저 드러내고 있다. 수사기관의 피의자 신상 공개 기준의 모호함, ‘검사와 사법 경찰관이 신상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는 재량권의 느슨한 공백 탓이다.

‘안산 대부도 토막시신 살인사건’은 피의자의 페이스북 계정이 가장 먼저 노출됐다. 네티즌들은 피의자가 올린 사진과 범행 이후 작성한 메시지 등을 온라인으로 퍼뜨렸고 과거 직업이나 지인들의 정보도 알아냈다. 여자친구를 추적하는 시도도 잇달았다. 2011년 고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 때도 네티즌들은 피의자의 신상을 찾아내 전파했다. 피의자의 사진은 물론 가족사항, 학교 정보까지 고스란히 공개돼 가족은 물론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람과 단체가 피해를 입었다. 특히 피의자로 오인해 엉뚱한 사람의 정보를 공개한 네티즌은 기소됐다.

네티즌 마녀사냥 기댄 언론의 ‘여론재판’ 반복

언론의 범죄보도는 일반적으로 범죄 내용을 상세히 묘사하거나 자극적인 용어, 끔찍한 사진 및 영상으로 구성된다. 또 흉악범죄 이면의 사회적 배경을 진단하거나 유사범죄의 예방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보도 이전에 피의자는 물론 피해자의 주변 정보까지 드러내는 가십성 보도가 주종을 이룬다.

이러한 범죄보도는 시기적으로 수사에서 공소제기 이전의 단계, 즉 확정판결 이전에 집중되는 경향이 강하고, 보도 내용도 대부분 수사기관의 보도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해 수사기관의 관점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결과 피의자를 범인으로 단정하는 소위 ‘범인화 보도’가 대부분이다. 특히 ‘네티즌 수사대’가 파헤친 피의자의 신상 정보는 언론들에 의해 그대로 보도된다. 피의자의 사생활을 논란으로 다루고 인격적 비난에 동조함으로써 공판 시작 전에 이미 언론재판(Media Trial)을 해버리는 것이다. 4)

2015년 10월 발생한 ‘용인 캣맘(cat mom) 사망 사건’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경기도 용인시 한 아파트 화단에서 길고양이 집을 짓던 50대 여성이 초등학생이 던진 벽돌에 맞아 사망했다. 사건발생 후 용의자가 밝혀지기까지 1주일 동안 인터넷에서는 ‘길고양이를 돌보는 여성(일명 캣맘)’을 향한 혐오범죄라는 주장이 난무했다. 대다수 언론은 이 사건을 ‘캣맘 vs 캣맘 혐오자’의 구도로 다뤘다. 캣맘 혐오와 무관하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 언론은 사건 발생 초기 인터넷에서 촉발된 증오 범죄 의혹 논란에 대해 사실 검증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성폭행 사건보도의 경우에는 사건의 본질과 거리가 먼 이목끌기식 표현들이 난무한다. 헤럴드경제는 지난 5월 전남 신안군 섬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건을 보도하면서 “만취한 20대 여교사 몸속 3명의 정액…학부형이 집단강간”이란 헤드라인을 뽑았다. 이에 해당 언론사 사옥과 언론중재위원회 앞에서 해당 보도를 규탄하는 1인 시위가 벌어졌다.5)

흉악범죄라는 1차 피해 이후 피의자와 피해자 가족, 기업, 학교는 물론 지역공동체 등이 겪는 2차적인 피해가 계속 이어지자 경찰은 최근 신상공개 매뉴얼을 만들었다. 문제는 대중의 공분을 메울만한 사회적 준비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네티즌들이 피의자 신상을 터는 행태가 일상화되고 ‘통제 불능’이 된 것도 언론이 알 권리 차원을 벗어나 대중의 격분과 호기심을 부추긴 측면이 크다.

상업적 범죄보도 주원인은 독점적 시장 경쟁질서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행태가 만연하게 된 것은 첫째, 속보경쟁이 치열한 인터넷 뉴스 시장의 속성 때문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 매달리는 언론사 디지털 뉴스 생산 조직은 좌고우면할 시간이 없다. 흉악범죄 관련 키워드가 단골 검색어로 오르내리는 상황에서 사실관계 확인이나 윤리적 고려는 일종의 사치에 불과해진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연구보고서6)에 따르면 스마트폰, PC, 태블릿처럼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기기로 뉴스 속보를 접한 비율이 응답자의 60%에 달했다.

모바일이 주도하는 뉴스 이용 환경에서 언론사가 우선 발생 이슈에 대한 대응 속도에 초점을 두는 건 당연한 선택인 셈이다.

둘째, 언론사가 네티즌들의 피의자 신상 털기 내용을 받아쓰거나 앞다퉈 피의자의 사생활을 보도하는 데에는 먼저 쓰는 것 못지않게 이슈를 선점하지 않으면 뉴스 조회수 경쟁에서 밀린다는 시장논리가 깔려 있다. 화제성 제목과 사진 등을 쓰지 않으면 포털주도 뉴스 시장 구조에서는 영향력을 확장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올해 초 문화체육관광부 여론집중도 조사위원회가 발표한 <2015년 여론 집중도 조사 결과>에 의하면 인터넷 사이트 이용 점유율(실제 뉴스 이용 지점 기준)은 네이버(55.4%), 다음(현 카카오, 22.4%) 등 양대 포털이 80%에 이른다. 반면, 언론사 사이트의 이용 점유율은 평균 1%대에 머물렀다. 포털을 통해 뉴스를 이용하는 비율이 절대적인 만큼 언론사는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 이슈를 키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셋째,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10월 공개한 ‘인터넷신문과 인터넷뉴스서비스 운영 및 법규 준수 실태점검’ 결과에 따르면 각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등록한 인터넷신문은 5,877개나 된다. 종편을 비롯한 방송사, 신문, 잡지 등 기존 언론사들 역시 포털사이트라는 생태계가 없으면 정상적인 경영이 어려운 형편이다. 

특히 이 시장에서는 품을 들이는 정통 뉴스는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예를 들면 1분 20초짜리 뉴스 리포트보다 예능이나 토크쇼 프로그램 출연자들의 말 한마디가 육하원칙의 뉴스를 압도힌다. 또 SNS에서는 개성을 내세운 큐레이션 서비스가 언론사의 정통 뉴스보다 관심을 얻는다. 뉴스의 경계가 사라지는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에서 언론사는 탐사보도(Long-form journalism)나 사실검증(Fact Checker) 대신 인터넷 상에 떠도는 가십과 루머를 짜깁기하는 효율을 추구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보도 내용에 대한 검증, 전문성 제고 미흡

넷째, 인터넷에서 퀄리티 저널리즘(Quality Journalism)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은 언론사 내부의 디지털 뉴스 조직이 여전히 시장 변화에 걸맞는 비중과 위상을 갖추지 못해서다. 디지털 뉴스 이용 시간이 전통적인 미디어보다 앞서는 현실에도 신문 지면이나 TV 뉴스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다 보니 예고도 없이 시시각각 발생하는 범죄보도는 대체로 연차가 낮은 기자들의 몫이 된다. 범죄보도 검증이나 평가도 시의적절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사건의 맥락과 세밀한 배경을 차분히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비슷비슷한 속보뉴스, 수사기관 의존형 취재가 계속되는 구조이다. 힘들고 어려운 취재 영역인 범죄보도에는 전문 기자가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경기도 서남부 일대에서 여성을 연쇄 납치해 살인한 ‘강호순 사건’, 2012년 ‘나주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일명 고종석 사건)’ 등 그동안 범죄보도와 관련해 물의를 빚을 때마다 언론사와 언론 단체는 ‘신문윤리실천요강’7), ‘취재 보도 가이드라인’ 등 자율적인 기준을 강조하며 ‘자정’ 의지를 내비쳐왔다. 

범죄보도를 할 때에는 범죄 사건과 범죄 관련자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신상이 공개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고, 특히 해당 범죄와 관련이 없는 가족이나 친인척의 이름과 초상이 노출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범죄보도 이해 당사자의 반론권을 충분히 보장할 필요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언론 종사자들이 직업윤리강령상의 규정들을 실천하는 것이 가장 핵심적이다.8)

인격권 존중 원칙 담은 언론계 윤리강령

1957년 4월 7일 제정된 신문윤리강령 및 신문윤리실천요강은 1996년, 2009년에 이어 올해 4월까지 총 세 차례 개정됐다. 이를 한국신문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등 3개 단체가 공동으로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또 한국기자협회는 2004년 한국자살예방협회와 공동으로 제정한 자살보도윤리강령,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와 공동 제정한 인권보도준칙에 이어 2012년 성폭력 범죄보도 세부권고 기준을 마련했다.

