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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12.17 기자의 `분노`
  2. 2005.01.07 대통령의 개혁 책임

기자의 `분노`

Politics 2008.12.17 12:51 Posted by 수레바퀴 수레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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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진지한 '목격자'로서 충실하게 '기록'하고 '전달'한다. 철저한 제3자 관점은 기자의 직업윤리 중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즉, 기자가 어떤 사안에 대해 공정한 잣대를 갖고 들여다보는 것은 저널리즘의 기본이다. 공정보도야말로 언론이 신뢰를 얻는 핵심적 명제가 되는 것이다.

품위유지, 취재원 보호, 갈등-차별 조장 금지 등 기자단체나 언론사에서 전통적으로 확립하고 있는 직업윤리들도 마찬가지다.

한국기자협회도 기자협회 규약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통해 기자의 제1사명은 공정보도이며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진실보도를 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저널리즘의 기본기에 충실할 때만 권력 비판과 견제, 부조리 고발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자가 갖는 특별하고 엄격한 '윤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이 경우 기계적 중립으로 나타나는'서비스 저널리즘' 즉, 립 서비스형의 정보 전달이 만연해져 시장과 소비자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게 될 수 있다.

PD저널리즘처럼 기자가 아닌 PD들이 특정한 주제의식을 갖고 스토리를 만드는 보도가 나온 것도 그런 연유에서 출발한다.

고착화된 보도가 아닌 심층적인 접근으로 사안의 문제점을 발굴해내고 비판적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이 경우 완전한 객관성에 근거하는 전통적인 저널리즘보다 '오보'를 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단점이 있다.

예를 들면 PD수첩의 '쇠고기 광우병' 방송의 경우 객관적 사실 보다는 '어떤 목적'을 갖고 무리한 보도를 했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뉴스를 소비하는 이용자의 처지에서는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진실'에 접근하는 노력이 밴 저널리즘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

사실보도에 매달릴 경우 결과적으로 권력과 자본의 의견만 반영, 사회정의라는 가치를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기자들은 저널리즘을 둘러싼 다양한 공방들 속에서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뉴스룸은 전통을 고수할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변수들로부터 완벽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디어 패러다임의 변화는 전통매체의 사실보도, 공정보도의 근간을 붕괴시키고 있다. 자본과 권력의 입김은 더욱 거세다.

뉴스룸이 이것들로부터 자유와 독립을 지킨다고 하더라도 '생존'과 '경영'이라는 측면은 언제나 '타협'을 요구한다.

기본적으로 뉴스룸은 그러한 타협을 완강히 거부하고, 기자들 역시 저널리즘의 가치를 지키려 노력한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때로는 기자들도 추궁받고 있다. 집단지성이 주도하는 인터넷 영향력이 커질수록 행간의 숨은 뜻과 의도적인 밀착들이 발각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가 됐다.

이러한 시장의 압력은 20세기 기자와 뉴스룸에선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오디언스의 비판에 직면한 기자들의 새로운 과제는 이들과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설득하고 또 설득당해야 한다. 또 '흙을 묻히며' 논쟁해야 할 것을 주문받는다.

이렇게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면서 뉴스룸과 기자의 정체성도 크게 변화하고 있다. 일방적인 정보전달자가 아니라 시장이 공감하는 文化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대표적이다.

물론 그동안 기자와 기자사회가 누려왔던 기득권이 해체되는 가운데에도 전통적 저널리즘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발언하는 무대를 갖게 됐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평가 또한 적지 않다.

미디어 전문가들이 강조하고 있는 신문의 생존전략이 바로 시장내 '저널리즘의 신뢰도'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저널리즘의 주체인 기자가 어떻게 재생(再生)되고 회자되는지 볼만한 사건이 생겼다.

바로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지역에서 미국 대통령을 향한 아랍 기자의 신발 투척 사건이다.

15일 이라크를 방문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을 향해 신발을 던졌던 알바그다디아 TV의 문타다르 알 자이디 기자(29, Muntadar al-Zaidi
)는 미군의 점령을 증오해왔다고 한다.

알 자이디 기자가 부시 대통령의 발언을 듣는 자리에서 '분노'한 것은 기자의 직업적 윤리를 버린 행위다.

기자는 기사와 보도로 자신의 가치를 보여주면 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이렇게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와 맞닥뜨리기도 한다.

문제는 그가 단지 '기사를 만드는 노동자'가 아니라 양심적으로 판단, 실천하는 지식인임을 보여준 대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이다.

이미 알 자이디 기자의 분노는 이라크를 '열광'시키고 있다. 이라크 시민들은 '열사'라고 칭송하고 있다.

알 자이디 기자의 분노는 한 사회가 처한 마지막 인내의 지점에서 표출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YTN 노조, MBC 노조 등 최근 한국사회의 기자들도 저널리즘이 아닌 정치적 행동으로 권력에 맞서고 있다. 이들은 권력이 객관 저널리즘을 위협하고 있다며 반발한다. 

그런데 기자들은 기사로서만 자신을 드러내는데 익숙한 직업인이다. 정작 그의 목소리를 보여주는 것은 서툴다.