신문윤리강령은 언론의 자유, 언론의 책임, 언론의 독립, 보도와 평론, 개인의 명예 존중과 사생활 보호, 반론권 존중과 매체접근의 기회제공, 언론인의 품위 등 모두 7개 조항으로 구성된다. “우리 언론인은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고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는 선언적인 인격권 보호 내용은 제5조 ‘개인의 명예존중과 사생활 보호’9)에 기술돼 있다.

또 총 16개 조항인 신문윤리실천요강은 제3조 보도준칙 제4항 ‘선정보도의 금지’, 제8항 ‘피의사실의 보도’에서 각각 “기자는 성범죄, 폭력 등 기타 위법적이거나 비윤리적 행위를 보도할 때 음란하거나 잔인한 내용을 포함하는 등 선정적으로 보도해서는 안 되며 또한 저속하게 표현해서는 안 된다”, “경찰 및 검찰 등 수사기관이 제공하는 피의사실은 진실여부를 확인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피고인 또는 피의자 측에게 해명의 기회를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등의 기본적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헌법 제27조 무죄추정원칙에 근거해 피의자 및 피고인 인권 존중 그리고 범죄에 연루된 정신이상자와 박약자, 피해자 및 무관한 가족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신원을 밝힐 수 없도록 한 신문윤리실천요강 제7조 ‘범죄보도와 인권존중’은 형사피의자 및 피고인의 명예존중, 성범죄와 무관한 가족보호, 피의자 및 참고인 촬영 신중 등 범죄보도 시 가다듬어야 할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를 위해 피의자와 피고인에게도 경칭을 쓰도록 주문한다.10)

전문, 총강, 9개 분야별 요강으로 구성된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은 장애인, 이주민(외국인), 노인, 성적 소수자, 어린이와 청소년, 북한(이탈)주민 등의 인권보호 관련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가운데 제2장 ‘인격권’은 “개인의 인격권(명예, 프라이버시권, 초상권, 음성권, 성명권)을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을것”을 전제하면서 “범죄보도 시 용의자, 피의자, 피고인 및 피해자, 제보자, 고소·고발인의 얼굴, 성명 등 신상 정보는 원칙적으로 밝히지 않는다”는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성범죄 보도준칙은 2차 피해 예방에 초점

한국기자협회의 ‘성폭력 범죄보도 세부권고 기준’ 실천요강은 “피해자 및 가족은 물론 성범죄 피의자의 신상정보도 관련 법률에 의해 공식적으로 공개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보도하지 않는다”는 인격권 보호 의지를 담고 있다.11)

대다수 언론사는 언론자유, 취재 및 보도윤리, 직업윤리 등을 골자로 하는 내부 보도준칙(윤리강령)을 제정하거나 ‘신문윤리강령’, ‘한국기자협회 윤리 강령’ 등 언론단체의 것을 준용하고 있다. 일부 언론사는 ‘기자준칙’과 윤리강령의 세부지침인 ‘운영지침’ 등을 갖고 있으며 세월호 참사 보도, 흉악범죄 관련 보도로 인한 2차 피해가 잇따르자 내부 가이드라인을 손질하기도 했다. 

경향신문은 2012년 10월 성범죄 보도에서의 선정주의 폐해를 줄이고 아동이나 가족 등 피해자 보호, 성범죄 예방과 재발 방지대책 마련을 위해 ‘성범죄 보도준칙’을 제정했다. 한겨레는 2010년 1월 시민의 알 권리 및 피의자 인권 보장을 주 내용으로 하는 ‘범죄수사 및 재판 관련 취재 보도 시행 세칙’을 만들었다.12) 세칙에 따르면 “피의자 신원은 원칙적으로 공개하지 않되 고위공직자나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 사회적 관심이 큰 범죄 사건의 경우 실명이나 얼굴 사진 등을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13.)

그러나 최근에도 언론의 인격권 보호 지침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보 파문으로 치달은 2012년 ‘고종석 사건’이 대표적이다. 조선일보는 나주 성폭행 피의자의 체포 사실을 보도하며 피의자가 아닌 일반인의 사진을 1면에 잘못 게재하여 정정보도를 했다. “좀 더 철저히 확인하지 못해 피해를 본 분과 독자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린다. 피해를 입은 분의 명예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언론사별 성폭행 사건 보도준칙을 만들자는 ‘자성론’을 낳았던 이 사건 이후에도 범죄보도에서 인격권 침해는 반복됐다. 언론단체와 언론사가 정한 윤리강령이 구체적이지 않은 점도 거든다. 또 언론단체나 언론사가 마련한 자율 규정은 문자 그대로 자율적인 ‘권고 사항’에 불과해 이를 위반했을 경우 별도의 제재 수단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계 일각은 논란이 있는 범죄보도마저 '언론의 습성'으로 치부하는 조짐도 보인다. 

범죄보도 교육, 보도준칙 세부내용 강화해야

특히 일선 취재기자들은 성폭력보도나 범죄보도 관련 규정의 존재 여부를 모르거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기사작성을 위한 정보를 얻는 과정에서 저질러지는 취재방법의 비윤리성, 익명취재원의 이용행태, 언론사 간 표절, 인터뷰나 인용부호 사용 의존 등의 문제를 보도 기법과 기자의 역량으로 한정하여 기자 개인이 방어해야 하는 대상으로 간주한다. 즉, 직업적 전문성 제고를 위해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로는 받아들이지 않는 셈이다.14)

이런 상황을 개선하려면 첫째, 언론사와 기자들이 특히 범죄보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문제의 숙지가 중요하다.15) 명예훼손, 사생활과 비밀의 자유 등 타인의 인격권16)을 침해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법행위인 만큼 알 권리와 국민 정서, 범죄 예방을 근거로 피의자 신상공개를 합리화할 수 없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17) 대법원은 1998년 “범죄혐의자 보도가 반드시 범죄보도와 같은 공공성을 가진다고 볼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둘째, 법률에 대한 무지, 인식의 부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언론보도와 관련한 교육 또는 학습이 선행돼야 한다. 특히 언론윤리 교육프로그램은 상설화되어야 한다. 성폭력보도를 비롯한 범죄보도를 다루는 일선 평기자는 물론 데스크, 편집·보도국장 등 간부진도 예외 없이 이수케 해 인권보도의 중요성을 짚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18)

셋째, 사전에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 제거하는 보도준칙의 강화가 필요하다. 미국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의 경우, 속보경쟁을 지양하는 등 범죄보도에 신중을 기하는 취재 문화가 정착돼 있다. 이들 언론사는 일반적으로 범죄보도 시 피의자 실명을 공개하고 있지만 그 대신 피의자에게 반론의 기회를 주고 있다. 영국 언론계는 2005년 6월 ‘실무강령’을 공동 제정하여 피해자의 개인정보 공개를 제한하고 있다.19)

범죄자 인격권 논의의 다양성, 확장성 필요

넷째, 경찰 수사단계에서의 정보공개 기준 마련, 「범죄피해자보호법」20) 강화를 비롯한 관련 법령에 자세한 처벌기준을 추가하는 것도 고려해봄직하다. 영국의 경우 피의자 자백 사실을 보도하거나 ‘엄벌해야 한다’는 식의 ‘단죄를 요구하는 의견(사설)’은 피의자가 공정하게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므로 ‘법정 모독죄’에 해당한다.

다섯째, 더 나아가 학계, 법조계, 시민사회단체 등이 언론보도와 인격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공론화해 상시 점검 기회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김성해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최근 한 미디어 전문지와의 인터뷰에서 “언론윤리백서를 만들어 언론중재위원회에서 다루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언론사의 데이터를 기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21)

논란을 일으키는 범죄보도는 단지 법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언론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크게 떨어뜨린다. 언론사의 윤리적인 일탈행위는 대중의 대 언론 신뢰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법적 책임보다 훨씬 심각하고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22) 범죄보도에서 인격권 존중 원칙이야말로 언론사의 이익을 보호하는 일로 다뤄져야 할 때이다. 

범죄보도의 목표를 달성한다는 이유로 범죄 피의자 그리고 피해자의 인격적 권리 침해가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다.23) 범죄보도로 인한 명예훼손, 초상권·성명권·사생활 침해는 물론 형사절차의 공정성 침해를 사전에 차단하는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당장에는 언론사의 자율규제 내용을 정비해 실효성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와 함께 흉악 범죄자의 양형을 비롯 수사 과정 전반의 법제도24)를 서둘러 개선해야 한다. 네티즌들이 범죄 피의자를 상대로 ‘마녀사냥’을 되풀이하는 것은 수사기관의 수사과정과 범죄자에 대한 양형 기준에 적지 않은 불만을 갖고 있음을 반증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솜방망이 처벌과 흉악 범죄자의 높은 재범률 사이에 인과관계를 밀도 있게 검토해야 한다. 

지금까지 범죄자 인격권 침해의 사회적 공방은 옐로우 저널리즘과 인터넷 하위 문화에 한정된 측면이 있다. 앞으로는 디지털 리터러시, 교양 공동체, 경쟁과 여가의 질 등 다각적인 연구가 꾸준히 전개돼야 한다. 알 권리와 인권이라는 수레의 양 바퀴는 공동체의 성숙한 합의라는 길 위에 놓여야 하기 때문이다.

(주석)

1) 2005년 10월 경찰청 훈령으로 정한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에 따르면 피의자의 신원 또는 신분을 추정할 수 있는 장면을 촬영해선 안 된다. 이 같은 이유로 흉악범들의 얼굴은 대부분 마스크와 모자 등으로 가려졌다. 그러나 2009년 부녀자를 연쇄살인한 강호순에 대한 신상공개 여론이 거세게 일자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일명 특강법이 개정됐다. 특강법이 정한 4개 기준에 따라 경찰은 흉악범의 얼굴, 성명, 나이 등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게 됐다.

2) 1990년대까지는 범죄사건 보도 시 피의자 얼굴을 공개하는 추세였으나, 2004년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 당시 청소년 피의자의 인권보호 문제로 피의자 얼굴을 가리고 수갑을 찬 모습은 모자이크 처리했다. 2005년 6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수갑 찬 피의자의 인권과 사생활 보호’를 경찰에 권고했고, 경찰도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에 피의자 신분 노출 금지 규정을 마련했다. 이후 올해 6월 경찰청은 사체를 훼손하거나 토막 내는 등 잔인성이 있는지, 사망 등 큰 피해가 발생했는지, 혐의를 입증할 충분한 증거를 확보했는지, 범죄 예방 등 국민의 알 권리에 부합하는지 등 ‘체크리스트’를 마련해 시행에 들어갔다. 이 체크리스트를 바탕으로 각 지방 경찰청에서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얼굴과 이름 등을 공개할지 결정한다. 공개 시기는 구속영장 발부 이후를 원칙으로 한다. 다만 국민의 이목이 쏠리고, 이미 실명이 공개된 피의자의 경우 증거를 확보했다면 구속영장발 부 전이라도 예외적으로 공개할 수 있다.

3) ‘원영이 사건’은 사망한 피해자의 나이가 어리고 계모와 친부의 상습적 학대에 따른 결과라는 사실로 사회적인 충격이 컸지만 경찰은 아동 대상 범죄의 특성을 내세워 신상을 공개하지 않았다. 언론도 피해자 원영군의 누나를 보호하기 위해 피의자 신상을 공개하지 않았으나 네티즌들은 친부와 계모 사진을 SNS에 유포했다.

4) 『프레시안』, 2014. 5. 12. 정한중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범죄보도에 무방비로 노출된 법관, 그 해법은?”(검색일: 2016. 6. 16.)

5) 헤럴드경제는 사회적 파문이 확대되자 해당 기사를 삭제하고 자사 웹사이트에 “피해자의 인권 등을 고려하지 못한 선정적이고 저급한 제목을 달아 사건 관련 피해자들은 물론 국민들을 불쾌하게, 또 분노케 만들었다. 도의적 책임을 통감한다”는 사과문을 게시했다. 사측은 “기자 윤리교육을 강화하고 성폭력 및 성차별에 대한 인식을 확고히 심어 이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6) 김영주·정재민, 2014, 『소셜 뉴스 유통 플랫폼 : SNS와 뉴스 소비』(한국언론진흥재단).

7) 1957년 4월 7일 제1회 신문의 날을 기념하면서 전국 신문·통신사 편집인들이 처음으로 ‘신문윤리강령’을 채택하였다. 이 강령은 언론의 ① 자유, ② 책임, ③ 보도와 논평의 태도, ④ 독립성, ⑤ 타인의 명예와 자유, ⑥ 품격 등을 규정하고 있다. 그 뒤 이 강령은 한국신문협회·한국통신협회·한국기자협회 등 언론 기간(基幹)단체가 추가 채택하였고, 1961년에는 ‘신문윤리실천요강’을 제정하여 위의 기간단체들이 채택하였다. 윤리강령과 실천요강을 준수하기 위해서 언론계는 1961년 9월 12일 한국신문윤리위원회를 구성하여 자율심의와 제소사건을 다루고 있다.

8) 이승선·김연식, 2008, “범죄보도로 인한 인격권의 침해와 문제점”, 『사회과학연구』 vol.19. No.3(충남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9)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6.사생활 보호 “우리는 개인의 명예를 해치는 사실무근한 정보를 보도하지 않으며, 보도대상의 사생활을 보호한다.” 

10) 헌법 외에도 법적 측면에서 범죄 피의자의 인격권은 확정 판결 이후에도 일정 부분 보장된다.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에는 보도로 인해 인격권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경찰청 훈령 제461호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직무규칙」에도 공개 수배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범죄 피의자의 초상권 침해를 금지하고 있다.

11) 인터넷신문윤리강령, 한국인터넷기자협회 기자윤리강령, 한국전문신문협회 신문윤리실천요강 등에는 ‘피의자’에 대한 기술은 없고, 무죄추정원칙을 따르되 공공의 이익과 타인의 명예와 자유를 보호하여야한다는 선언적 내용만 포함되어 있다. 전통매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피의자 인격권 보호 장치는 취약한것으로 보인다.     

12) 『한겨레』는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 이후 ‘언론 책임론’의 연장선상에서 태스크포스팀을 운영했다.

13) 『한겨레』는 2009년 ‘강호순 사건’ 당시 “흉악범이라 할지라도 공인이 아닌 이상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이는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 그리고 신상 공개는 수사상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인권적·형사법적 측면을 두루 고려했다”는 보도 원칙을 지면에 공개했다.

14) 남재일, 2006, 『한국언론 윤리 현황과 과제』 (한국언론진흥재단).

15) 김종호, 2014, “언론보도 2차 피해소송, 판결의 의미 및 언론보도의 개선방안 - 나주 어린이 성폭행 사건과 관련하여”, <언론보도 2차 피해, 이제는 끝내야 한다-고종석 사건 2차 피해소송 판결의 의미> 토론회.

16) 인격권은 명예권, 성명권, 초상권 등 권리의 주체와 분리할 수 없는 인격적 이익을 내용으로 한다. 생명·정조·신용 등에도 성립한다. 민주사회에서 개인의 존엄을 보장하는 중요한 가치이다.         

17) 『미디어오늘』, 2012. 9. 5. 정철운, “언론의 흉악범죄자 신상 털기, 법적 근거 없어 - ‘언론도 가해했다, 나주 현장’ 긴급 토론회”, (검색일 : 2016. 6. 16.). “알 권리는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으로, 기본권은 국가에 대한 방어권의 성격을 갖고 있다. 따라서 알 권리를 주장하려면 그 상대가 국가와 같은 공권력이 돼야 한다. 범죄자와 같은 사인(私人)에게는 국민들이 알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또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다고 공적 인물로 판단해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18) 『시사IN』, 2014. 4. 21. 송지혜, “그날, 언론이 흉기가 되었다”, (검색일: 2016. 6. 16.)

19) 류병관, 2010, “언론의 범죄보도에 있어 범죄피해자의 프라이버시권보호에 관한 연구”, 『피해자학연구』 (한국피해자학회) 제18권 제1호.

20) 현행법상 피해자의 프라이버시권 보호를 위한 법률 규정은 「범죄피해자보호법」, 「특정범죄신고자 등 보호법」,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등에 있다.    

21) 『더피알』, 2016. 6. 7. “‘헤럴드 사과’ 낳은 옐로저널리즘의 유혹”, (검색일: 2016. 6. 16.)

22) 김경호, 2004, “범죄보도로 인한 초상권과 기타 인격권의 침해에 관한 연구 : 언론과 경찰의 책임을 중심으로”, 『언론과 사회』 12권 2호.

23) 앞의 김경호(2004) 참조.

24) 앞의 이승선·김연식(2008) 참조.

덧글. 이 포스트는 원고작성 시점이 5월 중순입니다. 언론중재위원회 저널 <언론중재> 여름호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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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랄 프로젝트 내 'Ask' 화면. 독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있다. 국내 언론사의 기존의 인터넷 여론조사에 비해 친밀감을 높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워싱턴포스트의 코랄 프로젝트(Coral Project)는 독자 충성도를 끌어 올리는 목표로 시작됐다. 경쟁사인 뉴욕타임스와 공동으로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기술기업인 모질라 파운데이션이 협업하고 있다.

최근 콜롬비아에서 열린 세계신문협회(WAN-IFRA) 총회에서도 공개된 코랄 프로젝트는 일종의 알고리즘으로 좋은 댓글을 더 많이 노출하도록 하는 'Trust', 언론사 담당 에디터가 운영하는 'Ask', 댓글처럼 독자들이 만드는 콘텐츠를 기사화하는 툴인 'Talk' 등 3 부문으로 구성된다. 이 프로그램들은 오픈소스로 개발해 여러 (지역)언론들에게 제공할 계획이다. 