사실을 전달하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해온 기자의 직업적 정체를 돌아볼 때 기자의 분노가 현장에서 표출되는 것은 대단히 하기 힘든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적 선호도,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확인된 팩트를 그대로 써야만 하는 기자는 현장에서, 뉴스룸 안에서 분노를 참는데만 능한 지식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자의 분노가 늘어나는 사회는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기자, 뉴스룸, 전통 저널리즘의 위상도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특히 시장내 신뢰와 소통의 위기 그리고 정치적 변인들을 안은 한국 저널리즘이 기자의 분노가 터져 나오는 것을 막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염려이다.

중요한 것은 웹2.0과 같은 새로운 저널리즘이 충만해지는 미디어 시장에서 성숙한 저널리즘의 구현을 기자들만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기자들이 저널리즘으로 세상을 전하기만 하면 충분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미디어, 저널리즘, 기자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져야 한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기자의 분노를 외면해선 안된다는 말과 통한다.

기자의 분노는 곧 세상의 분노이기 때문이다.

덧글. 이미지 출처(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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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개혁 책임

Politics 2005.01.07 11:46 Posted by 수레바퀴 수레바퀴

극도의 '개혁 피로감'과 '상실감'이 참여정부 지지자들에게 엄습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도 확산되고 있다.

대북송금 특검법 수용, 이라크 파병, 개혁입법 처리 무산,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 주미대사 내정, 이기준 교육부총리 임명 등 정권 출범부터 최근까지 지지자들의 정의(情意)를 훼손시키는 사안들 때문이다.

이것은 참여정부가 전개하는 개혁의 진로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사실 대북송금 특검법과 이라크 파병은 국내외 정치상황을 고려할 때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 않다. 따라서 이 대목은 지지자들에게 일정한 수준에서 수렴될 수 있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폐지 등 개혁입법 처리 무산과 중앙일보 홍회장의 참여정부 동승(同乘), 이기준 교육부총리 '고집'은 참여정부의 무능과 오류, 기만으로 해석될 여지가 농후하다.

국보법 폐지는 할 수 있다면 가능한 것이었고, 못한다면 이해를 구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그럼에도 지지자들을 기대감으로 고무시켜 놓고선 당은 사분오열하고 말았다.

또 홍석현 회장의 주미대사 기용은 참여정부 정체성에 대한 심중한 혼란을 던졌다. 집권세력 일각에서 제시되는 '실용주의'가 현실화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보수진영을 향한 일방적 구애로 비쳐졌다.

최근 이기준 교육부총리 인사(人事) 과정의 진통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부총리에 대한 여러 의혹들은 참여정부의 브랜드와 콘텐츠를 추락시킬 수 있었는 데도 이를 '무성의하게' 결행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집권세력의 인사 및 개혁조치들이 번번히 지지자들을 모욕시키고 있지만, 노대통령과 참여정부는 지지자들을 설득하거나 보상하는 실질적 조치를 행사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지지자들은 두 번 실망하고 있다. 우선 개혁이 실종되고 있는 점,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 (지지자들에게) 충분한 위로-개혁에 대한 열정과 집념을 포함해서-조차 없는 점에 따른 것이다.

지지자들은 이 시대가 참여정부의 시대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 등 자기 혼란에 직면해 있다. 의석 150여석으로 이뤄 놓은 것도 없고, 지지도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문제의 원인과 대책을 ‘개혁’이 아니라 ‘실용주의’에서 찾고 있다.

또 집권세력은 ‘지지 계층’과 커뮤니케이션하기보다는 지난 시절의 기득세력과 조우하는 기회를 늘리고 있다. 열정을 지녔던 지지자들의 소외감도 만만찮다. 더 이상 지지자들과 격정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머지 않아 노대통령 자신에게 지지자들의 개탄과 항의가 쏟아질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 노대통령이 지지자들을 직접 위로해야 할 때라고 본다. 지지자들은 여전히 ‘노무현’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당정 분리라는 엄연한 원칙의 천명에도 우리당의 부조리함은 고스란히 노대통령에게 부채로 연결되는 시점에서, 떠나는 지지자들을 되돌릴 '노무현 주연의 드라마'가 필요하다.

앞으로 집권여당은 당권과 차기 대권의 분위기로 과열될 수밖에 없는 정치 일정을 앞두고 있다. 따라서 우리당이 당분간 개혁의 진정성에 충실한 형식과 내용을 갖추고 지지자들을 대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 때문에 지지자들의 좌절감은 더 커져 갈 것이고, 그럴수록 노대통령을 향한 비판과 기대도 함께 고조될 것이다. ‘개혁의 전도사’로서의 노대통령이 보다 더 많은 정치행위와 장면에 등장해야 할 원리도 명백해진다.

그러나 우리당에 실망하고 있는 지지자들의 번민은 이 지점에서 투사된다. 참여정부 집권 기간 동안 ‘노무현’이라는 에너지를 남김없이 ‘개혁’에 써서, 구시대의 막차로 떠나보내야 하는 ‘노무현’ 호의 운명에 대한 서글픔 때문이다.

이 난마 같은 정국을 푸는 노대통령의 카드가 늦기 전에 지지자들에게 제시돼야 한다.

2005.1.7.

 

출처 : 데일리 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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