'Trust'는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이 시범 운행 중이다. 'Ask'는 워싱턴포스트의 '월드 뷰(World View)' 블로그에 적용됐는데 에디터가 독자들에게 여론조사나 댓글을 요청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기사도 작성한다. 내년에 공개되는 'Talk'는 독자가 만드는 콘텐츠를 뉴스로 만들어 재배포하게 된다.

국내 언론사는 '댓글'관리도 없을 뿐 아니라 있다고 하더라도 '삭제' 조치 외에 운영자와 독자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은 거의 없다. 많은 언론 매체들이 '독자 제보' 공간을 열어두는 정도이다. 

<오마이뉴스> 등 인터넷 미디어를 중심으로 라이브 방송과 소셜 계정을 연계해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한 사례는 여러 차례 있었다. 최근  <한겨레신문>의 '정치BAR' 섹션은 페이스북이나 텔레그램 계정으로 독자의 질문을 수렴하고 있다. '라이브 톡' 등 메신저 프로그램을 활용하기도 한다.

'독자 관계'를 증진하기 위한 주인공은 역시 공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목표를 가진 뉴스조직의 기자이다. 기자가 이 과정에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독자 관계의 안정성은 확보하기 어렵다. 

JTBC 5시 정치부회의 페이스북 계정. 기자가 '화자'가 된 스토리는 형식의 파격성 못지 않게 친밀감을 증폭한다. 그들이 독자의 반응에도 성실하게 응답한다면 놀라운 결과도 예상된다. 기자 별로, 주제 별로, 프로그램 별로 확장하는 브랜드는 드라마틱한 독자관계의 배경 없이는 성장이 불가능하다.


'JTBC 5시 정치부회의'처럼 기자나 리포터 심지어 대표 앵커가 소셜 소통을 강화하는 트렌드도 두드러진다. 일부 매체는 이른바 '분산미디어' 전략을 내세우며 부서별, 주제별 소셜계정을 운영하기도 한다. 다만 콘테츠만 보일 뿐 독자와 '서로 말 걸기'는 보이지 않는 것이 아쉽다. 

해외 매체가 양질의 독자, 양질의 의견을 폭넓게 다루기 위해 노력하는 접근은 디지털 미디어 혁신의 핵심이 저널리즘 패러다임의 이동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일방적인 메시지 전략으로는 낱개 콘텐츠 소비 시대에 영향력을 확장하기 어렵다. 참여하는 독자들을 확보하고 이들과 콘텐츠를 함께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당장에는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기자가 독자의 이야기와 관련 있는 기자들에게 중계해주는 방식을 고려해봄직하다. 

페이스북 '좋아요수' 경쟁 혹은 목표 지향에서 독자 관계 증진이라는 가치 기반의 소셜 전략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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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은 "올해 창립 51주년을 맞는 한국기자협회가 준비한 저널리즘 복원을 위한 연속 토론회’ 그 첫 번째 시간 저널리즘과 혁신:성찰적 진단 및 과제’에서 발표한 강연자료입니다"



""(젊은 세대들은) 더 이상 진지한 뉴스는 보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많은 것을 오해시켜왔습니다. 디지털로 넘어오고 디지털이 전부인 시대에도, 디지털 문명의 열정적인 독자들이 바라는 것은 진지한 저널리즘입니다. 이 목표를 잡을 때 우리는 미래를 기약할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널리즘과 혁신:성찰적 진단 및 과제의 발제를 맡은 한국경제신문 기자(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 최진순입니다. 여러분들을 모시고 저널리즘의 진로를 모색하는 자리에 서게 돼서 영광입니다. 저는 오늘 저널리즘 혁신의 과제-성찰로부터 혁신해야 한다. 현명한 독자로부터 혁신해야 한다"를 주제로 이야기합니다.

 

지난 세기에 우리는 풍부하고 더 나은 지식 정보에 탐색하는 것이 어려운 시대에 살았습니다. 기자와 전문직 종사자들이 전해주는 지식과 뉴스에 의존했습니다. 70%대의 높은 시청률과 수백만부의 발행부수처럼 정보독점시대의 언론사는 놀라운 기록을 양산했습니다. 불과 십수년 전만 해도 언론에게는 해가 지지 않는 나날들이었고, 질주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디지털은 언론의 질주를 멈추게 하고 있습니다. 분초 단위로 생산되는 콘텐츠와 소셜네트워크의 타임라인에 떠오르는 뉴스는 생명주기가 너무도 짧습니다. 기자와 언론 브랜드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독자와 기자의 구분도 불확실해졌습니다. 독자는 뉴스 소비로 끝나지 않고 스스로 만들거나 원하는 것을 만들어줄 것을 생산자에게 제안하고 직접 투자하는 시대입니다. 이 과정에서 패션매체는 온라인 쇼핑 사이트로 진화하거나, 디자인 전문지는 그 제품을 직접 제조하거나 판매하는 등 매체의 역할이 전면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절 언론이 자부심으로 내세우던 조직규모나 역사, 윤전기와 송신탑은 더 이상 중요한 자산이 아닌 시대에 들어왔습니다.


더 강력한 개방, 더 끈끈한 연결, 더 거대한 공유의 경제의 시대입니다. 십여년 전 웹 2.0은 언론에도 중요한 자극이었습니다. 이 자극과 에너지는 한국 언론을 디지털 혁신의 길 위로 이끌었습니다. 뉴욕타임스의 혁신보고서에서, 제프 베조스의 워싱턴포스트 인수까지 전통매체의 탐색은 디지털의 잠재력을 향했습니다. 방송사는 텍스트 기사를 따로 쓰기 시작했고, 주간지와 월간지도 모바일로 하루하루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진정 경계가 없는 시대입니다.

 

ICT 기업과 언론의 합작은 당연시되고 있습니다. JTBC는 페이스북과 공동으로 선거보도를 합니다.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은 자신의 소셜계정을 통해 “(새로운 미디어 사업자와 언론사의 협력이) 당연히 벌어질 수 밖에 없는 일이며, 이미 예견된 흐름 속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디지털에서는 지난날의 언론의 독주는 멈추고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제 언론을 둘러싼 혁신의 분위기를 다시 살펴야 합니다.

 

첫째, 디지털 문명은 독자가 의존해왔던 전통매체가 더 이상 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했습니다. 열독률, 시청률, 페이스북 좋아요수 같은 양적 경쟁시대의 성과지표의 의미에 대해서 냉정하게 해석해야 합니다. 20% 뉴스 시청률에 자만하거나 30만명의 좋아요수에 흥분해서는 안됩니다. 더구나 독자가 언론을 향해 품는 태도-신뢰나 애착에 의문부호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전통매체는 이 시대에 독자가 알아야 할 것과, 독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놓고 제대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기존의 방식과 새로운 방식 사이에서 안팎의 조력자들과 함께 꾸려가야 하는 등 업무의 질과 방향에 근본적인 변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어떤 가치를 보여줄 것인지를 근본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둘째, 특히 이 환경에서는 분명히 점점 더 다양한 지식과 의견이 필요로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잔디깎는 일이나 정원 가꾸기가 어떤 소식보다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동성애에 대해서, 또 누군가는 환경을 지키는 문제가, 또 누군가는 절차적 민주주의, 내용적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한 이슈가 누구보다 중요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영역을 다루는 것은 한계가 있고, 대응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어떤 규모와 어떤 기능, 어떤 협력으로 감당이 가능할지 집중과 선택, 우선순위에 대한 혁신의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그러나 언론의 노력과는 별개로 이러한 콘텐츠는 앞으로도 완전히 새로운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사람들에 의해서 생산되고 많은 독자들은 전통매체를 떠나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뿐만 아니라 저널리즘은 우리가 인식하건 그렇지 않건 냉혹한 평가의 시험대에 올라와 있습니다. 언론의 책임과 사명은 더욱 더 공동체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일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참여지향적이고 열정적인 독자들은 전통매체의 민낯에 침을 뱉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자와 언론은 스스로 자신의 가치와 품격을 사회에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물론 한국의 전통매체도 대변화 속에서 혁신을 전개했습니다. 크게 콘텐츠-(조직의) 컨버전스-(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 등입니다.

 

우선 콘텐츠입니다. 대체로 콘텐츠 형식 변화로 혁신이 이뤄졌습니다. 인터랙티브와 멀티미디어는 화두가 되었습니다. 또 신속한 생산대응이 자리잡았습니다.

 

콘텐츠의 혁신을 위해 뉴스조직의 컨버전스-융합에도 나섰습니다. 지난 10여년 사이 언론사 닷컴, 편집국-보도국의 기능적, 물리적 변화가 이뤄졌습니다. 뉴스룸 통합처럼 새로운 디지털 업무와 기술인력이 보강됐습니다.

 

독자와의 소통 즉, 커뮤니케이션 과정도 다양해졌습니다. 더 많은 독자와 교류하기 위해 댓글, 기자 블로그, 소셜네트워크 등을 통해 직접 소통에 나섰습니다. 모바일 생태계의 확산 속에서 커뮤니티 구축, 이용자 트래킹을 통한 타깃 서비스-개인화 서비스는 최대 이슈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아직 미완의 상태입니다. 카드뉴스, 짧은 영상 등 큐레이션 콘텐츠가 범람 수준으로 치달으면서 차별성이 없어졌습니다. 스낵 콘텐츠는 만들면서 정작 보도의 수준을 놓고 안팎의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언론이 만드는 콘텐츠의 혁신이 정말 제대로 된 것인지 묻는 장면들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대신 언론사 페이스북 페이지는 말장난 실력을 뽐내기만 합니다.

 

이를 두고 젊은 세대의 관심과 기호를 충족하는 것이 혁신이라고 자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면과 영상을 떠나는 젊은 세대는 정작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직의 융합 과정도 탄탄하지 못합니다. 많은 언론이 디지털 인력을 보강하고 디지털 조직을 늘렸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의사결정권을 가지지 못한 채 뉴스조직의 가장자리에서, 수동적이고 권태로운 일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낮은 처우와 인색한 투자, 차별과 방치가 뉴스조직에 맴돌고 있습니다. 무엇이 디지털의 잠재력을 발견하는 일인지 뉴스룸의 모든 구성원들이 숙의하는 기회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이 결과 지난 10여년간 언론의 성적표는 초라합니다. 열독률, 시청률 하향세는 이제 당연한 말이 됐고, 온라인 시장에서의 영향력도 '도토리 키 쟤기'에 다름아닐 정도로 숫자가 무의미합니다.

 

언론의 신뢰도는 추락했고 이를 언론인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4년마다 공표되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인 의식조사>에 따르면 2009년 결과와 비교해 대부문 항목의 점수가 하락했습니다. 언론활동 수행의 자유도는 다른 항목에 대비해 가장 많이 떨어졌습니다. 이 보고서에 언급된 한 12년차 기자는 일주일 평균 31.3건의 기사를 썼습니다. 스트레이트 기사는 13.8, 기획/해설기사는 고작 3.7건에 그쳤습니다. 취재환경이 기사의 질과는 따로 놀고 있는 양상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것입니다.

 

특히 저널리즘을 선도하고 미디어의 혁신성을 제시해야 할 공영방송은 거버넌스 이슈로 조직내홍을 거듭하며 해직기자를 양산했습니다. 성역과 금기를 스스로 쳐 놓고 용기와 비판은 실종된 채 사건사고 뉴스를 앞세우고, 카드뉴스와 짤방 등 소셜전용 스낵콘텐츠를 굽는 데 시간과 비용을 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기레기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기레기를 언론계 전반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무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독자의 역할이 강력해진 시대에 이런 논란이 생긴 것 자체를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저널리즘을 선도하는 언론의 부재, 촉망받는 기자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최근 2~3년간 한국 전통매체에서도 혁신의 분위기는 고조되었습니다. 한겨레신문의 혁신보고서에 이어 중앙일보도 지난해 뉴스는 흐름이다라는 내용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혁신보고서를 냈습니다. 전통매체 내부에 디지털 기구와 담당자가 대폭 늘어야 한다는 분위기를 이끌었고 투자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언론의 혁신의 한계는,

 

첫째, 언론사가 생산하는 뉴스, 콘텐츠의 양은 증가했습니다. 큐레이션을 포함 디지털스토리텔링에 대응하는 속도도 빨라졌습니다. 하지만 시간 때우기용-킬링타임 콘텐츠를 중심으로 늘었습니다. 수익성이라는 목표 때문에 광고성 기사 논란도 여전합니다.

 

둘째, 직업기자들은 독자들과 직접 소통에 나서고 있습니다. 기획자, 개발자 등 다양한 직무를 맡는 사람들이 증가했고 이들과 협업하는 장면도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연결과 협력이 뉴스 생산과정에 수렴되는 것은 아닙니다.

 

셋째, ‘기술의 효용성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소셜 인게이지먼트, 이용자 트래킹, 알고리즘, 로봇저널리즘, VR, 빅데이터 등 뉴스와 기술의 결합이 장려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의 수렴일뿐 목표도 의미도 상실한 실험을 위한 실험이 반복되는 것은 아닌지 점검하는 모습은 없습니다.

 

무엇보다 문제는 과정으로서의 뉴스가 아닌 결과물로서의 뉴스에만 치중한 것입니다. 문법은 파격적으로 탈바꿈했지만 복제나 어뷰징같은 부작용이 만연하고 큐레이션처럼 디지털의 옷을 입히는 데 한정됐습니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클릭을 붙잡기 위해서, 그리고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는 사람들과는 소통의 절차는 닫은채, 일방적인 결과물을 만들었습니다.

 

당연히 독자들과 만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십년 넘게 언론사 뉴스 댓글은 방치되었습니다. 소셜네트워크 운영은 좋아요수 늘리기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커뮤니티 구축, 독자와의 신뢰형성, 팬덤-애착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엄두도 못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아직도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조직의 한계는 여전합니다. 전통매체는 과거의 관행과 업무태도, 관성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부문은 합쳐지거나 부상했지만 경험이 일천한 활자매체 종사자들의 통제 아래에 놓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창의성과 독자성을 제고하는 방향이 아니라 속도와 지표 놀음에 갇혔습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디지털 혁신 세력으로 언론사 내부에 권력교체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동과 반응을 토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은 이 업의 본질, 디지털 시장의 이해가 낮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독자, 우리가 붙들고 관계를 맺고 사랑하고 공감해야 하는 그들이 왜 중요한가를 논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술만 강조됐을 뿐 그 기술이 왜, 어디에,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본질적인 질문들을 생략했기 때문입니다.

 

기자로 일하다가 최근 그만 둔, 그래서 뉴스의 시대를 지켜보는 관찰자가 된 한 사람은 자신의 소셜계정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일적으로 그동안 뉴스를 챙겨봤는데) 이젠 뉴스를 보지 않더라도, 검색이나 취향과 사회적 연결로 얽힌 관계망 서비스에만 주력하더로 불안감이 없다“ ”불편하지 않고 평화롭다

 

텍스트를 기피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독자들은 꼭 필요한 뉴스를 스스로 찾아가고 있습니다. 스스로 만들어 퍼뜨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창업한 미디어 스타트업 <퍼블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계발에 적극적이고 지적 갈증이 있는 교양인을 상대로 크라우드 펀딩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들은 전통매체와는 다른 무대에서 그들만의 뉴스 레시피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38명의 후원자를 두고 4년째 건재한 <슬로우뉴스>처럼 새로운 문명을 사유하는 독자들을 발굴했고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개인은 물론 기업에서도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 콘텐츠는 전통매체보다 더 나은 수준으로, 더 강한 공감을 불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통매체는 이제 완전히 새로운 언론환경에 있습니다.

  

그러나 전통매체는 신생미디어와 같은 방식으로, 그들이 만드는 콘텐츠의 양식을 그대로 따라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 마음 아픈 사건이 있습니다. 한 노동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25세때 공장에서 일하다 손가락 4개를 잃었습니다. 이후 산업재해를 막는 일에 동료들과 힘을 합쳤습니다. 5년 전 44세때 베트남 여성과 결혼해 3, 5살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난 2월말 공장에서 불의의 재해로 숨졌습니다. ‘존영을 향한 뉴스는 쏟아졌지만 그의 죽음에 할애한 지면과 영상은 없었습니다. <뉴스의 시대>에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뉴스를 점점 만나기 어려워졌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혁신은 무엇입니까?

 

첫째,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키는 헌신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아직은 전통매체만이 가능한 비범한 밑천입니다. 디지털의 옷을 입히는 정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합리적이고 일관된 지혜와 비판을 담금질한 뉴스로 나타나야 합니다.

 

제프 베조스의 워싱턴포스트. 마티 바론 편집국장은 2015WAN 총회에서 디지털 시대 워싱턴포스트만의 경쟁력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합니다. 워싱턴포스트 디지털 혁신의 중심에 있는 그는 워터게이트 사건 같은 권력형 부정이 있다면 주저없이 보도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러한 태도야말로 언론 혁신의 출발점이며 최적의 열쇠임을 단호하게 시사한 것입니다. 디지털 문명의 독자들이 언론에 바라는, 변함없는 요청은 디지털로의 전환이 아니라 디지털에서 저널리즘의 원칙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독자들의 제언을 언론은 새로운 형식으로 화답해야 합니다.

 

알랭 드 보통의 <뉴스의 시대>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뉴스는 사회의 악행을 폭로하고 그 고통을 직시함으로써 사회를 돕는 한편, 선함과 용서와 분별력을 충분히 갖춘, 구성원들이 기여하기를 원하는 가상의 공동체를 구축하는 중요한 임무 또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모바일과 소셜네트워크에서 우리는 누구를 만나고 있습니까? 참여지향적이고 열정적인 독자, 교양의 시민들을 독자로 발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독자와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뉴스를 찾는 합리적인 소통은 이뤄지고 있습니까? 우리가 우리의 독자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습니까?

  

제프 자비스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는 “2020년 저널리즘은 가치를 나누는 사람들의 거대한 네트워크가 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공동체의 미래를 사유하는 정열적인 교양의 시민들과 우리의 거리는 얼마나 떨어져 있습니까? 허상의 트래픽 숫자로부터 더 이상 고립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독자들을 찾는 위대한 여정이 시작돼야 합니다. 양의 시대에서 질의 시대로 우리는 변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셋째, 우리는 뉴스조직을 재정비해야 합니다. 어떤 기능과 부문을 떼어서 붙이는 생산조직의 재편으로 국한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양의 시민들로부터, 언론계 동료와 다른 경쟁 언론사로부터 지지와 영예를 얻을 수 있는 생산문화를 갖춰야 합니다.

 

일방적 여론 주도자가 아니라 협력자, 동반자로서의 사회적 역할 확보, 짧은 생명주기의 뉴스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과 공동체의 미래를 탐색하는 콘텐츠를 위한 사회적 연대(solidarity)-시민,기업,커뮤니티 등 협력의 네트워크 추진, 성찰의 기반 위에서 디지털 문명을 현명하게 수렴하는 프로그램 신설을 주도할 수 있는 새로운 뉴스룸이 필요합니다.

 

가령 더 많은 독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창구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가? 우리가 붙들고 있는 가치와 세상의 더 나은 가치 사이에서 공약수를 찾기 위해 독자의 역할을 부여하는가? 우리의 취재와 보도에 독자들은 효과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가? 기자 선발부터 재교육, 인사 행정 부문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시각과 능력을 가진 사람을 우대할 수 있는 변화는 폭넓게 모색되고 있는가? 이런 의문들에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는 뉴스룸의 혁신이 이뤄져야 합니다.

 

혁신의 혁신이 필요한 때입니다. 최근 일부 초안이 공개된 독일 <슈피겔>의 보고서를 재인용합니다.

 

첫째, (과거의 영광에 취해 너무 자만했다. 이미 일부분을, 더 나아가 상당한 영역을 잃어버렸다.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을 인정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함을 놓쳤다.) 더구나 우리는 업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특종-권력과 자본을 향한 비판정신- , 숨겨진 배경을 찾는 분석들을 이미 잃었다.

 

둘째, 우리가 단지 많이 안다고 해서-제한된 정보원에 접근할 수 있다고 해서 독자들이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독자들의 의견을 어떻게 구할지, 그들의 지식과 지혜를 어떻게 수렴할지 생각해야 한다

셋째, 물론 아직 전통매체는 가장 많이 언급되고, 인용되고 있다. 오피니언 리더에 이해 읽히고 있다. 그러나 이는 위로만을 줄 뿐 특별한 의미가 없다.(- 트래픽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난날의 시청률과 발행부수는 무의미하다)

 

넷째, 우리는 잘못된 우선 순위를 설정했다. 디지털부문과의 협업도 불분명하다. 참여지향적이고 교양적인 시민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는가가 중요하다. 그들과 어떤 연결과 관계를 맺을지가 관건이다


슈피겔만 엄숙한 반성을 한 것은 아닙니다. 뉴욕타임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디지털(기술)만으로는 저널리즘은 구원되지 않는다. 단지 안심시킬 뿐이다. 뉴욕타임스는 오직 하나만 안다. '진지한 저널리즘'. 독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젊은 세대들은) 더 이상 진지한 뉴스는 보지 않는다는 목소리들은 강력합니다. 이것이 많은 것을 오해시켜왔습니다. 디지털로 넘어오고 디지털이 전부인 시대에도, 디지털 문명의 독자들도 언론에게 바라는 것은 진지한 저널리즘이란 목표를 잡을 때 우리는 미래를 기약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현명한 독자가 저널리즘을 살리고 키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발굴해야 하는 독자는 가시덤불을 헤치고 길을 찾으며 ’, ‘우리를 끌어안는 지혜의 독자입니다. 진지한 저널리즘에 호응하는 독자입니다.

 

독자가 원한다고, 독자가 더 많이 반응한다고 카드뉴스나 영상을 매만지는 것으로 업무가 끝나선 안 됩니다. 그런 독자들은 우리가 찾는 독자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할 때만 비로소 저널리즘의 혁신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혁신, 혁신의 혁신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첫째, 성찰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해온 것에 대한 냉엄한 진단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성찰의 효과를 위해 양식과 품격을 갖춘 독자, 시민사회에게 최소한 물어보고 혁신의 길을 떠나야 합니다.

 

둘째, 독자와의 느슨한 관계를 애착관계로 전환시켜야 합니다. 독자와의 소통, 교감, 협력을 뉴스조직의 최우선 과제로 내세워야 합니다. 독자커뮤니티, 멤버십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독자가 저널리즘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자와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신설해야 합니다. (제프 베조스가 사들인 <워싱턴포스트>는 매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독자가 주도하는 개방적인 위원회, 독자와 피드백하는 시스템에 투자해야 합니다. 동업자들과도 저널리즘의 미래를 숙의하고 저널리즘의 가치를 확산하는 공동의 프로그램 마련에 나서야 합니다.

 

셋째, 저널리즘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더 확산하기 위해 다양한 시민단체, 대학 등과 함께 각 부문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저널리즘이 공동체에 중요한 것임을 일깨울 수 있도록 경제, 교육, 문화 등 각 영역의 커뮤니티와 캠페인에 적극 참여하고 후원해야 합니다.

 

독자 참여 기반의 미디어와 이해 관계자들과 호응하고 가능성을 공유하는 연대도 필요합니다. 특히 독자는 파트너로 예우해야 합니다. 참여지향적이고 열정적인 독자가 없으면 더 이상 생존도 어렵습니다.

 

포털사업자, 소셜네트워크사업자, 하드웨어 제조사, 광고주 등 기존의 파트너와 협력할 때에도 저널리즘의 원칙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현재의 시장환경에서는 좋은 뉴스가 오래 소비되거나 확산되기 어렵습니다. 눈요깃거리만이 살아남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저널리즘의 독자를 찾아야 합니다. 그 의제를 가지고 파트너와 논의해야 합니다. 더 나은 상생은 독자를 디벨로핑-발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브랜드의 명예를 공유할 수 있는 독자를 더 늦기 전에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더욱 일반적인 정보와 더욱 전문적인 정보의 경쟁가치중립적인 뉴스와 합리적인 편향의 뉴스의 경쟁속도흥미의 서비스와 탐색사유의 서비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이러는 사이 수많은 뉴스의 폭주에 독자들이 지치고 있습니다. 최소한 독자가 알아야 할 것과 우리가 알리려고 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줄이는 토론이 이뤄질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 <뉴스의 시대> 저자 알랭 드 보통이 전하는 영상 메시지가 있습니다.

 

"저널리즘은 더 나은 나라를 만들 수 있는 길을 제안하려는 목적으로 국가적 삶의 모든 사안을 다루는 망명정부다. 혹은 그렇게 되어야 한다

 

지난 수십년간 이 공동체에서는 누구나 인정할만한 '좋은 언론 브랜드'가 빈곤합니다. 영국 주간지 인디펜던트의 인쇄 중단에 대해 경쟁지들은 한결같이 '훌륭한 매체가 보여준 사회를 향한 노고'에 갈채를 보냈습니다. 우리에게 그런 언론은 존재합니까?

 

언론과 공동체의 애착관계, 저널리즘의 사회적 가치가 확산되지 않고는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언론의 혁신은 현명한 독자를 발굴하고 그들을 공감시키는 것이 전부이며 핵심입니다. 디지털 문명에서도 변하지 않는 당위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더 많이 성찰하고 진지해져야 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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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리. 깔끔한 디자인과 공들인 텍스트가 조화롭다. 독자의 시간을 존중하는 콘텐츠 전략은 전통매체에게는 생소한 접근이다. 지식을 갈구하는 독자에게 다가서는 세련된 만남은 이 브랜드의 드라마다. 시즌을 계속 넘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일단 접어두고 싶다. 퍼블리는 봄날의 곰처럼 사랑스럽기 때문에.


얼마 전부터 '눈길이 간다'는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아하고 정갈한 노고를 쏟는 미디어가 등장했다.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자주 뜬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마을의 고귀한 우물 같은 느낌이랄까. 이 감상은 박소령 퍼블리(PUBLY) 대표를 마주한 지난 10일 오후 서울 성수동 '카우앤독(CO-Work, DO-Good, Cow&Dog)'에서도 실제로 이어졌다.


국내에서는 (성공이) 흔치 않은 콘텐츠 스타트업으로 투자자를 모았고 퍼블리를 열었다. 그리고 3년 내에 이 사업을 빛내겠다는 박소령 대표. 한 시간 넘는 대화는 수줍지만 세련된 포즈와 하나하나 벽돌을 올리는 기풍으로 어우러졌다. '퍼블리'의 소개글이 "당신의 시간은 소중합니다. PUBLY는 모바일에서 읽는 시간이 아깝지 않은 콘텐츠를 만듭니다"인 것처럼 식자층의 강한 자존감도 포말처럼 건네졌다.


퍼블리의 콘텐츠는 담금질 된 높은 순도를 지향한다. 뜨거운 만큼 여운도 길다. 피렌체 골목길이나 테너의 저음처럼. 박 대표는 매일 종적없이 사라지는 전통매체의 뉴스를 가볍게 윙크하는 눈빛으로 녹여 버렸다. "우리는 늘 고급 콘텐츠를 고민합니다. 독자들은 천차만별입니다. 이들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 대표는 지적 갈증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콘텐츠를 제시했다. "한국어로 필요한데 없는 분야가 있습니다. 외국어로는 존재합니다. 시장이 작고 수요가 없어서 한국어로 생산하지 않는 소재입니다. 예를 들면 번역이 활성화되지 않는 이슈이거나 해외 행사들입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읽었을 때 A라는 생각이 A', A''로 연상을 유도하는 포인트가 밴 것이 좋은 콘텐츠입니다. 읽고 나서 제가 똑똑해졌다, 학습했다, 나를 자극했다는 생각이 드는 글이죠"라고 곧이어 정리했다.


"더 나아가 콘텐츠는 공공성의 가치를 지녀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것부터 만만한 것은 없었다. 회사 창업을 염두에 둔 적 없던 박 대표에게는 처음부터 접하는 일들이 까다로웠다.


당장에 웹 사이트 구축에 나서야 하는데 개발자도 구하지 못했다. 사업모델로 생각했던 크라우드 펀딩도 작정하고 추진할 동력은 없었다. 디지털 미디어 시장에서 구독료, 펀딩 외 다른 모델은 상정할 수 없었기에 좋은 기획을 제시하고, 필자를 설득해서 참여시키고, 데이터를 착실히 쌓는데 몰입했다.


박 대표는 콘텐츠나 비즈니스에 있어서 '커뮤니티'가 결정적이라고 봤다. "단순히 좋은 글을 유통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커뮤니티를 만들고 팬덤을 형성하고 독자 충성도를 끌어올려야 유료화가 가능합니다"라고 말했다.'펍(Pub) 문화'도 결국 커뮤니티의 중심이지 않는가.


작년(2015년)에는 세 개의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다. 퍼블리를 만들고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다. "어땠습니까?" 자평을 들었다.


첫 시도는 팟캐스트를 해오던 친한 기자 3명과 함께였다. 텀블벅(Tumblbug)을 활용했다. 영화, 게임, 미술, 테크 등 다양한 문화 영역의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이다보니 번짓수가 맞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트 북페어'는 비로소 퍼블리에 올렸다. 펀딩을 한 독자들의 절반은 출판계 종사자들이었다. 경비 부담으로 직접 가보진 못하지만 넘치는 지적 욕구를 확인했다. 목표액도 두 배를 넘겨 달성했다. 네 차례 오프라인 모임도 열었다. 전자책으로 된 보고서를 제공했다. 모든 프로젝트는 퍼블리를 단련시켰다.


박 대표는 "후원한 독자들에게 결과물이 건네진 뒤에 시장을 만드는 일이 과제입니다. 좋은 콘텐츠를 제공하는 길을 여는 방법 말입니다."라고 했다. 


결국 콘텐츠 생산자의 역량이 탁월해야 하지 않을까? "예, 동감합니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기획하는 콘텐츠는 주로 외부에서 필자를 찾고 있습니다. IT분야엔 여기자가 별로 없는데 꾸준히 글을 쓰는 정보라 기자를 발굴했습니다." 


정 기자는 '북페어'에 이어 올해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 미디어 산업 컨퍼런스 및 엔터테인먼트 페스티벌) 프로젝트'의 콘텐츠 생산자다. 일반적으로 기자들은 자신의 글의 값을 스스로 매긴 적도, 외부에 의해 평가받은 적도 없다. 부담되는 일이다.


하지만 퍼블리의 필자 발굴은 중단할 수 없는 일이다. '읽는 사람의 일과 삶을 중심에 두고 기획한 콘텐츠'들이므로 필자는 아주 중요하다.


오는 4월29일 미국 오마하에서 열리는 버크셔 해서웨이 연례 주주총회에는 투자 전문가 황준호 씨가 참석한다.  25일 현재 크라우드 펀딩이 진행 중이다. 트레이더(trader)가 보는 금융시장 전망을 콘텐츠로 제시한다. 에듀케이션 테크 컨퍼런스는 교육학 전공자가 맡는 식이다. 


전통매체의 천편일률적인 보도와 극명히 대비될 것임에 분명하다. 타깃층이 명확한 주제를 가진 퍼블리의 콘텐츠 전략은 더욱 더 다양한 이슈를 찾고, 전문 필자를 찾는 숙제를 계속 안긴다.


박 대표는 역설적으로 독자에 초점을 둔다. 독자의 규모는 애초에 넉넉하지 않다. "35세를 기준으로 위 아래 5~10년 사이를 대상으로 잡고 있습니다. 스스로 자아발전, 자기학습의 태도를 가진 사람들, 고학력 엘리트 층이 핵심이겠지만요. 페이스북에서 연결된 모임도 눈여겨 보고 있습니다. 독자들의 의견도 챙겨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양질의 독자를 데모그래픽(demographic segmentation)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독자의 시간-독자가 콘텐츠를 찾고 읽는데 기울이는 시간을 존중하는 퍼블리. 독자의 후한 평판을 얻는데 실패한 전통매체. 이 간격을 박 대표는 이렇게 교정한다. "영미권 미디어와 한국 미디어의 차이라면... 보수든, 진보든 이념 스펙트럼이 무엇이든 (이곳에는) '좋은 브랜드'가 없다는 점입니다." 


퍼블리가 좋은 브랜드로서 이 시장에 살아남는다면 그건 순전히 독자의 힘일 터이다. 물론 퍼블리는 전통매체와 직업기자들에게도 문호를 열어 두고 있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잣대가 협업의 기초가 될 것이다.


다음은 박 대표와 인터뷰한 내용을 재정리한 것이다.



박소령 퍼블리 대표를 미디어 세계로 인도한 책. 공동체의 번영을 기대할 수 있는 교양의 `포스`는 이 책처럼 상상 이상으로 우리 가까이 있을지 모른다. 더구나 네트워크에서는. 미생(未生)인 퍼블리의 미래를 기대해본다.


- 왜 척박한 미디어 시장에 관심을 갖게 됐나요?


저를 형성한 건 미디어, 매거진, 책처럼 '텍스트'였습니다. 경영학을 배운 대학시절도 재미가 없었습니다. 5년여 경영전략 컨설팅 직업 경험 끝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 공공정책학을 전공한 것도 텍스트의 영향이었습니다. 신문을 읽으면서 '나'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할 수 있었고, 많은 꿈을 가질 수 있게 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자각을 하게 된 것도 우연히 고른 책을 보면서였습니다. 대학 구내 서점에서 <렉서스 올리브 나무>(토머스 프리더만 저)를 읽게 됐는데 엄청난 영감을 줬습니다. "앞으로 세계가 크게 변한다. 이 변화 흐름에서 중요한 직업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전략가이고 하나는 저널리스트다. 전자는 변화하는 세계를 만들어갈 책임이 있고 후자는 그 변화를 정확히 설명해줄 책임이 있다"는 구절이 와 닿았습니다.


- 언론의 위기는, 특히 한국에서는 교양의 시민을 배출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오지 않는가라는 생각입니다. 텍스트의 위축과 실종, 글을 쓰고 책을 읽고 토론하고 지식을 접하고, 깨닫고 공감하고, 공동체를 조망하는 문화가 실종됐습니다. 책을 읽고, 신문을 읽고, 지적 욕구가 강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드문 시대입니다. 그런데 박 대표는 타고난 지식구애자입니다. 특히 어떤 점이 박 대표를 미디어의 역할에 주목하게 했을까요?


어릴 때부터 '책'과 가까운 곳에서 성장했습니다. 과천시는 도서관이 잘 갖춰진 곳입니다. 접근성 좋은 도심 안에 공원이 있고, 또 큰 도서관이 두 곳이나 있습니다. 커뮤니티 역할을 해줍니다. 부모님은 신문을 열심히 봤습니다. 덕분에 언론인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1~2년 준비하는 언론고시에 시간을 쓴다는 것이 아깝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차라리 경영학을 배우고 세상과 시장을 보는 전략적 관점을 갖추고 라이터(writer)가 되자는 결심을 했습니다.


- 그러나 컨설턴트 직장생활 이후에는 공공정책학을 전공했습니다.


2014년 여름에 미국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언론을 살펴보니 제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학부시절에 언론고시 고민을 할 때와 지금의 언론사와 기자들에 대한 사회인식이 변했습니다. 존경심, 신뢰도, 윤리성 같은 것들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대중에게 제대로 설명하는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위계적인 조직에서 수습기자로 적응한다는 것이 저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았습니다.


- 글을 쓰는 일은 하고 싶고, 미디어는 넘쳐나는데 사업성은 안갯속입니다. 고민이 많았을 텐데 '퍼블리'라는 것으로 시작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9개월간 마땅한 일자리가 없었습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도움을 얻었습니다. 미디어에 대한 관점, 포부를 듣고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카우앤독에서 일을 시작한 것도 굉장한 행운입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미디어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지만 투자자가 나오고 제안이 수렴되고... 마침내 미디어 섹터에서 막상 일을 시작하려니 확신은 없었습니다. 4개월의 고민 끝에 2015년 3월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 스타트업도 사람들이 모여야 시작합니다. 박 대표의 미디어 애정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만났습니까?


가치관, 세계관, 책 읽는 것, 취향 등등 모든 호흡이 척척 맞는 파트너를 만난 것도 행운입니다. 10년 전 컨설턴트로 일할 때 같은 회사 사수로 3년간 봐왔던 김안나 씨도 그렇고요. 이후 김안나 씨는 '리디북스' 초창기 멤버로 일했습니다. 뉴스 미디어는 아니지만 콘텐츠 생산자들이 전자책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기술의 접목은 어떤 양상인지를 지켜본 친구입니다. 제가 상의를 했습니다. 결국 이베이에서 일하던 김안나 씨가 합류했습니다.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뜻에 공감하고 각자의 일에 성의를 다하고 있습니다.


제 멘토이기도 한 L 님은 "결과보다는 과정 그 자체가 우리 사회에 기록으로 남는 게 의미가 있다"고 격려해줬습니다. 저도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하고 싶은 일에 온전히 묻혀 있을 때 해답에 근접할 수 있습니다. 저도 동료들과 함께 앞으로 최선을 다하며 이 시장을 탐색할 계획입니다.


- 3년 뒤에는 무슨 일을 할 것 같습니까?


저희 눈높이에 맞는, 만족스러워하는 콘텐츠를 계속 기획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크라우드 펀딩을 하고, 종이책, 전자책, 오프라인 강연회 등 사이클을 만들겠습니다. (국내 시장 환경의 한계로 퍼블리가 실패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바로 묻자) 물론 '퍼블리'가 3년 안에 건강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춰야 한다는 숙제는 있지만 이 과정 전반을 모두 의미있게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퍼블리의 스태프들과 박소령 대표. 자유로운 카우앤독의 공간에서 나왔을 때 저녁을 앞둔 공기는 바싹 마른 잎사귀처럼 건조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평일의 남은 시간은 콘텐츠와 독자들의 길 위에 온전히 있었을 것이다. 촉촉한 속삭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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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게시판에서 기자들은 저널리즘의 타락부터 조직 경쟁력까지 숱한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왜 이것들은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가? 기자들은 스스로 자위하는 것은 그치는가? 질식하는 뉴스룸 문화, 샐러리맨이 되는 기자, 미디어를 나무라기만 하는 독자들... 이것이 진정한 언론의 위기이며 공동체의 위기이다.


<기자협회보> 후배 기자가 익명 기반의 한 SNS 앱이 언론사 기자들의 '해우소'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의견을 물었다. 설치해서 들여다봤더니 좋은 일은 '아니다'. (이 인터뷰는 23일자 <기자협회보>에 게재됐다)


이 앱에서 기자들이 털어놓는 이야기들은 선배와 논조를 향한 비판, 임금과 수당, 언론환경에 대한 대처 등이 대부분이다. 이를 긍정적으로 보기 어려운 것은 익명이라는 '엄호'를 받는 자기 고백들은 사실 조직 내에서 해결해야 할 이슈들이다. 


익명 서비스에 언론사 기자들이 북적이는 것은 첫째, 사회 전반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권위주의 시대로 회귀하고 경기회복의 돌파구도 보이지 않는 흐름이다. "찍히면 죽는다"는 철벽 앞에서 기자들도 위축되고 있다. 


둘째, 인터넷 보급 이후 시장포화와 과잉경쟁 구조에서 앞만 보고 향할 수밖에 없는 언론경영 환경도 거들고 있다. 잠시 현재 위치에 머무르면서 '복기'하고 성찰, 개선하는 과정이 생략되고 있다. 이를 받아서 처리할 곳도, 사람도 없다. 


셋째, 당연히 조직 내에서 선후배 사이에 교류도 미흡하다. 과거에는 통음하면서 격렬히 치받으며 자존감을 세웠지만 이제는 성과 목표를 내세우는 조직 이기주의 아래에서는 구질구질한 추억이 되었다. 개인화한 신세대 기자들과 경영의 관점에 선 구세대 기자들은 평행선이 되었다. 대화가 단절되고 있다.


넷째, 미디어 생태계의 급격한 변화에서 독자들은 기자의 수준을 적극적으로 비평한다. 정보와 지식이 넘치는 공간에서 기자의 역량은 금세 드러났다. 성역비판은 줄어들고 그 자리는 상업주의가 채웠다. 기레기 논란이 빗발쳤고 기자들은 진로와 정체성을 의문하고 있다. 외부에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이 염치없다.


익명 앱에서 만나는 기자들은 감정의 토로를 통해 일정한 보상과 위로를 받는다. 비공식적인 채널에서 내상을 치유하고 다른 기자들의 동질적인 고통을 발견하면서 더 이상은 고민하지 않는다. 오히려 동료 언론인들의 애틋한 동병상련, 이심전심에 전반적으로 만족한다. 


이런 상황은 당장에 호전되기는 어렵다. 우선 직업기자들이 처한 언론환경은 빠른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이 바뀌어 왔다. 언론기업 차원에서도 뾰족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간단치 않다. 시장 양극화는 가속화하고 있다. 언론사 간 빈익빈부익부가 심화하는 양상이다. 


기자들이 겪는 고충은 육체적 고통, 경제적 빈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인 피로가 쌓이고 있다. 최근 30년 사이에 가장 미래가 불확실해진 직업군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본연의 취재 이외의 업무도 폭증하고 있다. 이는 유감스럽게도 당연시되고 있다. 


기자 전문성 확보도 쉽지 않다. 오랜 취재경력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시대다. 탤런트(재주), 테크놀로지(디지털 기술) 등 개성적이고 기능적인 것을 보탤만한 여유가 남아 있지 않다. '번 아웃'의 상태로 하루하루의 일을 처리하는 샐러리맨이 되고 있다. 


그래서 익명의 앱에서 넘치는 기자들의 넋두리와 아우성, 조롱과 비난은 희극적이고 동시에 비극적이다. 공동체와 독자가 언론사와 기자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저널리즘의 '원칙'으로 수렴하는 과정은 실종된 채 뉴스룸은 속도와 형식을 재촉하는 기교와 그 결과 즉, 실적주의가 지배하고 있다.


더욱이 언론사와 기자들이 직면한 문제들은 급성 질환도 아니고 만성 질환이며, 숙환이라고 할 것이다. 단기간에 치료되기 어려운 까다롭고 근원적인 문제들이다. 익명 게시판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기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고 설득하고 풀어가야 하는 일이다.


이것이 진정한 위기다. 이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멀지 않다. 언론의 사명, 책임을 스스로 물어보는 것이다. 언론사 로비에, 편집국 앞에 묘비처럼 화석처럼 박힌 글귀를 읽는 길이다. 혁신은 멀지 않다. 혁신은 디지털이 아니다. 혁신은 기술이 아니다. 혁신은 스스로의 역할을 제대로 찾는 일이다. 그래서 혁신은 정녕 어렵다. 


어지러운 세상의 책임의 상당 부분은 언론이 져야 한다. 더구나 디지털에 만취한 혁신으로는 더 이상 세상의 진보를 염원하는 독자-교양인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 만족한 성과조차도 끌어내기 어렵다. 저널리즘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디지털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사내 관리자들은 정면에서 문제를 풀려고 하기보다는 익명 게시판을 몰래 들여다보며 기자들의 글을 살핀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런 풍토에서는 저널리즘의 도약, 기자의 진화, 언론시장의 성숙 같은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 
언론사 내부에 상하좌우를 아우를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정치사회적 분위기, 시장 경쟁질서는 언론환경을 벼랑 끝으로 밀어넣은지 오래다. 네트워크에는 언론사 종사자들의 자탄 속에 희망을 기약하는 이야기가 적지 않게 나온다. 미디어 수용자인 독자들도 기자들이 겪는 문제를 공감할 필요가 있다. 언론인의 중병은 사회적인 위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4월 초 한국기자협회가 주최하는 '저널리즘 혁신은 무엇인가'의 토론회 발제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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